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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츠 사변

[오소마츠상] 카라마츠 사변4

쥬시마츠는 계단을 2개, 3개씩 겅중겅중 뛰어 순식간에 2층에 도착했다. 그런데 막상 2층 방 앞에 도착해선 걸음이 느려졌다.

카라마츠 형이 다녀왔다고 인사를 해주지 않았다. 항상 외출 후에 돌아오면 대답해주는 사람이 없어도 기운차게 인사해줬었는데. 거실 문을 열고 자신과 눈이 마주치면 선글라스를 벗으며 환하게 웃어줬었는데. 성큼성큼 걸어와서 “오늘도 기운이 넘치는군, 쥬시마츠! 좋아 보여서 나도 좋다!”라고 말해줬었는데. 그 따뜻한 손으로 다정하게 머리도 쓰다듬어 줬었는데.

오늘은 그 모든 것이 없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작은 일상의 부재는 쥬시마츠의 마음에 두려움을 심어줬다.

원래 형제들 중 감이 가장 좋은 쥬시마츠다. 쵸로마츠나 토도마츠처럼 세련되고 정돈된 단어로 이 상황을 정리하진 못하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형제들의 말을 빌리면 ‘야생의 감’으로 표현되는 그의 본능은 지금이 ‘좋지 않은 상황’을 넘어 ‘위험한 상황’임을 확실히 인식하고 있었다.

상황은 정확하게 알지만, 같은 맥락으로 문제를 해결할만한 센스는 부족한 쥬시마츠였기에 그는 불안감에 떨며 조심조심 방을 향해 걸어갔다. 지금이라도 형들을 불러올까? 말을 잘하는 쵸로마츠나 가장 엉망이지만 가장 믿음직한 오소마츠나.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듦에도 쥬시마츠의 발은 착실히 방을 향했다. 다시 내려갔다 오는 것은 발이 빠른 쥬시마츠에겐 아주 찰나의 시간이지만 ‘그럼 너무 늦어!’라고 마음 어디선가 강한 경고음을 내지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더 늦으면 안 돼.

쥬시마츠는 마음의 경고를 무시하지 않고, 용기를 내 문을 열었다.

“…카라마츠 형, 다녀오셨슴까?”

그리고 눈에 보이는 푸른색 인영을 향해 용기를 쥐어짜 자신이 먼저 인사를 했다. 방에 들어서지도 못하고 문 뒤에 서서 얼굴만 내밀어 인사를 한 쥬시마츠는 카라마츠를 보는 순간 눈이 크게 떠졌다. 바다 같던 푸른색이 하얀 붕대와 함께 노을에 잠겨 얼룩덜룩한 멍과 같은 빛이 되어있었다.

“쥬시마츠인가.”

노을 지는 창문 아래에서 카라마츠가 평소와 비슷한 어조로 자신을 반겼다. 그 호쾌한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가득했으나 주홍빛 노을에 역광진 카라마츠 얼굴의 웃음은 짙은 그림자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다. 어떤 표정으로 웃으며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인지 시력을 집중 해봐도 전혀 알 수 없는 것이 기이하기 짝이 없어 늘어진 파카 소매로 가려진 쥬시마츠의 팔뚝엔 소름이 돋았다.

“카라마츠 형?”

쥬시마츠는 덜덜 떨리는 발끝에 힘을 줘 방으로 들어섰다. 처음 한 발이 어려웠지 그 다음 걸음은 쉬웠다. 카라마츠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계단을 올라올 때처럼 성큼성큼 순식간에 다가온 쥬시마츠는 그 옆에 털썩 앉았다.

“무슨 일이지, 쥬시마츠?”

쥬시마츠는 카라마츠를 봤다. 가까이에서 보는 카라마츠 옆얼굴엔 미소가 걸려있었다. 그런데 노을 탓인지 주홍빛으로 물든 미소는 어딘지 덧없어서 쥬시마츠는 선뜻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쥬시마츠가 카라마츠에게 하고 싶은 말은 많았다. 미안해, 형. 많이 아파? 병원에서 뭐래? 얼굴에 붕대 감은 거 나 때문이지? 내가 형 아프게 한 거지? 미안해, 정말 미안해, 형아. 카라마츠에게 전하고 싶은 많은 단어들이 계속해서 생겨나 정리되지 않고 쥬시마츠의 안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럴 때는 천천히 숨을 들이 쉬면서 줄을 세우는 거다, 쥬시마츠.’

그 때, 언젠가의 상냥한 기억이 혼란스러운 쥬시마츠의 생각을 정지시킨다.

‘카인드한 마이 브라더, 쥬시마츠여, 한 번에 많은 생각들이 떠오를 때는 자신이 가장 하고 싶은 말부터 천천히 숨을 들이쉬며 정리를 하면 된다. 퓨어한 브라더의 마음은 그 누구라도 반드시 알아줄 테니까.’

응, 카라마츠 형.

가장 하고 싶은 말, 형에게 지금 가장 하고 싶은 말은.

“카라마츠 형, 저기, 저기, 정말로 미”

“쥬시마츠, 특별히 볼 일이 없다면 나중으로 미루면 좋겠군. 지금 조금 바빠서.”

“아?”

부드러운 카라마츠의 목소리가 쥬시마츠의 목소리를 날카롭게 잘랐다. 날카롭게 잘려 나오지 못한 말의 조각은 쥬시마츠의 가슴에 서늘하게 박혔다. 생각해본 적 없고, 경험해본 적 없는 상황에 쥬시마츠는 머릿속이 하얗게 물들었다. 겨우 정돈된 쥬시마츠의 안이 파도가 휩쓸고 간 모래성처럼 엉망으로 뒤엉켰다. 그 와중에 본능이 정확하게 알려온다.

뭔가, 잘못되었다. 고.

쥬시마츠는 소매로 일그러지려는 입을 가리며 카라마츠의 하는 행동을 봤다. 펼쳐진 보자기에 가지런히 놓인 푸른색의 옷가지들이 낮은 탑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놓인 베개는 카라마츠의 것이었다. 카라마츠는 보자기를 묶으려는 듯 손을 움직였지만 한쪽 밖에 쓸 수 없는 손으론 제대로 묶을 수 없는지 미간을 찌푸리고 조금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다 도무지 안 되겠는지 카라마츠는 결국 매듭은 짓지 못하고 보자기로 적당히 옷을 감쌌다. 그 일련의 행동을 보던 쥬시마츠는 그에 떠오르는 불길한 생각에 다급히 둘둘 말린 보자기를 만족스럽게 쳐다보는 카라마츠의 팔뚝을 잡았다.

“카라마츠 형?”

“쥬시마츠, 오늘 조금 이상하군. 왜 그러지?”

쥬시마츠는 이상한 것은 내가 아니라 형이잖아. 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야 제대로 마주쳐진 카라마츠의 시선에 입이 아교로 붙인 듯 떨어지지 않았다. 뭔가 달랐다. 늘 별 가루를 뿌린 꿈 조각처럼 반짝반짝 빛나던, 쥬시마츠가 알던 형의 눈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비어버린 눈이었다.

“흠. 할 말이 없다면 그럼 난 이만”

“혀, 형? 어디 가심까? 저도 같이 갑니까?”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그 모습에 쥬시마츠는 충격을 억누르고 겨우 입을 뗄 수 있었다. 이상해, 형, 지금 정말 이상해. 라고 외치며 꼭 안아주고 싶은 것을 꾹 누르며 반쯤 일어선 카라마츠를 올려봤다. 다시 자리에 앉아달라고, 일어나지 말라고 하고 싶은데 이상하게 목이 매여서, 입 밖으로 내지 못하는 그 마음을 담아 아직 붙잡고 있는 카라마츠의 팔뚝에 힘을 실었다.

카라마츠는 잠시 멈칫했으나 그뿐이었다. 그가 마음먹으면 형제들 중 그를 힘으로 당해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릴 때도, 성인이 된 지금도. 형제들 중 그 사실을 기억하는 이는 오소마츠 정도겠지만.

“괜찮다, 쥬시마츠. 혼자 할 수 있다.”

“형!”

쥬시마츠의 다급한 부름에도 “그냥 1층에 가는 것뿐이니까.” 라고 덧붙이며 말을 자른 그는 가볍게 먼지를 털듯 쥬시마츠에게 붙잡힌 팔을 흔들었다. 그것만으로도 쥬시마츠는 팔을 놓쳤고, 카라마츠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라마츠는 망연히 저를 보는 쥬시마츠의 시선을 흘려버리며 한쪽 손을 쓸 수 없어 매듭짓지 못하고 어설피 둘둘 말린 보따리를 들어 깁스한 팔과 몸통 사이에 단단히 밀어 넣었다. 그리고 목발과 베개를 한손에 그러쥐고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느릿느릿 걷는 그 뒷모습이 어느새 흘러넘치는 눈물 때문에 아지랑이처럼 위태롭게 흔들렸다. 그것을 잡기 위해 손을 뻗어보지만 손아귀에 남아있는 것은 뜨거웠던 언젠가의 기억뿐. 오래전의 일도 아닌데 아련한 잿빛으로 물든 기억은 먼지처럼 바스러져 손에 남은 것은 뜨거웠었다는 기억뿐이다.

시퍼렇게 멍든 파란색이 여름날 아지랑이처럼 피어나고 일그러지다 저편으로 날아간다.

쥬시마츠는 카라마츠를 향해 뻗었던 손을 내렸다. 힘이 빠져 무너진 상체를 지탱하기 위해 바닥을 짚으며 직감했다.

늦었다고.

쥬시마츠는 카라마츠가 앉아있던 자리 위로 몸을 웅크리며 서러운 눈물을 쉼 없이 토해냈으나, 이제 그것을 달래주는 다정함은 자리에 없었다. 카라마츠는 그에게 끝까지 “다녀왔다, 브라더.”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거실에 남은 이들은 쥬시마츠가 활짝 문을 열어놓고 간 탓에 훤히 보이는 빈 복도를 멍하니 바라봤다. 쥬시마츠의 힘찬 발소리가 순식간에 멀어지고 쿵쾅쿵쾅 요란한 소리를 내며 계단을 밟고 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오래된 집은 방음과는 거리가 멀어 2층 복도를 걷는 쥬시마츠의 발소리가 머리 위에서 작은 공이 튀어 오르듯 통통 들려왔다. 평소 시끌벅적한 상태였다면 결코 들을 수 없었을 정도로 작은 울림은 거실의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토도마츠가 중얼거렸다.

“긴장했나봐, 쥬시마츠 형.”

“…응.”

이치마츠가 흐릿한 어조로 대답했다. 계단을 오를 때와는 다르게 현저히 느려진 울림은 쥬시마츠의 마음이 어떤지 알려주고 있었다.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에 긴장하지 않은 이는 사실 아무도 없지만.

다른 형제들처럼 윗층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오소마츠가 미간을 와락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저기, 쵸로마츠. 아무 목소리도 안 들려.”

“…오래된 집이니까 발소리까진 이해해도 2층 목소리가 밑에까지 들리면 그건 심각하게 문제 있는 거지.”

“하지만 부모님 싸우는 소리는 잘 들렸는데.”

“그건 언성을 높이신거잖아. 엄연히 다르다고.”

이 바보 장남이 이런 상황에서도 바보 같은 소리를 하네. 라고 생각하며 쵸로마츠가 혀를 찼다.

“하지만 카라마츠 화났을 텐데. 소리 지르지 않는 걸까. 나라면 집에 들어오자마자 화내고 때리고 부수고 그랬을 텐데.”

“부수기까지 하는 거냐?! 야만인이냐?! 그리고 카라마츠가 형이랑 같냐. 그 녀석은 화가 나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오소마츠를 보며 딴죽을 걸던 쵸로마츠는 말을 하다 말았다.

어라?

“그 녀석은…. 카라마츠는….”

어떻게 화를 냈더라.

형제들과의 마찰 후에 오소마츠는 보통 화가 나면 자신이 화가 났다고 누구라도 알아차릴 수 있게 어필 한다. 애들처럼 잔뜩 골이 난 얼굴로 씩씩거리는 것이 화가 났을 때의 오소마츠.

이치마츠도 화가 났을 경우 심기가 불편한 것을 굳이 그것을 감추지 않는다. 평소보다 언행이 더 거칠어지고, 자기비하도 덩달아 심해지는 것이 화가 났을 때의 이치마츠.

쥬시마츠는 화를 내는 일이 드물지만 아주 가끔 ‘에엑, 고작 그걸로 화를 내는 거야?!’ 싶은 일에 화를 낸다. 그 때의 쥬시마츠는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진다. 어쩌면 화난 것을 가장 알아보기 쉬운 사람은 쥬시마츠일 것이다.

토도마츠는 화를 낸다기보다 ‘삐진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린다. 화를 내고 있기는 한데 막내여서 그런지 요상한 표정을 짓기는 하지만 썩 무섭게 느껴지진 않는다.

그런데 카라마츠의 화난 얼굴은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에 쵸로마츠는 조금씩 이상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쵸로마츠는 형제들 중 감정 표현이 가장 다양하고 솔직한 사람은 당연히 카라마츠라고 항상 생각하고 있었다. 형제들이 아파하면 자신이 아픈 것처럼 간병을 못해서 안달인 사람은 바로 카라마츠, 형제들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자신의 일처럼 가장 기뻐하던 사람도 카라마츠, 자신도 겁이 많으면서 형이랍시고 동생들 앞에 서려던 사람도 카라마츠, 어린애도 아니고 다 큰 성인, 그것도 남자가 하루에 적어도 한번은 ‘사랑하고 있다고, 브라더들.’이라고 낯간지러운 말을 잘도 하던 사람도 카라마츠.

그것이 과해서 타박을 받음에도 카라마츠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주위에 거부당하는 것의 곱절로 자신을 내보인다. 그게 바로 쵸로마츠가 알고 있는 카라마츠다.

그런데 이상하다.

우리들에게 화를 내는 카라마츠의 표정만은 떠오르지 않는다. 형제들과 분위기에 휩쓸려 장난처럼 다투는 것이 아닌 진지하게, 진심으로 화를 내는 카라마츠의 얼굴은 쵸로마츠가 상상할 수 없는 미지의 것이었다.

형제들 중 가장 착한 쥬시마츠조차 ‘쥬시마츠가 화를 낸다면?’이라고 상상해보면 쉽게 그 반응이 떠오르는데, ‘카라마츠가 화를 낸다면?’이라는 문장에선 어쩐지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카라마츠가 우리들한테 화를 내? 그 카라마츠가?

-나라면 들어오자마자 화내고, 때리고, 부수고 그랬을 텐데.

라는 오소마츠의 말이 머릿속을 맴돈다. 그 말에 야만인이라고 지적은 했지만 실상 카라마츠와 똑같은 일을 쵸로마츠, 자신이 당한다면?

납치를 당한다. 믿고 있던 형제, 가족들이 외면했다. 거기다 불에 타 죽기 직전의 자신을 구해주기는커녕 오히려 공격을 했다. 그걸 어떻게 참아! 아마 자신은 오소마츠와 똑같거나 비슷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 아니, 반드시 녀석들에게도 똑같이 해줄 거다. 그게 당연하지. 그 정도의 상황이라면 당연히…!

쵸로마츠는 거기까지 생각을 떠올리곤 창백하게 질렸다. 자신의 사고의 모순을 깨달았다.

이 얼마나 이기적이란 말인가.

카라마츠가 병원에 있다는 엄마의 전화를 받은 후부터 미안했던 것, 걱정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 생각의 기반에는 ‘카라마츠가 화를 낸다.’가 아닌 ‘사과를 하면 카라마츠는 당연히 받아주고, 용서해준다.’라는 구역질나는 제멋대로의 이기심이 깔려있는 것이다. 가해자가 피해자의 권리인 용서를 제멋대로 재단하고 있었다! 가해자 주제에!

쵸로마츠는 카라마츠가 형제들을 향해 화를 낸다는 선택은 당연히 없다는 것처럼 아예 생각조차 못하고 있던 자신이 너무나 추잡하게 느껴졌다. 그는 입을 틀어막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쵸로마츠?”

오소마츠가 쵸로마츠를 부른다. 구역질을 속으로 누르며 쵸로마츠가 말했다.

“나도, 올라가볼게.”

“어?”

“쵸로마츠 형?”

천장만 바라보던 형제들의 시선이 쵸로마츠를 향한다. 하지만 그 부름에 대답할만한 정신은 없어서 쵸로마츠는 대꾸 없이 허둥지둥 거실을 나섰다.

어쩌지, 어쩌지. 어떻게 해야 하지. 다른 형제들과 싸웠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상황에 쵸로마츠의 손엔 식은땀이 맺혔다. 바지춤에 닦아내도 계속 나는 땀에 닦는 것을 포기하고 주먹을 쥔 쵸로마츠는 결심했다.

카라마츠가 화를 내도 그것은 정당한 것이니 그것이 어떤 형태건 나는 그 화가 풀릴 때까지 사과하고 또 사과 하자고.

하지만.

“카라마츠…? 그거 뭐야?”

2층 계단 앞에서 마주친 카라마츠의 손에 들린 작은 보따리와 방 안쪽에서 들리는 울음소리에 쵸로마츠의 혼란은 가중되었다. 그래서 생각했던 사과가 아닌 엉뚱한 말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쵸로마츠인가. 별 거 아니다. 옷이랑 베개”

“왜 그걸 들고 나와?”

쵸로마츠는 붕대 감지 않은 팔을 붙잡고 외쳤다. 그 때문에 카라마츠의 손에 어설피 들렸던 베개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카라마츠는 그것에 시선을 두며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것을 주우려는 듯 몸을 숙이려는데 쵸로마츠가 재차 그것을 막아섰다.

“카라마츠!”

“쵸로마츠, 베개가 떨어져서 주워야한다만.”

“그러니까 그걸 왜 들고 나왔어?!”

“아, 1층 손님방에 두려고 들고 나왔다.”

“왜!”

쵸로마츠의 물음에 카라마츠가 이상한 말을 들었다는 표정으로 그를 봤다. 이제야 제대로 마주친 카라마츠의 얼굴을 본 쵸로마츠는 움찔 몸을 떨었다. 그의 얼굴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분노도, 슬픔도, 좌절도, 쵸로마츠가 생각했던 그 어떤 감정도 담겨있지 않았다.

“딱히 상관없지 않은가.”

“무슨 소리야, 카라마츠?”

“앞으론 1층에서 생활할 생각이다. 몸이 불편하니 그게 편할 것 같아서. 남한테 피해를 끼치고 싶지도 않고.”

“하?”

“잘 때 편하다며 좋아할 줄 알았는데 의외군.”

그렇게 말하는 카라마츠의 얼굴엔 비꼼이나 분노는 보이지 않았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해서 말하는 얼굴이었다. 쵸로마츠는 그것이 너무나 기가 막혔다.

“형이 다쳤는데 진심으로 좋아할 미친 새끼가 어디 있어! 우리들이 쓰레기이긴 하지만 아픈 사람을, 남도 아닌 아픈 형제를 두고 고작 자리 넓어져서 좋다고 발 뻗고 편히 잘 수 있을 리 없잖아!”

그 말을 들은 카라마츠는 고개를 갸웃했다.

“잘 자지 않았는가.”

“!”

“어제도, 엊그제도. 아닌가?”

“……!”

카라마츠는 자신의 말에 멍한 표정을 짓는 쵸로마츠를 힐끗 보곤 다시 몸을 숙여 떨어진 베개를 손에 쥐었다. 그리고 목발을 고쳐 쥐고 쵸로마츠를 피해 계단 아래로 내려가며 중얼거렸다.

“오늘 쵸로마츠랑 쥬시마츠는 정말 이상하군.”

쵸로마츠의 등 뒤로 탁탁 목발이 계단을 짚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1층에서 들리고, 점차 희미해서 들리지 않게 되고나서 쵸로마츠는 계단에 털썩 주저앉았다. 쵸로마츠는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턱에 힘을 줬다.

화를 내면 감내하고 받아들이려고 했다. 때린다면 그대로 맞으려고 했다. 잘못을 했으니 용서를 구하고 사과를 받아줄 때까지 빌려고 했다. 하지만 형제들에겐 도통 화를 내지 않는 자상한 자신의 둘째 형은 이번에도 화를 내지 않았다. 다만 이제 형제들을 ‘남’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쥬시마츠의 비명 같은 울음소리가 납덩이처럼 무겁게 가슴에 가라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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