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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츠 사변

[오소마츠상] 카라마츠 사변9

의료진들이 주고받던 알 수 없는 단어들 중 오소마츠들이 이해한 단어는 단 하나, ‘검사’와 ‘재수술’이었다. 간호사가 내민 종이를 읽어볼 틈도 없이 시키는 대로 보호자 서명을 하고, 촤르륵 소리를 내며 쳐졌던 커튼이 걷히고 환복을 끝낸 카라마츠가 이동용 침대로 옮겨지는 것을 멍하니 보기만 했다.

긴박한 주변의 흐름이 느껴졌지만, 그것은 어쩐지 영화관에서 영화를 관람하듯 현실감이 떨어졌다. 기묘한 부유감에 말도 없이 카라마츠의 침대 뒤만 쫓아 이동하던 셋은, 수술 대기실 안쪽으로 들어가는 이동용 침대를 따라 들어가려다 간호사들에게 저지당했다.

“더 이상 들어가실 수 없어요.”

“보호자분들께선 밖에서 대기해주세요.”

그들에게 떠밀리듯 밖으로 나온 셋은 멍하니 수술실 문을 바라봤다.

다른 둘과 마찬가지로 불투명한 유리문 너머로 바쁘게 움직이는 그림자들을 보던 이치마츠는 입구 근처의 대기 의자로 두 사람을 잡아끌었다. 하염없이 문만 보고 있을 것 같던 오소마츠와 쥬시마츠는 순순히 이치마츠의 손에 이끌려 빈 의자에 털썩 앉았다. 하지만 시선만은 여전히 입구를 향해있었다.

이치마츠는 오소마츠 옆의 의자에 앉으며 입구에서 시선을 돌려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입구옆 벽에 TV가 하나 걸려있는 것이 보였다. 그곳엔 어떤 명단이 송출되고 있었다. 번호와 환자의 이름, 시간, 담당의사, 과목, 그리고 상태로 나뉘어져있는 표였다. ‘환자의 이름’ 열의 낯선 이들의 이름을 쭉 훑어보던 이치마츠의 시선이 한곳에서 멈췄다.

『마츠노 카라마츠(松野 カラ松)』

심장이 덜컹하고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떨리는 눈으로 행을 훑었다. 담당의의 이름 옆엔 신경외과, 그리고 ‘대기’라는 글자가 떠올라있었다.

들어가서 바로 수술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구나. 하긴 먼저 온 사람들이 저렇게나 많은데 바로 시작할 수 있을 리가. 그렇다면 그냥 대기만 시키는 건가. 아까 붕대에 피가 묻어나오던 것 같은데. 그건 제대로 확인을 해줬을까. 다들 제대로 카라마츠 녀석 신경써주고 있는 거겠지? 전문가들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이치마츠의 머리에 분주히 모든 사람들이 움직이던 응급실의 전경이 떠올랐다. 이치마츠 혼자 응급실에 들어왔을 때도 아무도 그에게 신경 쓰지 않았었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신음 속에서 애타게 의사, 간호사를 부르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었다.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였지만 문외한인 이치마츠가 보기에도 인력은 터무니없이 부족해보였다.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여도 신음과 울음소리는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카라마츠의 옆 침대에 있던 사람들만 봐도 어땠는가. 카라마츠처럼 이마에 붕대를 감은 남자가 카라마츠를 살피는 의사를 애타게 불렀으나, 그에 대답해주는 것은 간호사였다. 그것도 ‘조금만 참아주세요.’라는 환자들 입장에선 결코 좋지 못한 대답. 그것에 비하면 자신들은 운 좋게도 카라마츠를 알아본 간호사 덕분에 비교적 빠르게 일이 진행된 것이겠지.

수많은 불안을 누르면서 긍정적이었던 상황을 애써 떠올리며 좋은 방향으로 생각을 해보려했다. 하지만 자꾸 의식도 없는 카라마츠가 저 안쪽에서 아직 ‘대기’니까 아까 응급실에서 본 다른 사람들처럼 누구에게도 관심 받지 못하고, 피 흘리며 혼자 구석에 방치되어 있을 모습이 떠올랐다. 이치마츠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대기’라는 글자가 얼른 다른 것으로 바뀌기를 바랐다.

“이치마츠. 이치마츠.”

허벅지를 두드리는 감각에 문득 고개를 돌리니 오소마츠가 그를 부르고 있었다.

“어?”

의아하게 바라보니 오소마츠가 검지로 그의 허벅지를 가볍게 두드리며 쓰게 웃었다.

“다리 떨지 마.”

“아…, 미안.”

“그리고 손톱도 물어뜯지 말고.”

“아.”

이어지는 지적에 이치마츠는 손을 봤다. 엄지손톱이 쥐가 파먹은 것처럼 엉망이었다. 불안할 때마다 저도 모르게 나오는 어릴 때부터의 나쁜 버릇이었다. 근 몇 년 잠잠해서 나이 들면서 고쳐졌다고 생각했는데, 단지 그동안 이정도로 불안한 경우가 없었을 뿐이었던 것이다. 이치마츠는 까슬한 엄지손톱 끝을 검지로 문지르며 후드 주머니 속으로 손을 감췄다.

“미안….”

“아니, 뭐 네 손톱이고, 미안할 것까지야.”

그의 반응에 오소마츠는 머쓱해하며 이치마츠가 보던 화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보인다. 수술이라는 글자가 4개, 회복이라는 글자가 3개, 카라마츠를 포함해 대기라는 글자는 5개. 9시가 조금 넘은 이 시간. 보통의 병원들이 9시 정도에 진료를 시작하는 것을 생각한다면 벌써부터 ‘수술’, ‘회복’ 등의 글자가 떠 있는 사람들은 도대체 몇 시에 이 안으로 들어간 걸까. 근처에서 큰 사고라도 있던 걸까. 이 근방에 지하철이 있으니 혹시 지하철 사고일까? 아니면 버스 사고? 그런데 왜 하필 오늘? 하여튼 카라마츠 외에도 이 안에 4명이나 사람이 더 있는 모양인데, 그렇다면 카라마츠는 도대체 언제 수술을 받게 되는 거지? 한참을 기다려야하는 걸까.

-그런데 왜 이제야-!

화를 내던 간호사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형, 그 병원 멀지 않아? 급하니까 우선 근처의 아카츠카 병원으로 가는 게.

택시 안에서 의문을 제기하던 이치마츠도 떠올랐다.

카라마츠의 요 며칠의 행적이나 정확한 상태 같은 것은 뒤로 미룰 걸 그랬나. 어느 병원인지도 알고 있고, 쌍둥이니까 정황을 알아보는 건 차라리 나중에 카라마츠인척 혼자 와보는 것이 나았을지도 모르고.

정신없어서 외면하고 있던 후회가 슬금슬금 수면 위로 올라온다. 그 후회는 비단 오늘의 선택뿐이 아니다.

엄마가 간식으로 내온 배를 경쟁하듯 먹었음에도 결국엔 딱 한 명 분량 남은 배 조각들을 보고, 네가 떠올랐었다. 쵸로마츠에게 남은 배, 잘 싸놓으라고 말하며 장난 전화 반응도 시큰둥했으니 곧 머쓱해하며 돌아오겠거니, 생각했었다.

이치마츠의 고양이를 찾고 돌아오던 길, 어쩐지 어디선가 네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그 때 ‘그러고 보니 카라마츠 녀석, 어디 있는 걸까.’하고 생각했었다. 한번 언급해볼까. 모두에게 슬쩍 물어볼까, 라고 잠깐 생각했지만 당연히 치비타와 있겠지 생각하고 관뒀다.

계속 생각만 했다.

너를 찾으려는 행동은 하지 않고, 그냥 생각만 했다. 왜냐하면 카라마츠니까.

‘나는 괜찮다.’라는 말을 언제 처음 들었더라. 고등학생 때? 중학생 때? 아니면 그보다 더 이전에? 하여튼 불분명한 언젠가의 기억부터 계속 그래왔으니까. ‘괜찮다.’는 본인의 말처럼 그런 취급에도 카라마츠는 변하지 않고 늘 다정했으니까.

괜찮다고 생각했다. 정말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언제부턴가 ‘괜찮다.’고 카라마츠가 먼저 말하지 않았는데도.

오소마츠는 무릎 위에 올린 손을 주먹 쥐었다.

만약 카라마츠가 아닌 다른 형제들이 카라마츠와 같은 일-납치를 당했다면. 우선 카라마츠가 그 사실을 알자마자 가장 먼저 일어나서 귀찮아하는 모두들을 닦달했을 것이다. 오소마츠, 그 또한 범인이 오랜 친구인 치비타라는 것을 알아도 바로 형제를 구하기 위해 움직였을 것이다. 그건 아마 다른 모두도 마찬가지겠지.

오소마츠는 지금 카라마츠에게 했던 모든 것을 후회한다. 그리고 그 중 가장 커다란 후회는 카라마츠를 저 안으로, 수술실로 보내게 된 직접적인 이유, 불구덩이 한가운데에 묶여있는 동생을 향해 둔기를 던지고, 이제야 조용해졌다고 좋다며 잠자리에 들어버린 그날 밤의 자신이었다.

왜 카라마츠가 ‘카라마츠의 가면’을 썼을까. 피를 흘리고 있으면서 괜찮다고 웃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비정상적인 일인데 카라마츠가 뒤집어 쓴 가면은 그것을 ‘괜찮다’고 말한다. 카라마츠의 안에선 그게 ‘올바른 카라마츠’인 것이다.

누가 카라마츠를 그렇게 만들었나.

자신이었다.

왜 그랬지? 왜 그랬어, 오소마츠.

오소마츠는 자신에게 물었지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옹색하게도 하나였다.

카라마츠…였으니까.

그건 아무 이유가 없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동생의 다정함에 기대 다시 그 마음에 닿으려고 했던 자신의 생각에 낙천적인 오소마츠라도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카라마츠 형아….”

다시 대기실 문 앞으로 걸어가 유리를 통과할 기세로 바짝 붙어있는 쥬시마츠의 목소리가 들렸다. 찰싹 붙어 떨어지지 않는 탓에 안쪽 스테이션에서 웅성거리는 기척이 느껴졌다. 잠시 후, 굳게 닫혀있던 유리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허겁지겁 걸어 나왔다. 사람이 나왔음에도 쥬시마츠는 유리벽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드라마에서 본 것 같은 파란색의 수술복을 입은 여성이 그런 쥬시마츠를 쳐다본다.

아, 역시 쥬시마츠 제지하러 나왔나. 오소마츠는 느릿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갔다.

“죄송합니다, 조금 걱정이 돼서”

“마츠노 카라마츠님의 보호자 되십니까?”

단순히 주의를 주기 위해 나온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다급한 목소리였다.

“…네.”

오소마츠의 그녀의 복장을 유심히 살펴보며 대답했다. 그녀의 귀에는 마스크가 걸쳐져있었고, 머리에도 비일상적인 모자-수술실에나 어울릴법한 파란 모자가 머리카락 한 올까지 전부 감춰지게 씌워져있었다.

수술 대기실의 너스 스테이션의 인력이 아니었다. 더 안쪽에서 수술대기 중인 환자들을 실질적으로 관리하고 체크하는 의료진이 분명했다.

“혹시 혈액형이-, 아, 쌍둥이.”

뒤늦게 오소마츠와 쥬시마츠, 그리고 이쪽으로 천천히 걸어오는 이치마츠의 얼굴을 확인한 그녀가 말을 하다 작게 탄성을 내지른다.

“혈액형이라면 여기 있는 모두가 A형입니다.”

“카라마츠 형아랑 똑같슴다!”

“우리들, 쌍둥이니까.”

창백했던 카라마츠와 피투성이의 방바닥을 떠올린 그들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차리고 빠르게 말했다. 그녀는 모두의 대답에 적잖이 안심한 표정을 지으며 빠르게 상황을 설명했다.

“오늘 새벽에 관광버스 4중 추돌사고로 환자들이 몰려온 탓에 현재 병원에서 보관되고 있던 것들이 거의 소진되어 혈액이 많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상처 자체는 어제의 기록에서 더 악화되진 않아서 수술 자체는 금방 끝날 것으로 생각됩니다. 다만 지금 마츠노님께선 장시간 출혈로 저혈량성 쇼크가 걱정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수혈을 받아야하는 상태인데 인근의 다른 병원에서도 우리 병원과 상황이 비슷해 곤란한 참입니다. 때문에 형제분들 중 한분이 헌혈을-”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세 사람은 소매를 걷어 그녀에게 쑥 내밀었다. 그녀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아, 아니, 한 분만….”이라고 말했지만 셋은 들리지 않는다는 듯 팔을 더욱 뻗어 그녀의 코앞까지 내밀었다. 멀리서 상황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건장한 청년 셋이 주먹으로 여성을 협박하는 장면과도 비슷한 모습이었지만 어디까지나 그들은 진지했다.

세 명의 얼굴을 고루 살핀 그녀는 누구하나 콕 집어 선택을 할 수 없었다. 각각의 표정이 너무나 비장해서 한 명을 선택하는 순간 다른 두 명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한시가 급한 지금 망설임은 사치였다.

 그녀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결정했다.

“세 분 모두 이쪽으로 와주세요.”

그녀의 말에 쌍둥이들의 표정이 환해졌다.

 

 

가장 먼저 혈액형 검사와 교차시험을 마치고 채혈에 들어간 사람은 쥬시마츠였다. 검사가 끝난 시간 자체는 세 명 모두 비슷했지만, 발이 가장 빠른 쥬시마츠가 간호사의 안내를 듣지도 않고 비어있는 침대를 발견하자마자 눈을 빛내며 달려가 누워버린 탓에 두 사람은 선수를 빼앗기게 되었다. 오소마츠가 자신이 형이니 먼저 하겠다는 주장에도 눈을 감고 잠든 척 연기를 하면서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던 쥬시마츠는 그 뜻대로 가장 먼저 채혈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다음은 이치마츠였다. 이번에야말로 오소마츠가 먼저 하려고 했으나 쥬시마츠의 팔에 꽂히는 굵은 주사바늘을 보곤 온 몸을 덜덜 떠는 이치마츠를 누군가 옆에서 진정시킬 필요가 있어 오소마츠의 순서는 어쩔 수 없이 다시 뒤로 밀려났다. 이치마츠는 채혈 직전에도 어찌나 안쓰럽게 떠는지 주사바늘을 찔러 넣으려던 간호사가 “힘드시면 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무리할 필요 없어요.”하고 채혈을 말릴 정도였다. 하지만 오히려 그 말에 정신을 차렸는지 이치마츠는 눈을 질끈 감고 오소마츠의 팔을 꾹 잡는 것으로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

이윽고 준비된 바늘이 순조롭게 팔뚝을 관통하자 잔뜩 울상 짓던 이치마츠는 모든 것을 포기한 듯 물먹은 솜처럼 축 늘어져 침대 위에 드러누웠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연신 떨며 침대에 누워있으니 그 누구보다도 환자처럼 보였지만, 바늘에 연결된 튜브를 타고 쉼 없이 흘러나오는 피는 확실히 건강한 사람의 것이었다.

이치마츠는 바늘이 찔려있는 자신의 팔뚝은 보기 영 어려운 듯 고개를 필사적으로 돌려 다른 쪽을 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성실하게도 주먹을 열심히 쥐락펴락하는 것이 답지 않게 귀여워 오소마츠는 낄낄 소리 내어 웃었다. 그 소리를 들은 이치마츠의 어깨가 크게 움찔했지만 오소마츠는 영악하게도 바늘이 꽂힌 왼쪽에 서있었고, 이치마츠는 그쪽을 차마 돌아볼 용기는 없었기에 작게 이를 갈았다.

이치마츠의 볼을 콕콕 찌르며 골리는 오소마츠의 뒤로 간호사가 다가왔다.

“마츠노 오소마츠님?”

“네!”

오소마츠는 드디어 자신의 차례인가 싶어 반색하며 뒤돌아봤다.

“이쪽으로 따라오세요.”

낯선 얼굴의 간호사는 그렇게 말하곤 빠른 걸음으로 이동했다. 오소마츠는 순식간에 병실을 벗어나는 그 등을 의아하게 보다 밖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후다닥 달려 나갔다. 저 멀리 걸어가는 간호사의 등 뒤로 재빨리 따라붙은 오소마츠가 물었다.

“에, 저기, 간호사 누님. 지금 어디 가는 거?”

“지금 헌혈 중이신 두 분의 피는 수술이 시작되고 쓰일 예정입니다. 그리고 마츠노 오소마츠님은, 지금 마츠노 카라마츠님의 체내에 당장 피가 부족한 상황이라 직접 수혈을 하려고 합니다.”

“직접 수혈?”

“마츠노 카라마츠 씨께서 대기 중이신 곳에 가면 담당 간호사들이 다시 설명해주실 테지만,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마츠노 오소마츠님의 피를 채혈과 동시에 가공해서 마츠노 카라마츠님께 바로 수혈할 예정입니다. 검사 결과 다행스럽게도 공혈자로서의 결격 사유는 하나도 없는데다 일란성 쌍둥이여서 그렇게 급히 결정되었습니다.”

“내 피가 카라마츠한테 직접…?”

“사전에 미리 말씀드리지 못한 부분이어서 혹시 문제가 있으시다면 다른 분께.”

“아, 아냐. 아닙니다. 나, 나, 나나! 내가 할래요. 내가 할 겁니다!”

오소마츠는 자리에서 팔짝팔짝 뛰며 손을 흔들었다. 정황상 어쩔 수 없었지만 채혈 순번이 가장 나중으로 미뤄져서 내심 안 좋았던 마음이 간호사의 설명에 금방 나아졌다.

간호사의 어조가 뭔가 흔치 않은 경우라는 뉘앙스인데다 오소마츠에게도 낯선 용어인 직접 수혈이라는 것이 결정될 만큼 안 좋다는 카라마츠의 상태에 대한 걱정으로 불안함 반, 이치마츠나 쥬시마츠가 아닌 자신이 들어가는 거라 그나마 다행이라는 마음 반으로 오소마츠는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아까 쫓겨났던 대기실로 들어갔다. 스테이션에서 건네주는 복장을 받아들고, 아까 얼핏 보기만 했던 더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로 향했다. 간호사가 버튼을 누르니 스르르 열리는 유리문 안으로 발을 디딘 순간, 느닷없이 사방에서 그를 향해 강하게 공기가 쏘아졌다.

“푸합.”

오소마츠는 헤 벌리고 있던 입안으로 쏘아진 공기로 순식간에 바짝 말라버린 혀를 날름이며 헝클어진 머리를 정돈했다. 그러다 뒤따라 들어온 간호사가 마스크와 방진복 등을 착용하는 것을 보며 허겁지겁 따라 입었다. 입 안이 영 텁텁하니 찝찝했다.

“이쪽으로 오세요.”

오소마츠가 옷을 다 입은 걸 확인한 간호사가 앞장섰다. 옷매무새를 정돈하며 오소마츠는 간호사의 뒤를 쫓았다.

미약하게 아이보리 빛이 도는 하얀 복도는 오소마츠가 들어온 유리문 너머와는 다른 세상처럼 정적과 엄중함으로 가득했다. 그것은 간호사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더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그런 상황이니 천하의 오소마츠였지만 긴장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어 미세하게 긴장이 묻어나는 얼굴로 주변을 슬쩍슬쩍 돌아봤다.

마스크를 쓰고 방진복을 입고 바쁜 걸음으로 오가는 사람들이 몇 번이고 오소마츠의 옆을 스쳤다. 수술을 막 끝낸 듯, 피투성이로 덤덤히 걸어 나오는 의사로 보이는 인물도 있었고, 그와는 대조되게 멀끔하지만 피곤함이 가득한 얼굴로 나오는 사람들도 보였다. 그런 사람들을 보다보니 ‘카라마츠가 수술을 받는다.’라는 사실이 조금은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오소마츠는 코끝을 스치는 병원 특유의 약냄새가 새삼 역하게 느껴져 마스크 위로 슬쩍 손을 올려 코를 가렸다.

복도 끝까지 도착한 간호사는 제법 묵직해 보이는 닫혀있는 철문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그녀가 “영차.”하고 짧은 구호와 함께 힘을 주니 문은 스르르 열렸다. 생각보다 가볍게 열린 철문 안으로 들어서니 사방에 작은 구멍들이 뚫려있는 공간이 나왔다. 그 앞에는 문이 하나 더 있었는데 정황상 그 문 너머가 그들의 목적지로 보였다.

안으로 먼저 들어간 간호사가 따라 들어오라는 듯, 오소마츠를 향해 손짓했다. 오소마츠는 망설임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소독입니다. 인체에 무해하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오소마츠의 등 뒤로 문이 닫히고 퓩, 하고 뭔가가 발사되는 소리가 들리며 사방에서 약한 풍압의 공기가 그들을 향해 뿜어져 나왔다. 아까 경험했던 것보다는 약한 강도라 내심 긴장하고 있던 오소마츠는 묘한 풀려버린 긴장에 어깨를 아래로 축 늘어뜨렸다. 아까 복도에서부터 인식하고 있던 약품냄새가 진하게 그의 온몸을 빈틈없이 감싸자, 이윽고 소독 시간이 끝났는지 기계가 멈췄다. 굳게 닫혀있던 안쪽의 문이 ‘덜컹’ 소리를 내며 자동으로 열리며 오소마츠의 눈에 저 안쪽에 놓여있는 침대가 보였다. 그 위로 볼록 튀어나온 누군가의 발끝이 보였다. 직감적으로 그것이 카라마츠라는 것을 알아차린 오소마츠는 앞장서 걷는 간호사를 추월해 달리듯 걸어 나갔다.

눈 아프게 하얀 조명 아래에 누워있는 카라마츠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고, 모포로 몸이 둘둘 감겨있는 있음에도 파리한 입술은 어쩐지 추워보였다. 간호사 두 명이 붙어 연신 그 팔다리를 주물러주고 있는데 그럼에도 카라마츠의 몸은 나무토막처럼 빳빳해 보였다. 그걸 본 순간 어쩐지 밀려오는 한기로 저릿해오는 손끝을 꾹꾹 주무르며 마른침을 삼키는 오소마츠에게 뒤따라온 간호사가 말했다.

“마츠노 오소마츠님께선 이쪽 침대에 누워주세요.”

대답 없이 걸음은 옮기되 시선만은 카라마츠에게서 떼지 않으며 오소마츠는 간호사가 가리키는 침대 위에 누웠다.

오소마츠와 카라마츠가 누운 침대 사이엔 아까 채혈을 하던 동생들이 누운 침대 옆에 있던 기계와 비슷한 것이 놓여있었다. 그 기계와 비슷하게 생겼으면서도 크기가 훨씬 크고 복잡해 보였는데 아까 간호사가 말해준 직접 수혈을 위한 기계일 것이라 오소마츠는 짐작했다. 오소마츠는 기계에서 시선을 돌려 카라마츠를 빤히 쳐다봤다. 그러다 바늘 꽂을 자리에 소독약을 바르며 채혈과 수혈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간호사를 불렀다.

“저기 누나.”

“에, 아. 네.”

대답하는 간호사의 얼굴은 코까지 올려 쓴 마스크 탓에 동그랗게 떠진 눈만 보였다.

“저 녀석, 수술은 언제 시작하는 거예요?”

“마츠노 카라마츠님 말씀이신가요?”

“응, 옆에 눈 감고 자고 있는 저 녀석.”

그렇게 운을 뗀 오소마츠는 카라마츠를 살피며 입을 계속 움직였다.

피도 계속 나는 것 같은데 왜죠? 붕대가 빨간데. 뭔가 처치는 해준 거 맞죠? 저 녀석, 새벽부터 계속 피를 흘려서 괜찮으려나. 그런데 카라마츠, 숨은 제대로 쉬고 있는 건가요? 아, 자세히 보니 가슴 오르내리네. 살아있구나, 다행이다. 그런데 그 뭐지, 아. 인공호흡기 그건 안달아도 괜찮을까요? 드라마 같은 데서 보면 꼭 수술하는 장면에서 그런 거 끼워주던데. 머리 조금 찢어진 정도론 그 정도는 안 해주는 건가. 헉, 그럼 마취 없이 수술을! 하지는 않겠지. 응, 모르겠네. 저기, 저분들이 팔다리 주물러주면 뭔가 효과가 있는 건가요? 그럼 깁스 하고 있는 팔이랑 다리는 그냥 저렇게 둬도 되는 건가? 깁스하고 있으니까 상관이 없으려나. 그런데 간호사 누나.

“카라마츠 녀석, 왜 눈을 안 뜨는 걸까.”

질문인지 혼잣말인지 모를 말을 연신 중얼거리는 오소마츠의 말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아무 대답도 못한 간호사는 그저 멍하니 오소마츠를 봤다. 간호사의 손이 멈췄음을 뒤늦게 알아챈 오소마츠가 아차 싶어 쓰게 웃으며 간호사를 쳐다봤다.

“미안, 간호사 누나. 특별히 답을 듣고 싶어서 한 말은 아니니까, 그런 표정 짓지 말아달라구요. 그보다 얼른 그 바늘 꽂아줬으면 하는데. 피차 급하잖아요? 내 동생 피가 많이 부족해 보이는데.”

“아, 네. 죄송합니다.”

뭘, 나 때문에 그런 건데.

두꺼운 바늘이 피부를 뚫고 들어오는 느낌은 썩 유쾌하진 않았다. 하지만 제 몸을 빠져나온 피가 저 기계 안을 거쳐 카라마츠의 몸으로 흘러들어가는 광경을 보는 것은 기분이 묘했다.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아프기도 했다. 오소마츠는 옆으로 고개를 돌려 다시 카라마츠를 쳐다봤다. 창백한 얼굴은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병실 천장을 향해 있었다. 오소마츠는 그 옆얼굴을 보며 마음으로 말을 걸었다.

있잖아, 카라마츠. 내 피가 네 몸에 흘러들어가고 있다. 신기하지? 이 기계.

그리고 사실 고백할게 있는데 나, 지금은 네가 잠들어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라고 말하면 내가 너무 쓰레기인걸까. 뭐, 사실이긴 하니까! 너 은근히 고집 세니까 분명히 수혈 안 받는다고 난리 폈을 거라는 거 형아는 다 알고 있다고.

자신의 손을 맹렬히 거부하던 카라마츠가 떠올랐다. 절대 도움을 청하지 않던 카라마츠가 떠올랐다. 공포에 질려 자신을 쳐다보던 카라마츠가 떠올랐다. 동생들과 가족들이 있는 앞에서 그런 카라마츠를 봐버렸다고, 알아버렸다고 티를 낼 수 없던 미숙한 자신도 떠올랐다.

엉망진창. 늘 엉망으로, 뒤죽박죽으로 지금까지 굴러온 인생이었지만 지금처럼 그 단어가 딱 맞게 어울리는 때가 없었다.

내 인생 그래프 중 최악의 시기를 꼽으라면 바로 지금이 아닐까? 이보다 더 나쁜 상황은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는데. 엄마, 아빠가 이혼한다고 필사적으로 부양 면접 볼 때도 이런 기분은 아니었다고?

오소마츠는 소리 없이 웃었다. 눈가가 조금 시큰거려 자유로운 다른 팔을 들어 눈가를 가렸다.

나, 너에게 사과하고 싶어. 그러니까 이 피를 다 받고나서는 제대로 일어나주면 안될까? 응, 카라마츠?

그때였다.

“스톱. 환자 상태가 이상합니다!”

카라마츠의 상태를 체크하고 있던 간호사가 급히 외친다. 그 목소리에 재빨리 기계를 멈춘 다른 간호사가 카라마츠의 옆으로 다가갔다. 오소마츠는 얼굴을 가리고 있던 팔을 떼고 황급히 카라마츠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피가 흘러 들어간 흔적만이 남은 붉은 물이 든 호스들과 기계 너머로 카라마츠가 식은땀을 흘리며 밭은 숨을 내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무슨 일인가요?”

“환자의 체온이 급격히 상승 중입니다. 부작용입니다.”

기침 소리가 심상치 않게 들려왔다. 컥컥, 숨을 내뱉는 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상황을 지켜보던 모든 이들이 당혹스러워했다.

“호흡 곤란!”

“그럴 리가, 조건은 완벽한데?!”

“드물지만 없는 경우는 아닙니다.”

“갑작스러운 수혈로 인한 일시적 현상일 가능성이 큽니다.”

“우선 선생님께 보고를!”

“바이탈 체크!”

“네!”

“환자의 용태 계속해서 체크 부탁합니다.”

“네.”

대기하고 있던 모든 간호사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이 공간에서 홀로 동떨어져 그 광경을 지켜보는 오소마츠에게 간호사 한 명이 다가왔다.

“보호자 분, 잠시 줄을 제거하겠습니다. 상황을 보고 다시 수혈에 들어갈 확률이 크니 바늘은 아직 제거하지 않겠습니다. 잠시 대기 부탁드립니다.”

간호사는 솜씨 좋게 주사바늘에 연결된 호스를 제거하고 마개로 구멍을 틀어막은 후 다른 일을 찾아 어디론가 총총 걸어갔다. 오소마츠는 혼자 침대 위에 덩그러니 앉아 분주한 카라마츠가 누워있는 침대 주변을 살펴봤다.

발작이라도 일으키는 듯 거세게 상체를 뒤틀며 기침하는 카라마츠의 모습이 보였다. 어디선가 남성 간호사들이 달려와 그 몸을 단단히 붙든다. 어느새 준비된 뭔지 모를 약품이 들어있는 주사가 카라마츠의 팔뚝에 가차 없이 꽂힌다. 고통으로 붉게 일그러진 얼굴, 급속도로 붉게 물든 붕대는 침대 시트까지 새빨갛게 적시고 있었다. 그것은 제 몸에 들어온 오소마츠의 피를 거부하며 밖으로 토해내려는 카라마츠의 의지 같았다.

“흐, 흐흐.”

그것을 보며 오소마츠는 헛웃음이 흘러나오는 입을 틀어막았다. 눈앞이 캄캄해지고, 발밑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저건 부작용 같은 것이 아니다. 의식 없는 이 순간에도 카라마츠는 본능적으로 그를, 형제들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었다.

“카라마츠, 카라마츠….”

작게 그 이름을 불러봤지만 두 눈에 보이는 것은 절망뿐이었다. 가슴이 찢어질 듯한 지독한 아픔에 오소마츠의 양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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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에게 의료 지식이나 병원 업무, 구조 등에 관한 지식은 전무합니다. 모든 내용은 그냥 글쓴이의 상상 속 내용일 뿐이니 부디 너그러운 이해 부탁드립니다!

* 오늘도 오타, 비문이 분명히 있습니다. 발견하시면 댓글 부탁드려요~!

 

아아, 얼른 병원에서 벗어나고 싶...카라마츠 퇴원하자...응?(왈칵)

금요일에 허리를 살짝 다치는 통에 쉬다 쓰다를 반복해서 주말 업로드를 실패해버렸습니다. 사변은 주말에 한편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오늘이 월요일이라니. 말도 안돼. 내 주말이 어디로 간거죠?(왈칵)

 

귀한 시간을 쪼개서 오늘도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