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라마츠 사변

[오소마츠상] 카라마츠 사변7

거실은 조용했다. 아침이여서, 라고 말하기엔 살얼음판 같은 위태로운 느낌의 고요함이었다. 평소 시간을 가리지 않고 텐션이 높은 쥬시마츠도 오늘은 이치마츠의 옆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부엌에서 음식을 가져오는 쵸로마츠도 평소 같으면 혼자 움직이는 것에 불평을 토로하며 도우라고 벌써 몇 마디를 말했을 텐데, 거실에 제각각 앉아 멍하니 있는 형제들을 한번 힐끗 보는 것에 그쳤다. 한층 더 어두운 안색의 이치마츠와 그 옆에 붙어 앉아 똑같은 자세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쥬시마츠. 자신의 속도 말이 아니지만 역시 다른 녀석들도 마찬가지구나 하고 생각하며 고개를 돌리던 쵸로마츠는 토도마츠를 보는 순간, 흠칫 몸을 떨었다.

토도마츠의 얼굴은 퉁퉁 부어있었다. 특히 눈 주변이 심하게 부어있었다. 눈을 감고 있는 건지, 뜨고 있는 건지-핸드폰을 보고 있으니 정황상 뜨고 있는 것이 분명한 부은 눈은 평소라면 며칠은 놀려도 될 정도로 우스꽝스러웠고, 엉망이었다. 하지만 쵸로마츠는 그것을 못 본 척 고개를 돌리며 한숨만 작게 쉬곤 다시 부엌으로 몸을 돌렸다.

다시 고요 속에 잠기려던 거실은 복도 저편에서 들려오는 오소마츠의 쾌활한 목소리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핸드폰을 만지던 토도마츠도, 창밖을 보며 침묵하던 이치마츠도, 제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있던 쥬시마츠도, 우울한 얼굴로 냉장고를 살피던 쵸로마츠도 전부 장남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카라마츠는 걱정 마!”

‘카라마츠’라는 단어에 너나할 것 없이 몸이 들썩였다.

“내가 같이 가서 밥 먹을 거니까.”

아…. 소리 없는 실망감이 거실을 가득 채웠다. 핸드폰을 잡고 있던 토도마츠의 손에 힘이 풀리며 핸드폰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애지중지하는 스마트폰이 떨어졌음에도 토도마츠는 별다른 미동 없이 바닥만 쳐다봤다.

마츠요가 자신의 뒤에 서서 걸어오는 오소마츠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래도 몸이 힘들다면 역시 엄마가 가보는 게….”

“엄마, 아침에 바쁘잖아. 오늘은 우리들 밥까지 준비하느라 시간 늦지 않았어?”

오소마츠는 인중을 문지르며 고개를 갸웃했다.

“아직 괜찮-”

“마츠요, 밥은 아직인가?”

“괜찮기는. 저 봐, 아빠가 재촉하네.”

나갈 채비를 얼추 끝낸 마츠조가 부엌으로 걸어오며 말한다. 적절한 타이밍에 들려오는 아빠의 목소리에 오소마츠는 내심 긴장으로 굳어있던 어깨에서 힘을 뺐다.

“이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마츠요가 미안하다는 얼굴로 오소마츠에게 부탁했다.

“어쩔 수 없구나. 오소마츠, 그럼 부탁할게.”

“마츠요-?”

“재촉하지 말아요, 당신. 하여튼 잠깐을 못 참아서-!”

“가게에서 직원한테 전화가 왔다고. 조금 문제가 생긴 모양이야. 당신도 얼른 같이 나가봐야 해. 카라마츠랑 애들에겐 미안하지만 급하다고.”

“하아, 알았어요, 밥만 푸면 되니까 와서 앉아요. 쵸로마츠? 엄마 좀 도와주렴.”

일련의 대화를 들으며 눈을 감고 있던 토도마츠는 제 옆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까치집처럼 머리가 헝클어진 오소마츠와 눈이 마주쳤다. 토도마츠의 얼굴을 본 오소마츠는 움찔했으나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별 다른 말은 없이 토도마츠에게 말했다.

“토도마츠. 2층 벽장, 카라마츠 서랍에서 붕대랑 소독약 좀 가져와.”

오소마츠의 목소리는 작았으나 토도마츠가 못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아마도 부엌의 부모님을 신경 쓴 듯, 한껏 낮춰진 목소리였다. 토도마츠는 오소마츠의 말에 멍하니 그를 보다 그 말뜻을 이해하곤 눈을 크게 떴다. 지금 시점에 붕대와 소독약을 쓸 사람이라면 카라마츠뿐이었다.

형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다친 곳에 문제라도?

떨리는 눈으로 오소마츠를 보던 토도마츠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그러고 보니 오소마츠의 차림새도 이상했다. 아까 얼핏 잠옷을 상하의 제대로 입고 있던 것 같은데, 어쩐지 지금 웃옷은 사라지고 속에 받쳐 입는 민소매만 보였다.

“무슨 일-!”

토도마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물으려했으나 오소마츠가 급히 검지를 세워 입에 대며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해오자 재빨리 손을 들어 입을 틀어막았다. 부엌의 부모님은 다행히 작은 소동을 눈치 채지 못한 듯, 가게에 생긴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거실에 앉아있던 이치마츠와 쥬시마츠는 그 목소리를 듣고 뭔가를 눈치 챈 듯, 불안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쳐다봤다.

오소마츠는 난처한 얼굴로 토도마츠에게 작게 말했다.

“설명은 나중에. 급하니까 얼른.”

좀처럼 보기 드문 장남의 여유 없는 얼굴에 심각함을 느낀 토도마츠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빠른 걸음으로 거실을 빠져나갔다.

“오소마츠 형아?”

이치마츠의 손을 잡고 있던 쥬시마츠가 불안한 얼굴로 오소마츠를 불렀다. 오소마츠가 카라마츠가 있는 방에서 나올 때부터 눈을 감고 그 목소리에만 집중하고 있던 쥬시마츠는 오소마츠가 거실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코끝을 찌르는 불길한 향기를 감지했다. 그의 예민한 후각은 맛있는 음식 냄새에 섞인 이질적인 피 냄새를 알아차리고 말았다.

오소마츠는 저를 쳐다보는 쥬시마츠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괜찮아. 별 일 아니야. 하고 다정하게 말해줬지만 쥬시마츠는 오소마츠가 다가올수록 점점 짙어지는 혈향에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오소마츠는 그 옆에 앉아 조용히 동생의 등을 두드려줬다.

그것을 조용히 지켜보던 이치마츠는 돌연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 구석에 있는 벽장으로 걸어가 문을 열고 그 안을 뒤적거렸다. 그리곤 그 안에 있던 작은 밥상을 꺼내들었다. 겸상이 겨우 가능할 것 같은 사이즈의 밥상은 어린 시절, 형제들 중 일부만 감기 등에 걸려 방을 격리해야할 때, 따로 식사를 차려주기 위해 엄마가 사놨던 것으로 아주 오래된 물건이었다. 그래서 일전의 대청소 때 버리려 했으나 밖으로 옮기기 귀찮다는 이유로 이치마츠가 쵸로마츠의 눈을 피해 다시 창고에 넣어버린 물건이었다. 버리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이치마츠는 그것을 들고 부엌으로 갔다.

식사를 시작한 부모님의 뒤로하고 쵸로마츠는 쟁반 위에 밥그릇을 올려놓고 있었다. 하얀 색의 윤기가 흐르는 밥이 여섯 개의 그릇에 소담하게 담겨있었다. 그 중 하나의 그릇에 들어있는 밥의 양이 유독 많았는데 이치마츠는 행주로 대충 밥상의 먼지를 닦아낸 후, 망설임 없이 그것을 집어 밥상 위에 올려놓으며 쵸로마츠에게 물었다.

“국은?”

“아직 담기 전이야.”

이치마츠는 밥그릇을 하나 더 집어 밥상에 놓은 후 찬장을 뒤져 작은 접시들을 꺼내 그릇이 두 개나 빠져 공간이 빈 쟁반에 올려놨다.

“반찬은 내가 담아올 테니까 국 좀 퍼줘.”

“응. 그런데 그 상은 저번에 버리지 않았던가? 분명히 지난 주 대청소 때 버리려고 빼놨던 것 같은데.”

“…귀찮아서 도로 넣어놨었어.”

“…그래.”

쵸로마츠는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서 그냥 간단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왜 그때 버리지 않았어?’ 라고 따지기엔 지금 저 낡은 밥상은 쓸모가 있고, 그렇다고 ‘잘했네.’ 라고 칭찬하기엔 마치 지금 카라마츠가 다쳐서 밥상을 쓸 수 있게 되었으니 잘 된 일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치마츠가 쟁반을 챙겨 거실로 향하는 소리를 들으며 쵸로마츠는 그릇에 국을 담았다. 한 국자로는 그릇의 밑바닥을 겨우 가릴 정도라, 다시 한 국자를 담았는데 어쩐지 건더기만 가득 퍼졌다.

아, 카라마츠는 건더기보다는 국물을 좋아하는데.

쵸로마츠는 그 사실이 문득 떠올라 이번엔 국물 위주로 한 국자를 더 담았다. 그렇게 담고 나서 이 정도면 괜찮을까 하고 국자를 그만 놓으려고 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아까 그릇에 담았던 밥의 양에 비하면 국이 부족한 것 같았다.

밥을 다 먹기도 전에 국이 떨어지면 곤란하잖아. 카라마츠는 국이 다 떨어지면 밥을 잘 못 먹는데.

그래서 쵸로마츠는 다시 한 국자를 퍼 담았다. 그러자 그릇의 끝까지 국이 가득 담겨 아슬아슬하게 넘치지 않고 찰랑이는 것이 보였다. 그럼에도 뭔가 부족한 것 같아 국자를 들고 한참을 고민하던 쵸로마츠는 찬장에서 빈 그릇을 하나 더 내렸다.

남기더라도 혹시 모르니까, 조금만 더 담아주자.

빈 그릇은 곧 첫 번째 국그릇처럼 다시 가득 차올랐다. 그제야 조금 만족스러운 기분이 든 쵸로마츠는 다른 형제들 몫의 국도 그릇에 담기 시작했다.

한편, 거실로 돌아온 이치마츠는 쟁반 위의 밥그릇을 탁자 위로 옮기며 쥬시마츠를 불렀다.

“쥬시마츠.”

대답은 없었으나 자신을 보는 시선은 확실하게 느껴져 이치마츠는 말했다.

“조금 도와줘. 이제 카라마츠가 먹을 반찬을 담아야하는데 난 잘 모르겠네.”

“---응!”

날듯이 이치마츠의 옆으로 다가온 쥬시마츠가 어느 때보다도 진지하고 엄중한 얼굴로 탁자 위의 반찬을 훑어봤다. 정신없이 차려진 아침의 식탁이라 올라와있는 반찬은 늘 먹는 밑반찬과 엄마가 급히 구운 생선, 계란프라이가 고작이었지만 쥬시마츠는 마치 기념일에 애인에게 줄 선물을 고르는 남자처럼 신중한 얼굴로 반찬을 꼼꼼하게 살피며 하나하나 지정했다.

“생선, 이게 가장 크네! 살도 많고 맛있어 보여.”

“오, 그렇네.”

“오이는 많이! 카라마츠 형아, 엄마가 만든 오이초무침 엄청 좋아해.”

“응, 이거 맛있지.”

“매실도 조금! 먹으면 밥이 더 맛있어져. 하지만 카라마츠 형아, 아침에 신 건 조금 약하니까.”

“그리고?”

“아, 이 프라이, 2개가 붙어있어! 난 오늘 프라이 안 먹어도 괜찮으니까 이거, 카라마츠 형아 줄래.”

“내 것도 줄까.”

“그거 좋네! 카라마츠 형, 프라이 좋아해!”

“그럼 간장도 조금 담아볼까, 쥬시마츠.”

“아이, 아이!”

국어책을 읽는 듯 어딘지 어색한 이치마츠의 말투임에도 기운이 나는지 확연히 밝아진 쥬시마츠였다. 귀여운 동생들의 대화에 피식 웃음이 나왔지만 문득 들려오는 시계 소리에 오소마츠의 표정은 조금 경직되었다. 오소마츠는 시계를 쳐다봤다. 방에서 나온 지 10여분 정도가 지났다. 시계를 보는 이 순간에도 초침은 한 칸, 한 칸 착실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 사실이 오소마츠는 못내 초조했다. 마음 같아선 다 뒤로하고 밖으로 뛰쳐나가 담배라도 한 대 피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그럴 수는 없다. 지금, 자신만은 흔들려선 안됐다.

어쨌든, 형이니까.

문득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리니 이치마츠가 슬쩍 자신을 보고 있었다. 밤중에 뒤척이다 밖으로 나간 이치마츠는 밤새 방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오늘따라 유독 짙은 눈 밑 다크 서클에 동생이 어디에 있었는지는 금방 알아차렸다. 카라마츠의 방 앞에서 밤이라도 샜겠지. 허공에서 마주친 시선에 오소마츠가 평소처럼 웃으며 작게 손을 흔드니 바로 풀린 얼굴로 다시 쥬시마츠에게 집중한다.

동생들이 하나같이 이런 상황인데 자신의 주저앉아버리면 무너지는 것은 자신뿐이 아니라는 것을 오소마츠는 잘 알고 있었다.

아, 담배 피고 싶다. 진짜로.

다시 시계로 시선을 돌리며 오소마츠는 생각했다. 시계 위로 카라마츠의 얼굴이 떠오른다. 쉼 없이 떨어지는 피와 붉게 번져가는 피, 그럼에도 ‘문제없다.’고 말하며 웃는 그 얼굴이 지워지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당장 지혈하고, 병원으로 끌고 가야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옳은 선택이라는 것을 오소마츠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카라마츠가 뒤집어쓰고 있는 가면을 깨버릴 수가 없었다.

장남의 직감이었다. 무력을 쓰든, 말로 상처를 헤집든 억지로 그 가면을 깨뜨릴 수야 있겠지만 그 순간, 그 때야말로 카라마츠는 자신들을-.

그저 가정임에도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팔뚝에 돋은 소름을 벅벅 긁어보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한숨을 속으로 삼키며 오소마츠는 생각했다.

카라마츠가 가면을 뒤집어쓰기 전, 그 찰나에 오소마츠가 봐버린 동생의 상처는 너무나도 깊고, 컸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써야할지 머리를 굴려 봐도 떠오르는 것이 없다. 싸우고 난 후, 다음날이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얼굴을 마주하는 가족으로서의 당연한 관용, 이해, 포용으로 덮기엔 카라마츠가 받은 상처는 너무 컸고,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도 너무 컸다.

뭐가 장남이고 형이냐. 등신.

자책하는 오소마츠의 입 안은 썼다.

엄마, 아빠는 아직 인가. 얼른 출근해주면 좋겠는데. 그래야 카라마츠를 병원에 끌고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오소마츠는 슬쩍 부엌의 부모님을 쳐다봤다. 가게의 일이 급하긴 했는지 아빠는 벌써 그릇을 다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릇을 들고 개수대로 향한 아빠가 아직도 국그릇과 씨름 중인 쵸로마츠에게 “쵸로마츠. 아무리 카라마츠가 먹성이 좋아도 그렇게는 못 먹을 거다.”라고 말하는 것이 들려왔다. 그 말을 들으며 잔잔하게 웃고 있는 엄마도 곧 일어날 것 같았다. 그 웃는 모습은 피 흘리는 카라마츠와는 다른 방향에서 오소마츠의 가슴을 깊이 찔러왔다.

부모님은 모르고 있다. 카라마츠가 저렇게 다친 것은 형제들 때문이라는 것을. 아셨다면 저렇게 웃으실 순 없겠지. 엄마, 아빠는 지금 오소마츠들이 일찍 일어난 것도, 이렇게 부산을 떠는 것을 형제간의 우애가 돈독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카라마츠가 다쳤음에도 자신들이 큰 걱정 없이 출근 준비를 할 수 있는 것도 이렇게 형제를 챙기는 오소마츠들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런 아름다운 것이 아닌데 말이다.

하지만 사실을 부모님께 말할 수 없다. 같은 나이의 형제들, 그것도 여섯이나 되는 애들을 마음처럼 전부 통제하기란 어려운 일이라 방임주의에 가깝게 그들을 키웠지만 그래도 엄할 때는 여느 부모들 못지않게 엄한 분들이 바로 그들의 부모님이었다. 자신들이 카라마츠를 저 지경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알면 오소마츠들은 진즉에 집에서 쫓겨났을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들이 이렇게 함께 모여 있을 수 있는 것은 카라마츠의 침묵 덕분이다.

카라마츠는 어제, 어쩌다 이렇게 다쳤냐며 걱정하는 부모님께 부주의하게 계단에서 굴렀다며 거짓말을 했다. 그 말을 들은 형제들의 가슴엔 다시 무거운 돌 하나가 얹어졌지만 한편으론 안도하는 자신을 깨닫고 오소마츠는 쓰게 웃었었다.

그리고 그것에 더해 방금 전, 카라마츠와의 엉망진창 대화에서 온전히 깨달은 것이 하나있었다. 카라마츠는 그렇게 상처를 받았음에도 ‘가족’이라는 틀을 깨뜨릴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그 말도 안 돼는 ‘마츠노 카라마츠’의 가면을 뒤집어 쓴 와중에도 ‘부모님은 부를 필요 없다.’, ‘마미도 소중한 여성.’라고 말했다. 부모님께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다는 뉘앙스와 분위기는 분명 카라마츠가 연기로 감추지 않은 유일한, 다정한 진심이었다.

그 지경이 되었으면서도 보였던 특유의 다정함을 찾아낸 오소마츠는 주먹을 쥐었다. 비록 형제들을 향한 다정은 아니었지만 ‘깨뜨리고 싶지 않은 가족 관계’라는 틀에서 생각한다면, 어쩌면 우리도 다시 그 다정함의 범위에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어두운 앞에 아주 가느다란 거미줄 같은 빛이 한줄기 비춰진 기분이었다.

어느덧 엄마도 식사를 마쳤는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이치마츠와 쥬시마츠를 보니 식탁 위가 휑해질 정도로 카라마츠에게 가져갈 접시로 반찬을 계속 올리고 있고 있었다. 그냥 뒀다간 아예 식탁 째로 옮겨갈 것 같이 드높아진 기세라 오소마츠는 얼른 둘에게 다가가 그것을 저지했다. 다행이도 정신을 차리곤 시무룩해하며 반찬을 덜어내는 두 사람을 위로하듯 오소마츠가 어깨를 두드리는 그 때, 부엌에서 “아직 멀었어? 식고 있잖아. 얼른 가져와줘.” 하고 재촉하는 쵸로마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이치마츠가 반찬을 덜어 담은 접시를 쟁반 위에 올려 급히 부엌으로 향하는 것을 보며 오소마츠도 그 뒤를 따랐다.

너의 다정함에 취해 너를 상처 입혀놓곤, 다시 네 마음에 닿기 위한 수단도 너의 다정함이라니. 무슨 이런 아이러니가 다 있을까.

 안 그래, 카라마츠?

동생들이 챙겨준 밥상을 들고 오소마츠는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지날 때, 기다리고 있던 토도마츠가 작은 목소리로 오소마츠를 불러 세웠다. 그 손에 들린 물건을 본 오소마츠가 걸음을 멈추자 토도마츠는 재빨리 밥상 위에 들고 있던 물건들을 차곡차곡 올려놓았다. 뜯어진 포장지 안에 들어있는 붕대들과 소독약, 솜과 핀셋이 밥상의 빈 공간을 가득 채웠다.

 물건들을 상 위에 올려놓은 토도마츠는 오소마츠에게 할 말이 있는 듯 입술을 달싹이다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힘없이 거실로 걸음을 옮겼다. 오소마츠는 굳이 그런 토도마츠를 붙잡진 않았다.

 오소마츠는 복도 끝을 향해 다시 걸었다. 쵸로마츠가 잔뜩 담은 국이 넘치지 않게 조심하며 걸어야하는데 자꾸 토도마츠가 올려놓은 물건들에 시선이 갔다. 

카라마츠의 서랍엔 간단한 의약품들이 늘 구비되어 있다. 반창고는 물론이고 소독약, 핀셋, 압박붕대, 감기약과 해열제 같은 것까지. 때문에 대청소를 하는 시기마다 형제들은 구급상자가 있는데 왜 그런 걸 굳이 따로 사놓냐고 물어봤지만, 카라마츠는 웃으며 “브라더들에게 혹시라도 발생할지 모를 위급한 상황을 위한 준비다. 나는 형제들을 늘 걱정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정말 뭐야 그건! 아프네-! 하고 형제들은 웃어넘겼지만 카라마츠는 늘 그것들을 체크하고 비면 바로 채워 넣었다.

그런데 사실 반창고와 소독약을 제외하면 형제들이 카라마츠의 의약품을 사용하는 일은 전무했다.

 사실 오소마츠는 알고 있었다. 이것들은 카라마츠가 형제들 때문에 다칠 경우 혼자 조용히 치료하기 위한 것들이라는 걸.

언제 사용했는지 모르지만, 누가 사용했는지는 명확한 뜯어져있는 붕대 포장지가 오소마츠의 눈에 밟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