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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타 주의
형제들이 이상하다.
1. 카라마츠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의사를 쳐다봤다. 진단을 부정해주길 바라고 의사를 쳐다봤다. 하지만 의사는 차트와 모니터를 보며 무심히 선언했다.
“치질입니다.”
2. 전혀 쿨하지 못한 병명에 당황한 카라마츠가 재차 물어보면 요즘은 흔한 질환이니 부끄러워할 필요 없다는 확인사살이 돌아왔다. 요즘 앉아있으면 묘하게 엉덩이가 불편하고 변을 봐도 개운치가 않아 지나던 길에 보인 병원에 충동적으로 들어왔을 뿐인데, 치질이란다. 작금의 현실이 믿을 수가 없어 눈동자가 떨리는 카라마츠에게 의사가 식습관을 개선해야할 것 같다고 여상히 이야기한다. ‘물 섭취량을 늘리고, 음료수는 줄이고, 고기, 튀김을 자주, 많이 먹는 것은 좋지 않다.’ 같은 주의사항이었다. 카라마츠도 익히 알고 있는 건강 상식이다. 그것은 알지만 ‘괜찮겠지!’하면서 지키지 않는 그런 상식이었다.
3. 카라마츠가 멍하니 의사의 말을 듣고 보고 있으니, 의사가 이번엔 모니터에 그의 장 사진을 띄워놓고 조목조목 설명에 들어갔다. 분홍빛 내장 곳곳에 볼록 튀어나온 이 덩어리들이 지금 문제되는 것들이고, 크기도 크고 개수도 많아 약물치료로 다스릴 수준이 아니니 내일이라도 수술을 해야겠다고 의사가 최종적으로 통보한다. 혀를 차며 어떻게 이렇게 될 때까지 참았냐고, 변을 볼 때 피가 나오거나, 아프지 않았냐고 물어오는데 카라마츠는 얼굴이 홧홧해져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럼 날짜는 내일, 괜찮으십니까?”
“아, 자, 잠깐-!”
얼마 전 새로운 선글라스를 사느라 텅 비어버린 통장이 떠올라 의사의 말을 막았다. 자세한 형편은 생략하고 일이 있어서 바로는 어렵다고 대충 둘러댔다. 표정 없는 의사는 카라마츠를 빤히 쳐다보더니 그럼 진통제 등의 처방을 해줄 테니 아플 때 먹으라고 말하며 언제쯤이 좋겠냐고 물어왔다. 카라마츠는 의사가 내미는 달력을 쭉 살피고 열흘 후인 금요일을 짚었다. 내일이 용돈을 받는 날이고, 수술 전까지 일용직 건설현장 아르바이트도 해서 수술비를 충당하기로 했다. 다행이도 어제 임시로 일할 생각이 없냐는 연락이 와서 고민하던 차였다. 그 돈의 쓰임새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만.
얼결에 수술날짜까지 잡고 병원을 나온 카라마츠는 뒤늦게 식은땀을 흘렸다.
이거, 절대로 들키면 안 된다. 절대로.
4. 오소마츠, 카라마츠의 하나뿐인 형이다. 평소엔 가볍고 장난기가 넘치지만 다급한 상황에는 의지가 되는 자랑스러운 형이다. 쵸로마츠, 카라마츠의 바로 아래 동생이다. 노력가에 상냥한 형제들의 의지처다. 이치마츠, 사남. 고양이를 좋아하는 귀여운 동생, 말수가 적고 행동이 거칠지만(카라마츠에 한하여) 사실은 친절한 동생. 쥬시마츠, 오남. 야구를 좋아하는 건강한 동생. 아직까지 산타를 믿는 순수한 동생이다. 토도마츠, 막내.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잘하고 처세술이 능한 대단한 동생. 말투는 조금 차갑지만 형제들 중 카라마츠를 가장 걱정해주고 있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다.
이것이 카라마츠의 형제들. 카라마츠에게 있어 모두 소중하고 좋아하는 형제들이다.
하지만, 제각각의 개성으로 무장한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으니, 장남을 필두로 모두 장난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장남 가로되 여섯은 하나지만 그와 동시에 각각은 적이라는데, 그 말은 틀리지 않아서 형제들은 서로가 서로를 골탕 먹이는 것을 가장 즐거워한다. 카라마츠 역시 그렇게 살아왔기에 잘 알고 있다. 자신의 병명이 알려질시 어떤 고난이 펼쳐질지.
놀림만 당한다면 다행이다. 아마 상상도 못할 장난을 쳐오겠지. 카라마츠는 며칠 전 완쾌 진단을 받은 이마가 돌연 욱신거렸다. 자신을 향해 아무렇지도 않게 둔기나 맷돌을 던질 정도로 과격한 형제들이다. 지금 일도 자신에겐 고통이지만 형제들에겐 얼마나 즐거운 일일까. 상상하니 등골이 오싹해져서 카라마츠는 음울한 눈으로 하늘을 올려봤다. 오늘도 날씨는 쾌청하다. 하늘은 높고 푸르며 태양은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답게 반짝인다. 분명히 참 좋은 날씨인데 왜 이렇게 눈이 시린가.
신이시여, 제게 왜 이런 시련을.
따위의 말을 내뱉으며 카라마츠는 시큰해지는 눈가를 가리기 위해 급히 선글라스를 썼다. 그리고는 숙덕이며 저를 쳐다보는 행인들을 무시하고 힘없이 처방전을 들고 눈에 들어온 약국으로 걸어갔다.
5.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아픔이라는 건 왜 인식하고 나면 더 아픈 느낌이 드는 걸까. 고작 6시간 만에 더 악화되었을 리도 없는데 카라마츠는 계속 엉덩이가 신경 쓰여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한참을 생각한 끝에 남자답고 멋진 자세(책상다리)로 계속 앉아있으니 별의 이끌림(중력)으로 아래가 눌려서 더 아픈 것 같다고 그는 판단했다. 문제 해결을 위해 방석이라도 깔아볼까 했지만 새삼스러운 행동을 한다고 형제들이 이상한 눈으로 볼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외의 좋은 방법은 떠오르지 않아 카라마츠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 ‘자세가 불편하면 자세를 바꾸면 되지 않은가!’라고 사고를 전환했다. 눈앞에 막혀있던 길이 트이며 한줄기 광명이 숨겨진 길을 비추는 기분이 들었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자면 아르키메데스가 유레카를 외치던 그 기분이 아닐까, 싶었다.
카라마츠는 형제들의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책상다리에서 무릎을 꿇고 앉는 걸로 자세를 바꿨다. 그러자 과연! 엉덩이가 들리니 조금 아픔이 덜한 느낌이었다. 허벅지가 당겼지만 항문이 아픈 것보다 훨씬 몸이 편해졌다.
다행이 모두의 시선은 마침 고로케를 들고 오는 마츠요에게 향해서 아무도 그가 자세를 바꾼 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니트들아, 많이 먹어라!”
“잘 먹겠습니다!”
밥상 전쟁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고로케를 잡기 위해 팔을 뻗느라 상체가 들썩이는 통에 자세가 계속 미묘하게 바뀌며 몸의 평화는 금방 깨져버렸다. 카라마츠는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일 때마다 영 뒤가 신경 쓰여서 평소와는 다르게 적극적으로 참전할 수는 없었다. 결국 카라마츠는 겨우 쟁취한 고로케 한 개를 아껴 먹으며 형제들의 손이 덜 가는 나물이나 조림으로 배를 채웠다. 이 끝으로 고로케를 갉아 먹는 카라마츠의 표정은 전쟁에서 패배한 사람처럼 침통했다.
6. 카라마츠는 양껏 저녁을 먹었던 과거의 자신을 때려주고 싶었다.
그는 잘 준비를 하다 문득 아랫배가 묵직하다는 것을 느껴졌다. 평소처럼 오싹하고 싸르르한 감각으로 안에 쌓인 것을 배출할 때가 되었다는 신호를 보내는 몸에 그는 별 생각 없이 화장실로 향했다. 잠옷 바지를 내리고 변기에 앉아 엉덩이에 힘을 주는 순간, 항문으로부터 느껴지는 말 못할 고통에 비명을 지를 뻔했다. 카라마츠는 이 사이를 뚫고 튀어나온 자신의 짤막한 비명에 놀라 힘을 주던 것도 멈추고 입을 틀어막아야했다.
힘주던 것을 멈추니 욱신거리기는 해도 항문은 서서히 평화를 찾아갔지만, 그곳이 진정된 대신 배가 아파왔다. 찢어질 듯 아픈 배를 움켜쥐고 이를 악 물던 카라마츠는 허리를 굽히며 결의를 다졌다.
그리고…지옥을 보았다.
7. 카라마츠는 그 후로 식사량을 줄였다. 차라리 조금 허기진 것이 나았다. 사실 그 고생을 하고나니 많이 먹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니트들, 오늘 저녁이다!”
“와! 카라아게다!”
“카라아게!”
카라마츠는 눈앞의 카라아게 더미를 보고 하마터면 눈물을 흘릴 뻔했다.
마미! 왜 하필! 내가 이런 고통을 당할 때 식단이 초호화인건가!
첫날은 고로케, 둘째날은 불고기, 오늘은 카라아게라니!
먹고 싶어. 미친 듯이 먹고 싶어!
사랑하는 브라자. 순간 너희들을 전부 내던지고 독식을 하고 싶다고 생각해버린 죄 깊은 나를 용서해 다오!
카라마츠는 카라아게를 더 보고 있으면 눈물을 쏟을 것 같아 고개를 푹 숙였다. 요 삼일, 갑작스럽게 식사량을 줄인 탓에 카라아게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뱃속이 미친 듯이 요동치고 있다. 약 1분, 카라마츠의 이성과 본능이 맹렬하게 사투를 벌였다. 가까스로 며칠 전, 화장실에서의 참사를 떠올린 덕분에 이성이 승리를 쟁취했지만 그의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카라마츠는 그 잠깐 사이에 반 이상으로 줄어든 카라아게 탑을 슬프게 쳐다본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슴이 아파 더는 버틸 수가 없었다.
“카라마츠, 안 먹어?”
오소마츠가 어쩐 일로 물어왔다. 카라마츠는 치질 때문에 먹을 수 없다. 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만은 잊지 않았기에 울적한 마음으로, “아직 점심밥이 꺼지지 않았다, 형님. 이따 치비타의 오뎅 먹으러 갈 것 아닌가. 그거나 먹도록 하지.”하고 대답했다. 치비타의 오뎅은 최고다. 그거라면 기름기도 적고, 국물도 맛있으니까, 괜찮겠지.
그래도 카라아게…, 마미의 카라아게…. 먹고 싶구나….
카라마츠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터덜터덜 2층으로 올라갔다.
8. 목욕은 좋다. 반신욕이 치질에 좋다는 이야기를 의사가 했었는데, 그건 맞는 말 같았다. 집에서도 수시로 반신욕을 하고 싶지만 그랬다간 눈치 빠른 형제들이 낌새를 알아차릴 가능성이 높아서 카라마츠는 목욕 시간을 제법 기다리고 있었다. 카라마츠는 형제들이 나갈 채비를 갖추는 중에도 슬그머니 다시 탕 안에 들어앉았다 쵸로마츠에게 한소리를 듣고 나서야 어기적거리며 나왔다. 느지막이 나왔음에도 다정한 형제들은 그를 위한 커피우유 한모금은 남겨줘서 카라마츠는 목욕탕에 대한 미련을 겨우 끊어낼 수 있었다. 커피우유는 맛있었다.
9. 밤바람이 서늘했다. 목욕을 마친 직후 특유의 따뜻함이 찬바람에 금방 날아가 버렸다. 몸이 차게 식으며 절로 웅크리며 걷는데 청바지를 입고 나온 탓인가, 하체가 빠르게 차가워졌다. 청 소재의 바지는 치질에 좋지 않구나, 하고 카라마츠는 뒤늦게 깨달았다. 찬바람에 빳빳해진 청바지에 다시 그 부분이 껄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그의 걸음걸이는 늦어졌다.
“형아!”
카라마츠의 신경이 모두 뒤로 쏠린 그 때,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제 앞에 서있는 쥬시마츠에 카라마츠는 화들짝 놀라버렸다. 동생에게 붙잡혀 갑자기 빠르게 걷게 되니-“윽!” 빳빳한 청바지가 엉덩이골을 매섭게 짓누르고 할퀴었다. 너무 아파서 카라마츠는 저도 모르게 동생의 손을 뿌리쳤다.
“…형?”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려보니 항상 태양처럼 밝은 얼굴이 흐려진 것이 보였다. 카라마츠는 들키지 말아야지, 라는 생각보단 걱정 끼치지 말아야지 라는 생각으로 급히 평소와 같이 선글라스를 끼며 멋있는 형을 연기했다.
“쥬시마츠, 오늘은 달이 아름다워서 이 밤을 만끽하며 걷고 싶군. 브라더는 먼저 가고 있어도 좋다!”
하늘을 보니 어쩐지 달이 보이지 않아 아차 싶었지만 이미 뱉어진 말, 카라마츠는 속으론 식은땀을 흘리며 뻔뻔하게 고개를 쳐들었다. 다행이 연기가 먹힌 듯, 순진한 동생은 알겠다고 말하며 앞서 걷는 형제들을 향해 쪼르르 달려갔다.
카라마츠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만, 뒤가 영 찜찜했다. 뭔가 축축한 느낌도 들었고…. 설마 안에서 고름이라도 터진 걸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고, 카라마츠는 창백해진 얼굴로 급히 몸을 돌렸다. 배가 몹시 고팠지만, 아래를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카라마츠는 빠르게 집으로 향했다.
10. 다행이도 마음이 불편해서 착각을 했던 듯, 팬티는 목욕하며 갈아입은 순백 그대로였다. 카라마츠는 집에 들른 김에 목욕 바구니를 정리한 다음 청바지에서 평소 잘 입지 않는 편한 소재의 트레이닝 바지로 갈아입고 다시 집을 나섰다. 급히 몸을 움직인 탓인지 배가 몹시 고팠다. 치비타의 오뎅이 계속 아른거렸다.
카라마츠가 허기진 배를 부여잡고 치비타의 가게에 도착하니 형제들은 전부 곤드레만드레 취해있었다. 기분 좋은 분위기를 깨기 민망해서 조용히 가장자리에 앉으니….
아뿔싸. 치비타 가게의 의자는 목재-한기를 가득 머금고 있는 단단한 나무 의자였다.
별 생각 없이 의자에 앉았다 카라마츠는 바짝 몸을 굳혀야했다. 의자에 가득했던 냉기가 민감한 아래쪽으로 옮겨와 항문 주변이 차게 식으며 송곳으로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어이, 카라마츠. 왔냐!”
사정 모르는 치비타가 반갑게 그에게 인사를 해왔다. 카라마츠는 의자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편히 앉지도 못하고 친구를 향해 어색하게 웃었다. 치비타는 사람 좋게 웃으며 카라마츠가 주문하지 않았어도 그의 앞에 척척 먹거리를 놓아줬다. 거기다 일전의 납치에 대한 나름의 사과인 듯, 귓속말로 “오늘 네 녀석은 무료다, 짜샤! 카라마츠, 여기 있는 거 전부라도 좋으니까 많이 먹고 가!”라고 은밀히 속삭여온다. 친구의 친절에 카라마츠의 애매한 미소는 더욱 깊어졌다.
치비타! 하필 왜 오늘인가!
하지만 그건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고통이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친구가 건넨 상냥한 친절을 거절할 수 없어서 카라마츠는 쭈뼛쭈뼛 접시의 우무를 한입 물었다. 그런데 의자가 여전히 너무 차가워서 엉덩이가 욱신거렸다. 안되겠다 싶어 카라마츠는 치비타에게 말했다.
“치비타.”
“응?”
“국물이나 조금 받을 수 있을까?”
“국물? 그거야 얼마든지 줄 수 있지만 그걸로 되는 거냐?”
의아하게 카라마츠를 쳐다보면서 치비타는 착실히 손을 움직여 대접에 국물을 퍼 담고 있었다.
“음. 아직 저녁이 배에 남아 있어서 그렇다. 우선은 국물부터 마시고 싶군!”
몸이 좀 녹으면 본격적으로 오뎅을 먹을 생각이었다. 거기다 급히 먹으면 체할 수도 있고, 오랜만의 치비타의 오뎅이라 분명히 정신없이 먹을 확률이 컸다. 국물을 많이 마시는 건 배도 적당히 채우면서 소변량이 느는 것이니 괜찮을 거라는 얄팍한 계산도 포함된 것이었다.
치비타는 많이 먹으라면서 대접을 그에게 내밀었다. 그 안에는 센스 있게도 꼬치가 제거된 오뎅이 몇 개 들어있었다. 뜨끈한 국이 몸에 들어가며 차게 얼었던 그곳이 사르르 녹았다. 몸도 마음도 따뜻해지는 국에 먹는 속도가 붙어 정신을 차리면 손에는 깔끔하게 비워진 그릇만이 들려있었다.
카라마츠는 치비타에게 빈 그릇을 내밀었다.
“치비타, 좀 더 주겠나?”
“얼마든지!”
많이 먹으라는 말은 진심이었는지 치비타의 얼굴엔 기꺼운 웃음이 걸려있었다. 카라마츠의 눈에는 그가 천사로 보였다. 카라마츠는 음식이 가득 담겨 다시 돌아온 그릇을 소중히 받았다.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다시 그릇에 가득 담긴 오뎅을 먹고, 국물까지 다 마셨다. 치비타는 바쁘게 움직이던 와중에도 빈 그릇을 발견하고 다시 그릇을 채워 그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카라마츠는 맛있는 오뎅에 이성을 놓고 또 한 그릇을 비웠다. 그것이 두 차례 더 반복되었을 쯤.
카라마츠는 국물을 비우다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차, 너무 많이 먹었다.
정신없이 뜨끈한 오뎅만 먹다보니 처음 치비타가 담아준 유부와 우무는 그대로 남아 식어있었다. 소중한 음식을 남기면 안 되지만 하지만 지금, 그것까지 먹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배에서 신호가 오고 있었다. 카라마츠는 창백해진 얼굴로 아래를 힐끔 내려 봤다. 몇 끼 적게 먹었다고 고작 이 정도로 볼록하게 튀어나온 배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지금의 식사를 과식으로 받아들였는지 살살 아파오는 아랫배에 그의 머릿속에는 며칠 전의 지옥 같았던 배변활동이 떠올랐다.
카라마츠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인근에는 화장실이 없었다. 그런데 꾸르륵, 꾸르륵. 형제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소리에도 유독 귀에 선명하게 들리는 몸 안쪽, 내장 활동 소리가 이렇게 공포스러울 수가 없었다.
“어? 카라마츠, 벌써 가냐?”
“아, 아아.”
허겁지겁 자리에서 일어나는 카라마츠를 치비타가 의아하게 쳐다본다. 평소 그의 식사량을 알고 있기에 치비타는 조금 놀란 눈치였다. 하지만 카라마츠는 급 간절해진 ‘화장실’에 친구에게 급히 인사를 하고 집에 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하지만 그는 한발을 떼려다말고 다시 몸을 돌려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그 손에 들린 지갑을 본 치비타가 급히 만류를 했으나 카라마츠는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내일부터는 수술비 충당을 위해 일을 할 것이고, 지난 일로 더는 친구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던 참이다. 치비타가 호인이라 오늘 자신의 오뎅값을 그냥 봐준다고 해도 인사불성이 된 형제들이 제대로 값을 치를지는 미지수였다. 또 외상이 늘어나면 악순환의 반복일 뿐이다.
“치비타, 이거면 오늘 형제들 몫은 될까?”
“아, 응. 그렇다만. 아니, 만 엔?”
치비타는 이리저리 뜯겨서 늘 빈곤한 카라마츠의 주머니 사정을 알고 있기에 천 엔쯤 내려나 생각했다. 그는 턱없이 부족한 액수여도 카라마츠가 제대로 돈을 낼 생각이 있다는 것에 크게 감동해서 오늘은 그냥 넘어가려고 결심하며 손에 쥐어진 지폐를 확인했다. 그리고 지폐를 확인하곤 놀라서 카라마츠를 쳐다봤다.
“어이, 카라마츠. 오늘 분치곤 너무 많잖아!”
“남는 건 그간의 외상에서 제하는 걸로 하지. 그래봤자 100만에 비하면 얼마 안 되잖은가.”
의외로 바르게 잡힌 개념에 치비타가 얼떨떨한 얼굴로 카라마츠를 쳐다봤다.
“그, 그건 그렇지만.”
“하여튼 치비타. 오늘도 잘 먹었다. 네 오뎅은 세계 제일, 아니 우주 최고다!”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정신을 놓고 먹을 만큼 말이지. 카라마츠는 앞으로 닥칠 고통을 떠올리며 속으로 피눈물을 삼켰다.
“어, 어.”
카라마츠는 다시 시작되는 배의 통증에 몸을 굳혔다. 친구와 더는 사담을 나눌 시간이 없었다. 그는 급히 인사를 남기고 뒤에 힘을 주며 허겁지겁 집을 향해 달렸다. 차가운 공기에 배가 점점 더 아파왔다.
11. 퀭한 얼굴로 카라마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새벽 4시. 일찍 잠자리에 든 덕분인지 딱 맞춰서 일어날 수 있었다. 공사장의 아르바이트는 해가 뜨기도 전 새벽부터 시작이 되는 터라 지금도 사실 조금 빠듯했다. 잠이 쏟아졌지만 카라마츠는 꾸역꾸역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런 고생은 오늘만 하면 됐다.
일주일 단기 아르바이트인데 숙식도 제공 받기로 했다. 다행이었다. 그쪽에서 자고 일어나면 한 시간은 더 잘 수 있겠지. 비록 화장실에서 고생은 했지만 어제 배를 든든히 채웠던 덕분인지 오늘 아침은 잠이 쏟아지는 것을 제외하면 비교적 힘이 넘쳤다.
딱히 형제들에겐 일을 하러 가느라 며칠 자리 비운다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전에도 종종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자리를 비우기도 했었기 때문에 카라마츠는 이번에도 별 생각이 없었다. 자리 비운 걸 알면 아마 반찬이 늘었다고 기뻐하지 않을까. 카라마츠는 그렇게 예상하며 미리 싸놨던 단출한 가방을 매고 방을 나섰다.
12. 핸드폰이 망가져서 수리를 보냈다. 쉬는 시간, 카라마츠는 무심코 핸드폰을 켰다 무슨 일인지 형과 동생들에게서 라인이 와있는 것을 발견했다. 무슨 일인지 싶어 확인을 하려했는데, 그만 손이 미끄러졌다. 시멘트 바닥에 떨어진 휴대폰의 화면은 까맣게 변해서 회생하지 못했다.
일찍 일이 시작되는 만큼 교대시간도 일러 카라마츠는 일을 교대하고 바로 수리센터로 향했다. 워낙 자잘한 사고를 많이 당하는 몸이라 기계를 사면서 보험을 들어놨기에 무상 수리는 가능하지만 제품이 오래되어 부품 공수하는데 어려움이 있어 수리기간이 좀 걸릴 거라고 직원이 말해왔다. 차라리 새로 구입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직원이 권해왔다.
확인하지 못한 메시지들이 조금 신경 쓰였지만 뭐, 늘 그렇듯 시답잖은 이야기일 것이다. 거기다 지금 핸드폰에 돈을 쓸 여유는 없었다. 어디까지나 수술비를 모아야하니까. 카라마츠는 직원의 권유를 거절하고 수리만 부탁하고 매장을 빠져나왔다. 수리는 일주일 정도 걸린다고 했다.
13. 일을 하고, 거친 밥을 먹고, 화장실 문제로 짧은 고통의 시간을 보내며 열심히 일하다보니 일주일은 금방 지나갔다. 드디어 수술 받는 날이 되었다. 병원에 가기 전 핸드폰을 찾기 위해 센터에 들렸으나 업무상의 착오로 내일 수리된 전화가 도착한다고 했다. 카라마츠에게 있어 그런 사소한 트러블은 일상이었기에 그럼 내일 찾으러 온다고 말하고 그는 병원으로 향했다. 형제들을 하도 못 만난 탓에 어쩐지 병원에 들어가기 전 토도마츠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아무도 없어서 카라마츠는 작게 웃었다. 얼른 수술 끝내고 귀여운 동생들, 얼른 보고 싶다-, 라고 속편한 생각을 하던 것도 잠시.
수술대 위에 올라 간호사들에게 둘러싸여 엉덩이를 드러내고 은밀한 곳을 면도 당하니 카라마츠는 부끄러움에 딱딱한 가죽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잠시 후, 꼬리뼈 부근에 마취 주사가 놓였다. 순식간에 엉덩이 부근의 감각이 이상해졌다. 누가 꾹꾹 피부를 누르는 것 같긴 한데 감각은 느껴지지 않는 이상한 느낌에 카라마츠는 고개를 갸웃했다. 곧 수술이 시작되었다. 뭔가가 타는 냄새가 나고, 마취를 했음에도 가끔 따끔함이 느껴졌다. 그래도 참을 수 있을 정도라 입을 꾹 다물고 있기를 몇 분.
수술이 끝났다. 예상과는 다르게 금방 끝난 데다 걸을 수도 있어서 카라마츠는 병실로 이동하면서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14. 수술 부위가 부위이니만큼 팬티 속에 커다란 기저귀 같은 것을 대고 있는 것은 필수였다. 영, 걸을 때마다 느낌이 이상했고, 걷기가 민망했지만 핸드폰을 찾으러 가야했기에 카라마츠는 어쩔 수 없이 다리를 끌며 병원을 나섰다. 일부러 병원 근처의 센터에 맡겼기에 5분 정도 걸으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카라마츠는 핸드폰을 찾자마자 다시 느릿느릿 병원으로 향했다. 다른 곳에 갈 생각은 들지 않았다. 바깥 공기가 좋기는 하지만 환자복을 입은 데다 아래 사정도 썩 좋지 못하니 오래 밖에 있을 수도 없었다. 어차피 하루만 지나면 퇴원이니 오늘은 얌전히 침대 위에 누워있자고 생각하며 그는 병원으로 한눈팔지 않고 병원으로 들어갔다.
규모가 제법 큰 건물에는 각양각색의 병원이 들어서있다. 1층은 내과 전문, 2층은 산부인과 전문, 3층~4층은 암 전문, 5층은 치항외과 전문, 6층은 피부과 전문 등등. 종합병원, 대학병원 그런 건 아닌 것 같은데. 병원연합이었나? 카라마츠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5층 버튼을 누르며 고개를 갸웃했다. 단어가 떠오르진 않았지만 5층에 도착하고 나선 아무려면 어떠냐 싶어 조심조심 자신의 병실을 향해 걸어갔다.
15. 퇴원해도 된다는 간호사의 말에 카라마츠는 병원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짐을 챙겨 바로 나왔다. 그리고 가벼운 걸음으로-여전히 아래쪽에는 작은 패드를 대고 있는 상태지만 수술의 효과인지 배변에 고통도 없었고- 모든 걱정을 떨치고 집으로 향했다.
카라마츠가 집 문을 열자마자 보인 것은 놀랍게도 열렬함을 넘어 격렬히 그를 반기는 형제들이었다. 카라마츠는 형제들이 자신을 보자마자 갑작스럽게 달려든 탓에 모두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어 뒤로 나자빠졌다. 엉덩이 부분이 욱신거렸지만 그래도 며칠 만에 만난 형제들이 이렇게나 그를 반겨주는 사실이 기뻐서 행복하게 웃었다.
16. 카라마츠는 한동안 대중탕은 가지 않기로 했다. 정확히는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다. 뜨끈한 목욕탕은 좋지만, 형제들에게 수술사실을 들키면 곤란했고, 무엇보다 자신이 이런 기저귀 같은 것을 차고 있는 걸 들키기도 싫었다. 또, 수술한 직후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곳에서 몸을 닦는 건 위험하다는 것 정도는 카라마츠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도 오소마츠가 권했지만 카라마츠는 어쩔 수 없이 거절해야했다.
얼른 나아서 형제들이랑 같이 목욕탕에 가고 싶구나, 생각하며 카라마츠는 홀로 조용히 목욕을 즐겼다.
17. 병원에서 배변의 고통이 없던 것은 병원에서 썼던 마취제의 효과가 강력했던 덕분인 듯하다. 카라마츠는 형제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새벽에 조용히 화장실에 틀어박혔다. 그는 배출의 아픔을 호소하는 항문에 입을 틀어막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진통제를 먹었어도 고통은 줄어들지 않았다. 수술하기 전보다 더 지독한 통증에 여성들이 애를 낳을 때 고통이 이러할까. 하고 출산의 고통까지 어림짐작 해봤다.
마미, 존경합니다.
카라마츠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겨우 볼일을 마치고 변기를 내려 보는 데, 카라마츠의 눈이 잘게 떨렸다. 붉게 물든 변기 속이 그로테스크했다. 이건 좀 심하지 않나, 싶어 그는 얼굴을 찌푸렸다. 마침 내일이 병원 방문 날이었다. 상태를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변기 물을 내렸다.
이불에 누우니 어쩐지 엉덩이 골을 타고 피가 흐르는 기분이 들어 그는 옆으로 몸을 눕혔다. 옆으로 누우니 항문도 덜 아팠다. 눈이 스르르 감기는데 뒤에서 토도마츠가 몸을 바짝 붙이는 것이 느껴졌다. 동생의 온기에 카라마츠는 달게 잠에 들었다.
18. 쵸로마츠가 차려준 밥을 토도마츠와 먹고 카라마츠는 욕실에 들렀다 2층으로 올라왔다. 올라와보니 이미 토도마츠는 집을 나간 듯, 자리에 없었다. 동생이 벗어놓고 간 잠옷만이 옷장에 걸려있었다. 카라마츠는 옷을 갈아입고 보험증과 지갑을 챙겨들고 1층으로 내려갔다. 부엌에서 물소리가 들려 슬쩍 가보니 있을 거라 생각했던 쵸로마츠는 없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 마츠요가 보였다.
“마미, 쵸로마츠는?”
“슈퍼에 갔단다. 카라마츠, 어디 나가니?”
“응, 잠깐.”
“아, 카라마츠. 나가기 전에 잠깐 쓰레기 통 좀 비우지 않겠니? 아까 청소기 밀다보니 가득 찼더구나.”
“오케이! 맡겨줘, 마미!”
그 정도야 쉬운 일. 엄마에 대한 존경심이 정점을 찍고 있는 카라마츠는 흔쾌히 그녀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그는 쓰레기 봉지를 하나 챙겨들고 위로 올라갔다. 손에 들고 있던 지갑과 보험증을 바닥에 놓고, 방의 쓰레기통을 비웠다. 더불어 치질임을 들키지 않기 위해 숨겨놨던 빈 약봉지들도 넣었다. 쓰레기 봉지는 아직 여유로웠기에 카라마츠는 다시 1층으로 내려와 거실의 쓰레기통, 부엌의 쓰레기통까지 전부 말끔하게 비웠다. 그제야 가득 찬 봉지를 단단히 묶어 마당에 내놓는 걸로 임무를 마쳤다. 손에서 뭔가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욕실로 가 손을 말끔히 씻었다. 그 틈에 엄마는 설거지를 마치고 외출을 한 듯, 부엌엔 아무도 없었다.
카라마츠도 잠시 미뤘던 외출을 하기 위해 방에 올라가 아까 두고 내려왔던 보험증과 지갑을 다시 챙겨서 내려왔다. 현관으로 가려던 차, 등 뒤에서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형아, 외출?”
카라마츠가 돌아보니 마당으로 통하는 유리문 밖에서 쥬시마츠가 얼굴을 빼꼼 내밀고 있었다.
“아, 쥬시마츠. 있었나?”
“어디 가?”
동생을 속이는 것 같아서 미안했지만 들킬 수는 없기에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오랜만에 물고기에게 사랑을 전달하기 위해 가려고 한다. 쥬시마츠도 같이 갈 텐가?”
쥬시마츠는 낚시를 그다지 즐기는 편이 아니기에 10이면 9정도는 거절을 한다. 나머지 1도 가는 도중 어딘가로 사라져서 결국은 매번 카라마츠 혼자 낚시를 하게 된다.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쥬시마츠는 할 일이 있다며 권유를 거절했다.
카라마츠는 보험증을 든 손을 주머니에 자연스럽게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가. 그럼 혼자 다녀오겠다.”
“응!”
천진한 동생의 목소리에 가슴이 욱신거렸지만, 속으로 용서해달라고 말하며 카라마츠는 집을 나섰다. 벌써 오후 4시였다. 예약 시간은 5시지만 언제 형제들이 돌아올지 모르는 시간이었다. 얼른 집 근처를 벗어나야했다. 카라마츠의 걸음이 빨라졌다.
19. 카라마츠는 옆으로 누워 자신의 안쪽을 비추는 화면을 봤다. 몇 번 해봤다고 이젠 제법 익숙한 느낌이라고 쓰게 웃고 있는데 옆에서 의사의 침음성이 들렸다.
“죄송합니다, 마츠노 씨.”
“에.”
표정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의사가 미간을 찌푸리며 카라마츠에게 사과를 해왔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안쪽에 덩어리가 하나 더 있었다고 한다. 이전 촬영 사진과 비교를 해보면 그때도 있던 것으로 제대로 제거를 했어야하는 데 빠뜨린 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잘못이라고 솔직히 말해왔다. 일주일 사이에 곪아버려서 빠르게 치료를 해야 할 것 같다고 덧붙이며 수술비 등은 이쪽의 실수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에 카라마츠는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오전에 가장 먼저 치료를 받기로 하고 카라마츠는 다시 환자복을 입어야했다.
20. 의사의 거듭되는 사과와 이후 치료와 사후 관리에 대해 설명을 받고 퇴원했다. 그래도 솔직하고 좋은 의사라고 생각했다. 다시 재발했다고 말해도 자신은 몰랐을 텐데, 그렇게 말해주니 이곳에 대한 악감정은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신뢰가 높아져서, 그런 일은 없어야하지만 나중에 혹시라도 재발한다면 꼭 다시 이곳에 오겠다고 다짐하며 카라마츠는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을 나섰다. 비록 항문은 아팠지만 좋은 의사를 알게 되어 마음은 가벼웠다. 이제 집에 가서 편히 쉬면되겠구나, 그렇게 생각하는데.
“어디 가나, 마츠노.”
누군가 어깨를 잡아 왔다.
카라마츠가 고개를 돌려보니 낯선 얼굴들이 그곳에 있었다.
“일전엔 신세를 졌다고?”
낯선 얼굴들이었지만 많이 들어본 내용에 무슨 일인지 카라마츠는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
아, 하필.
카라마츠는 한숨을 쉬며 저항 없이 그 무리에 붙잡혀 어둑한 골목으로 들어갔다.
21. 귀찮기도 하고 컨디션도 좋지 않고 몇 대 맞고 끝날 수 있을까 생각하여 조금 맞던 차에 이치마츠의 친구-고양이가 나타나 걷어차이는 걸 보곤 이성을 놓아버렸다. 낄낄 웃으며 고양이를 걷어차는 놈들의 말을 들어보니 이전에도 이 건으로 싸움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가, 이치마츠의 원수들인가!
동생의 소중한 친구를 괴롭히다니! 카라마츠는 맞던 것을 멈추고 자신의 위로 쏟아지는 팔목을 잡아 그대로 저쪽으로 집어던졌다. 우당탕, 요란한 소리가 나며 고양이를 괴롭히던 녀석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렸다. 쓰레기 더미에 처박힌 자신의 동료를 확인한 녀석들이 급히 이쪽으로 달려오는 걸 보며 카라마츠는 몸에 힘을 주고 앞으로 주먹을 내질렀다.
그리고 이후, 엉덩이의 아픔도 잊을 만큼 싸움에 열중해버렸다. 그 후유증으로 몸 이곳저곳이 욱신거렸지만 역시, 항문이 가장 아팠다. 그래도 이치마츠의 원수를 갚았다고 뿌듯하게 웃었다. 멀리서 집이 보였다.
22. 시비를 걸던 녀석들과 싸운 후, 어떻게 집에 돌아온 건지 사실 명확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눈을 뜨고 일어나니 욱신거리는 몸과 깔끔하게 치료된 상처들로 지난밤에 있던 일 몇 가지를 떠올릴 수 있었다.
자신은 분명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일어났었다. 그리고 어째선지 곁에 있던 쵸로마츠와 이치마츠가 그를 화장실까지 데려다주었다. 화장실에서 나와서 다시 방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욕실로 자신을 안고 가는 이치마츠. 정신이 몽롱하던 와중에도 수술 사실을 들킬 수 없다는 건 잊지 않고 있어서 싫다고 외치며 저항했지만 그럼에도 억지로 몸을 씻기던 둘….
차례대로 거기까지 떠올린 카라마츠는 절망에 차서 손바닥을 얼굴을 가렸다.
아. 들켰구나.
감추려고 발버둥 쳤던 그간의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었다.
망했다. 이제 계속 놀림 당하겠지.
카라마츠가 그렇게 어림짐작하며 절망하고 있는데 방문이 열렸다. 쥬시마츠였다. 눈이 마주치자 쥬시마츠가 “카라마츠 형아!!”하고 외치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품에 답싹 안겨오는 동생을 얼떨결에 안아드니, 밖에서 우당탕 발소리가 들리고 다른 형제들 모두가 방으로 들이닥쳤다. 아, 다 모여서 놀리려나, 싶어서 각오를 다지는데 놀리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아니, 이상하게도 다들 몸은 괜찮냐고 안부부터 물어왔다. 카라마츠가 얼떨떨해하면서 괜찮다고 말하면 어쩐지 잔뜩 일그러진 얼굴들로 그를 쳐다봤다. 무심결에 다들 어디 아프냐고 조심스럽게 물으니 쵸로마츠는 입술을 꾹 깨물고, 이치마츠는 조용히 일어나 방을 나갔고, 토도마츠는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품에 안겨있던 쥬시마츠는 그를 좀 전보다 더 힘줘 끌어안았고, 오소마츠는 슬프게 웃으며 카라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이 묘한 분위기를 따라가지 못한 카라마츠가 당황하니 다들 “응, 그래. 우린 괜찮아.”라고 말해왔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이후론 형제들이 번갈아가며 그를 간병하기 시작했다. 거기까지는 좋다. 대충 눈치를 보니 몸을 다친 것만 알아차리고 엉덩이 사정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 같기도 했다. 약간 불안하긴 했지만 계속 잘 대해주는 형제들의 모습에 기뻐 그렇게 판단하고 그들이 주는 친절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것은 몸의 상처가 거의 다 나아서도 지속되고 있어서 카라마츠는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23. …동생들이 조금 이상하다. 카라마츠는 그렇게 생각했다.
토도마츠는 자꾸 외출을 권유한다. 하지만 아직도 아래에 패드를 차고 있는 것이 어색하고 진통제를 먹어도 욱신거리는 항문에 걷는 것도 조금 부담스러워서 거절을 하면 왜인지 울상을 지으며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들어와선 잡지책을 펼쳐놓고 이곳에 가보고 싶다며 다시 은근한 권유를 시작한다. 계속 되풀이되는 권유에 카라마츠는 조금 난처했다. 동생의 권유는 다른 형제들이 말리면 그제야 멈춘다. 풀죽은 동생의 얼굴에 카라마츠가 망설이다 “나중에, 같이 가면 안 될까?”하고 말하면 토도마츠가 눈을 동글게 뜬다. 그리고 어째선지 울먹이며 “나중에, 꼭 같이 가는 거야! 알았지?”하고 외치며 품에 안겨온다.
나와 그렇게나 함께 쇼핑을 가고 싶었던 걸까, 짐이 많은 걸까, 용돈이 부족한 걸까.
사고 싶은 것을 사지 못하고 시무룩해할 동생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파서 적어도 언제쯤 패드를 대지 않아도 될지 다음에 의사 선생님에게 물어봐야겠다고 카라마츠는 생각했다.
쥬시마츠는 평소처럼 야구를 권한다. 하지만 역시나 몸이 이런 상태라 마음껏 어울려주지 못할 것이 뻔해서 거절을 하면 이번엔 지붕에 올라 노래를 부르자고 권한다. 차가운 바닥은 엉덩이에 좋지 않아서 아쉽게도 거절을 하면 쥬시마츠는 말없이 뒤에서 카라마츠를 끌어안는다. 동생의 어리광이 좋아 토닥이듯 머리를 두드려주면 쥬시마츠는 카라마츠의 목덜미에 볼을 비비며 중얼거렸다.
“나는 다시 형아랑 노래 부르고 싶습니다.”
어쩐지 물기가 가득한 목소리에 동생을 살피려고 하면 끌어안고 있는 힘이 더 강해져서 카라마츠는 한동안 그 품에 안겨 있어야 했다. 자신과 노래를 그렇게 부르고 싶어할 줄은 몰랐기에 카라마츠는 “조금 컨디션이 나쁜 탓이다. 몸이 나아지면 꼭 같이 부르지.”라고 말했다. 그러니 뒤에서 “응…! 약속입니다!”하고 기운찬 목소리가 들렸다.
이치마츠는 갑자기 고양이 먹이를 주러 가지 않겠냐며 권해왔다. 좀처럼 드문 이치마츠의 부탁이기에 카라마츠는 몸이 불편해도 거절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일어나려는데 갑자기 다리가 저려와 그의 몸이 비틀했다. 넘어지나! 싶어 눈을 감으니, 누군가 급히 그의 팔을 잡아당긴다. 놀라서 쳐다보면 어느새 그는 이치마츠의 품에 안겨있었다. 한껏 찡그린 얼굴로 카라마츠를 빤히 보던 이치마츠는 “…다음에 가자.”라고 말하며 그의 손을 꼭 잡아줬다. 화를 내며 가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한껏 아쉬운 표정으로 다음에 가자는 말에 급한 일이 떠올랐나 싶어 카라마츠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치마츠는 그런 그를 빤히 쳐다보다 입을 꾹 깨물고 방을 나갔다. 한참 후에 돌아온 이치마츠의 눈가가 붉어서 어디 아프냐고 카라마츠가 걱정스럽게 물어보니 “아픈 건 내가 아니라-”라고 말하다 입을 다문다.
아, 고양이가 어디 아픈가보다.
이 동생이 이런 표정을 짓는 경우는 그럴 때뿐이었다. 눈치 없이 동생의 아픔을 건든 것 같아 카라마츠는 급히 사과를 했다. 그 사과를 들은 이치마츠가 눈을 질끈 감으며 카라마츠를 끌어안았다. 위로를 바라는 걸까 싶어 카라마츠는 이치마츠를 마주 안아주며 등을 토닥여줬다.
쵸로마츠는 아이돌의 콘서트 표도 전부 취소하고 집에만 있다. 카라마츠가 거실에 있으면 거실에서 구직 잡지를 보고, 2층 방에 있으면 2층 방에 올라와 신문을 읽는다. 그리고 가끔씩 “카라마츠, 나가서 살게 되면 이런 집이 좋을까?”하면서 부동산 잡지를 가져와 그에게 내미는데 쵸로마츠 혼자 살기엔 너무 넓지 않을까, 라고 말했다가 한 대 맞았다. 그리고 맞은 직후 영문을 몰라 카라마츠가 울상을 지으며 쵸로마츠를 보면 이내 사색이 되어서 그를 끌어안아줬다.
“절대로 너는 내가 먹여 살릴 거니까. …내가 취직하고 독립할 때까지, 건강해야해? 카라마츠. 아니, 독립해서도 건강해야지!”
하고 말해온다. 부양해준다는 말이 말뿐이라도 좋아서 카라마츠가 맞은 것도 잊고 고개를 끄덕이면 쵸로마츠가 애틋하게 웃어왔다.
24. 동생들만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형도 이상하다. 라고 카라마츠는 생각했다.
“카라마츠~, 어디가?”
“화장실에 간다.”
카라마츠가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나오면 문 밖에 오소마츠가 서있었다. 그도 급했나 싶어서 카라마츠가 문가에서 벗어나 들어가라고 하면 들어가지 않고 카라마츠의 등에 매달린다. 화장실 급했던 것이 아니냐고 물으면 아니라는 대답이 들려와 카라마츠는 고개를 갸웃했다. 오소마츠는 왜 화장실 앞에 있던 걸까.
“카라마츠! 나가려고?”
카라마츠가 외투와 지갑을 챙겨드니 낄낄 웃으며 만화책을 보고 있던 오소마츠가 고개를 번쩍 쳐든다.
“아, 편의점. 만두가 먹고 싶다.”
“그럼 나도 갈래.”
“뭐 살 거 있나?”
“응.”
옆에 찰싹 달라붙으며 떨어지라고 밀어도 떨어지지 않고 부득부득 편의점까지 쫓아와선 아무 것도 사지 않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오소마츠는 왜 살 것도 없으면서 편의점에 따라오는 걸까.
카라마츠가 자다가 문득 기분이 이상해서 눈을 뜨면 오소마츠가 그 얼굴을 보고 있었다. 처음엔 식겁해서 놀랐는데 이게 매일 계속 되니 이젠 놀라지 않게 되었다. 카라마츠가 잠에 취해 험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오소마츠에게 물었다.
“형님…, 안자나….”
“…카라마츠.”
자신의 이름이 불렸다는 것을 둔한 머리가 알아챌 쯤, 가볍게 입술에 쪽하고 뭔가가 닿았다 떨어진다. 에?
잠이 떨어진 눈으로 멍하니 형의 얼굴을 쳐다보니 본 적 없는 표정을 짓고 있는 오소마츠가 보인다. 사랑스러운 것을 보듯, 귀한 것을 보듯, 달콤함이 철철 넘치는 얼굴로 오소마츠가 카라마츠를 보고 있다. 오소마츠는 굳어있는 카라마츠의 볼을 가볍게 쓰다듬고는 “아침에 보자.”라고 말하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소마츠가 부스럭거리며 제 이부자리로 들어가는 소리를 듣는 카라마츠의 얼굴은 열감기에 걸린 사람마냥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러니까, 오소마츠는 왜, 밤마다 내게 입 맞추는 걸까?!
카라마츠는 오늘도 형제들의 기행에 혼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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