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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츠 사변

[오소마츠상] 카라마츠 사변8

오소마츠는 크게 숨을 들이쉬며 질끈 눈을 감았다 떴다. 굳게 닫혀있는 문이 보였다. 들고 있던 밥상을 잠시 내려놓고 오소마츠는 낯설게도 노크를 했다. 생전 안하던 노크는 사실 카라마츠보단 자신의 마음을 준비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들어간다, 카라마츠.”

하지만 안에서 대답은 없었다.

“카라마츠?”

재차 카라마츠를 불렀지만 역시 대답은 없었다. 차가운 침묵에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등골을 타고 흐르는 기이한 불안감에 오소마츠는 천천히 문고리에 손을 가져갔다. 차가운 문고리가 어쩐지 섬뜩해 오소마츠의 팔뚝에 잘게 소름이 돋았다. 오소마츠는 제 팔에 돋은 소름을 내려 봤다.

“모두, 그럼 카라마츠 잘 부탁한다.”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하고.”

“응, 다녀오세요.”

부모님의 목소리가 들리고, 형제들의 대표로 배웅하는 쵸로마츠의 목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급히 현관문이 여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곧, 쵸로마츠가 돌아보고 복도에 서 있는 그를 발견할 터였다. 그럼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그를 발견한 쵸로마츠가 의아해하면서 다가올 테고, 그 흐름에 쵸로마츠도 휘말려 이 안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건 아직 안 돼.

오소마츠의 무의식이 굳어버린 의식을 대신해 문고리를 쥔 손에 힘을 준다.

얼어붙었을 거라 생각했던 방문은 아주 부드럽게 열렸고, 눈이 보기도 전에 진득한 불쾌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오소마츠의 사고가 그것을 인식하는 순간 눈에 방 안의 광경이 여과 없이 들어왔다.

오소마츠는 순간 방 한가운데에 구멍이 뚫려 붉은 물구덩이가 솟아난 줄 알았다. 피 칠갑이 된 바닥 한가운데 온 몸의 피가 다 빠진 것처럼 하얗게 질린 카라마츠가 오른손으로 이마를 짚고 있었다. 잘 보니 아까까지 얼굴에 감겨있던 붕대가 보이지 않았고, 카라마츠의 손엔 붉은 수건이 쥐어져 있었다. 붉게 물든 수건의 끝에서 똑, 똑 붉은 물방울이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지며 바닥을 물들이고 있었다. 오소마츠는 숨이 막히는 광경에 겨우 눈만 돌려 카라마츠의 옆을 봤다. 카라마츠의 곁에 빨갛게 물든 붕대가 엉망으로 놓여있었고, 오소마츠가 벗어던지고 간 잠옷도 제 색을 잃고 검붉은 색으로 얼룩져있었다. 이 붉은 방에서 유일하게 제 색을 유지하고 있는 건 아까까지 곱게 바닥에 깔려있었던, 지금은 구석에 엉망으로 구겨져 있는 이불과 창가에 걸려있는 커튼뿐이었다.

“카-!”

“형, 무슨 일 있어?”

고함을 지르려던 오소마츠는 저쪽에서 들리는 쵸로마츠의 초조한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쵸로마츠의 시선이 느껴졌다. 거실에서 작게 들려오던 식기가 부딪히던 소리도 멎은 것도 알아차렸다. 오소마츠는 입 안쪽의 연한 살을 깨물곤 복도 바닥에 내려놨던 밥상을 들어 올렸다.

“아무 것도, 아니야. 여긴 형아한테 맡기고 밥이나 먹으라구, 쵸로마츠.”

처음, 목소리가 아주 조금 흔들렸지만 말은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상 말을 섞을 여유는 없었다. 그래서 오소마츠는 급하게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위태롭게 흔들리던 국이 넘쳐버렸다.

“…오소마츠 형?”

둔한 주제에 이럴 때만 눈치 빠른 동생이 뭔가를 느낀 듯, 저를 재차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오소마츠는 재빨리 방으로 들어와 문을 닫아버렸다.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순식간에 문 앞에 당도한 기척이 오소마츠의 등 뒤, 얄팍한 문 너머로 선명히 느껴진다.

하지만 오소마츠는 문을 걸어 잠그지는 않았다. 문을 잠그는 것은 지금 뭔가를 숨기고 있다고 대놓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오소마츠의 두 번째 동생 쵸로마츠는 열려 있는 문 너머를 볼 정도의 용기는 있지만, 자신의 힘으로 열기 버겁다고 인식하고 있는 문에 달려들어 부딪힐 용기는 부족하다는 것을 그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생각대로 문 너머로 서성이는 발소리는 계속 들려 왔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오소마츠는 밥상을 구석에 내려놓고, 그 위에 있던 붕대 등을 들고 조심스럽게 카라마츠를 향해 다가갔다. 카라마츠와 가까워질수록 발바닥에 진득하게 묻어나는 피가 많아졌다. 그것에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하며 걸은 오소마츠는 곧 카라마츠의 앞에 섰다.

“카라마츠.”

대답은 없었다. 고개는 이쪽을 향해 있으면서 어딘지 멍한 시선은 오소마츠를 빗겨나고 있었다. 오소마츠는 불길한 생각에 다급히 왼손으로 이마를 짚고 있는 카라마츠의 손을 붙잡았다. 수건에 잔뜩 배어있던 피가 넘쳐 순식간에 오소마츠의 팔뚝까지 핏방울이 흘러내렸다.

“카라마츠. 어이, 카라마츠. 정신 차려.”

오소마츠는 남은 손으로 카라마츠의 볼을 가볍게 두드리며 다급히 이름을 불렀다. 서너번 더 힘주어 이름을 부르니 카라마츠가 돌연 움찔 몸을 떨었다. 멍했던 눈동자에 서서히 초점이 잡히는 것을 본 오소마츠가 작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카라마츠의 눈이 느릿하게 두어 번 깜박인다.

“…아, 오소마츠? 언제 온 건가.”

확신 없이 흔들리는 맥없는 목소리에 이상을 감지한 오소마츠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오소마츠는 카라마츠 옆에 놓인 붕대들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방금 왔어. 그런데 카라마츠, 붕대는 왜 푼 거야.”

“그거야…, 심하게 눅눅해져서 새것으로 다시 감으려고 풀었다만.”

그렇게 말한 카라마츠는 웃으며 붕대가 감긴 제 왼팔을 내려 봤다.

“한 손이 이 모양인 걸 풀고 나서 깨달아서.”

카라마츠는 힘없이 웃었다. 왼팔에 감긴 깁스 밖으로 삐져나와있는 손가락들이 보라는 듯 미세하게 겨우 까닥거렸다. 카라마츠는 최대한 힘을 줘서 움직여보려는 중인데 그 노력에 비해 손가락은 고작 움찔거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오소마츠가 나간 직후, 갑자기 찾아온 통증에 카라마츠는 물도 없이 급히 약을 삼켰다. 즉효성이라고 설명을 들은 것 같은데 통증이 가라앉기는커녕 좀 전보다 더욱 심해졌다. 카라마츠는 그래서 참지 못하고 약을 좀 더 먹었다.

정량보다 많이 먹은 덕분인지 효과는 확실했다. 눈이 뒤집힐 것 같던 통증이 언제 그랬냐는 듯 순식간에 지워졌다. 통증에 마비되었던 사고는 아직도 얼굴을 타고 흐르는 물기를 다시 자각했다. 어쩐지 오소마츠가 방에 들어왔을 때보다 흘러내리는 양이 늘어난 것 같았다.

이것이 피란 말이지.

카라마츠는 이마를 훔친 손을 봤다. 물기가 묻은 듯, 아침 햇살에 손바닥이 반짝이는 것이 흐릿하게 보이기는 하지만 역시, 피 특유의 붉은 색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아니, 자각하고 보니 자신의 피부색도 핏기 없이 푸르스름하게 보이는 느낌이었다.

아까 오소마츠에게 ‘피가 철철 난다.’고 들었을 때, 카라마츠는 어리둥절했다. 피 냄새도 나지 않았고, 그 색도 보이지 않았다. 오소마츠가 그를 속이려는 것이 아닐까 잠깐 생각했지만 빠른 속도로 축축해지는 자신의 잠옷과 자신의 손이 닿은 순간 검게 물들어가는 오소마츠의 잠옷은 그의 말이 진실임을 뜻했다.

바닥을 짚은 손에 흥건하게 만져지는 피의 축축함에 곤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소마츠도 다시 온다고 했고, 이 광경을 보면 분명히 ‘짜증’을 낼 텐데.

카라마츠는 그래서 우선 붕대를 풀면서 계획을 세웠다.

지혈을 하고, 붕대를 새로 감고, 바닥을 청소하는 거다. 비록 왼팔은 깁스를 하고 있지만 손가락만은 움직일 수 있으니 어떻게든 되겠지, 라고 쉽게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그의 생각처럼 손가락이 움직여주질 않았다. 분명히 아까까진 잘 움직였는데.

그래서 당황하며 방법을 생각하던 차, 방에 언제 들어왔는지도, 언제 자신의 앞에 온 건지 오소마츠가 그 앞에 앉아 카라마츠를 부르고 있었다.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팔 뿐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몸의 감각이 무뎌져버린 것 같다. 쉴 새 없이 흘러나오는 피 때문인지 어쩐지 눈앞이 흐릿했다.

아아, 진짜 곤란한데.

쓰게 웃는 카라마츠를 향해 오소마츠가 저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

“이 멍청아, 형아가 밥 가져 올 거라고 했잖아!”

“잠깐 기다리면 되는데, 왜 혼자 이러고 있어! 왜!”

“난 그냥…. 미안하군.”

카라마츠는 의아한 얼굴로 오소마츠를 보다 이내 깨닫고 얼른 사과를 했다. 아침부터 이런 번거로움이라니. 오소마츠가 화낼 만도 했다.

오소마츠는 너무나 쉽게 사과를 입에 담는 동생의 창백한 얼굴에 가슴이 콱 막혀 옴을 느꼈다. 피로 얼룩진 얼굴 너머에 있을 상처가 뒤늦게 떠올라 아차, 싶었다.

평상심, 평상심, 평상심.

속으로 참을 인자를 수차례 새기며 오소마츠가 고개를 천장으로 젖히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금방이라도 터져 나오려는 화를 안으로 꾹꾹 눌러 담았다. 없는 인내심을 박박 긁어모은 오소마츠는 다시 카라마츠를 바라봤다.

“카라마츠 손에 힘 빼. 수건 좀 치우자.”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의 오른손을 붙잡은 왼손에 힘을 주며 말했다.

“그건 곤란하다. 아직 피가 나는 것 같다.”

하지만 카라마츠는 더욱더 힘을 줘 버티며 거부했다. 차곡차곡 쌓이는 답답함을 의식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오소마츠는 팔에 더 힘을 줬다.

“지금 그거 대고 있어도 전혀 소용없잖아? 붕대도 새로 가져왔으니 손에 힘 좀 빼지?”

“그런가. 그럼 붕대를 이리 주면 내가 감아보겠다.”

“조금 전에 네가 말해놓고 까먹은 거야? 네 왼팔, 지금 못쓰잖아.”

“아.”

오소마츠는 ‘담배 피고 싶어! 때려주고 싶어!’하고 생각했다. 자신의 말을 듣고는 심각하게 고민하는 카라마츠의 얼굴에 환자고 뭐고 꿀밤을 신나게 먹이는 자신을 상상했다.

카라마츠, 도대체 왜 도와달라고 말을 안 하는 건데?

자신의 왼팔을 멍하니 보던 카라마츠가 뭔가 깨달았다는 듯, 자신 있게 말한다.

“그럼 병원에 가봐야겠다. 이 시간이면 도착할 쯤엔 시간이 맞아 진료를 받을 수 있겠군.”

“너 바보냐? 바보지?! 내가 왜 붕대랑 이런 걸 들고 왔다고 생각해!”

“그렇군. 내게 줄 것이 아니라면 그걸 왜 들고 온 건가. 오소마츠도 설마 어디 다친 건가.”

진짜 이 가면, 찢어버리고 싶게 잘 만들었네. 속 뒤집어지게 아프고 눈치 없는 것이 완벽하게 평소의 카라마츠다. 네 선택지에 형에게 감아달라고 말한다는 건 없는 거냐?

그때, 카라마츠의 몸이 살짝 흔들렸다. 카라마츠는 저도 모르게 감기려는 눈에 급히 힘을 줬으나 그의 손을 단단히 잡고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오소마츠였기에 그것이 어떤 징조인지는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오소마츠는 천천히 끔벅이는 카라마츠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카라마츠. 그런데 너, 어지러운 거 아냐?”

“…별로. 괜찮다만.”

끝까지 그러시겠다. 그 대단한 연기력으로도 감출 수 없을 만큼 얼굴이 백지인데다, 초점도 어딘지 안 맞고 있는 주제에 괜찮다고. 이 이상 말을 길게 끌어봤자 결국 헛돌기만 할 거라는 걸 깨달은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의 말은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오소마츠는 봉지에서 소독약을 꺼내들었다. “오소마츠?” 하고 카라마츠가 저를 불렀지만 오소마츠는 자리에서 일어나 소독약 뚜껑을 열고 손에 단단히 쥐었다. 붉은 핏속에서도 선명히 창백한 얼굴이 그를 올려본다. 붕대를 대신한 수건에 오른쪽 눈은 가려져 왼쪽 눈에만 오소마츠가 비쳤다. 묘하게 흔들리는 눈을 무시하며 오소마츠는 한 손으로 그 눈을 가렸다.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오소마츠의 손이 닿는 순간 카라마츠의 크게 움찔했다. 그런 본인의 행동에 자신이 더 당황한 듯, 고개를 갸웃하며 뒤로 주춤 물러나려는 카라마츠에게 오소마츠는 더욱 바짝 붙었다.

자신의 머리 위로 그늘이 진다. 냉담하게 굳은 형제의 시선이 머리 위로 떨어진다. 부자유스러운 몸은 그 냉기를 피하지 못하고 온 몸으로 받아야했다. 검은빛 혐오가 담긴 무서운 것들이 낚시 바늘처럼 자신에게 쏟아진다. 까만 것이 급속도로 떨어지며 세상이 검게 물들었었다.

싫어!

카라마츠의 상태를 모르는 오소마츠는 수건 위로 약병을 기울였다.

“카라마츠, 눈 감아.”

“시, 싫어. 싫다! 잠깐, 오소마츠!”

멍한 귀로 오소마츠의 목소리가 흐릿하게 들려와 카라마츠는 지푸라기를 쥐듯 간절히 말하며 저항했다.

“붓는다.”

“살려-”

오소마츠는 저항하는 카라마츠의 말을 무시하고 소독약을 부었다. 숨을 흡하고 들이킨 카라마츠의 어깨가 단단하게 경직되었다. 수건을 쥔 손이 좀 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세게 쥐어져 그 위로 푸른 혈관이 도드라지는 것이 보였다. 오른손바닥 아래, 카라마츠의 눈이 질끈 감기는 것도 느껴졌다. 그것을 애써 무시하며 오소마츠는 천천히 소독약을 부었다. 핏물이 투명한 알코올을 타고 아래로 흘러내렸다.

수건을 움켜쥔 카라마츠의 손이 덜덜 떨리더니 마지막 한 방울이 병에서 떨어지는 순간, 카라마츠의 손에서 수건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감겨있는 카라마츠의 오른 눈이 보였다.

“…카라마츠?”

오소마츠의 부름에 응하듯 수건 아래에 감춰져있던 카라마츠의 오른쪽 눈이 천천히 떠졌다. 카라마츠의 눈동자에 오소마츠의 얼굴이 맺힌다. 그런데 어딘지 이상했다. 왼쪽 눈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었다. 그런데 뭐가 다른 건지 알 수가 없어서 오소마츠는 비교해보기 위해 왼쪽 눈을 가리고 있던 손을 천천히 뗐다.

 하지만 그 순간, 카라마츠는 건전지가 다 된 인형처럼 스르르, 오소마츠의 앞으로 무너졌다. 오소마츠는 반사적으로 팔을 벌려 쓰러지는 카라마츠를 받아들었다.

“카라마츠. 카라마츠? 정신 차려, 카라마츠!”

카라마츠의 이마가 닿은 어깨가 축축이 젖어드는 것을 느끼며 다급히 동생의 이름을 외쳤다. 하지만 카라마츠는 이번엔 눈을 뜨지 않았다. 기분 탓인지 촛불이 사그라지듯, 숨소리도 점차 흐릿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오소마츠가 동생들에게 감추고 싶었던, 카라마츠의 형제들을 향한 ‘공포’는, 카라마츠가 기절한 지금, 감출 노력을 들일 필요가 없었기에 그는 망설임 없이 문 밖을 향해 외쳤다.

“모두 얼른 들어와!”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굳게 닫혔던 방문이 벌컥 열렸다. 쥬시마츠를 위시한 나머지 형제들이 전부 문 앞에 서있었다.

적나라하게 드러난 살풍경한 방의 모양에 이치마츠는 창백하게 질려 발에 못이 박힌 듯 서서 눈을 부릅떴다. 쥬시마츠의 어깨너머로 방을 본 쵸로마츠 역시 입을 가리며 한 발 뒤로 주춤 물러섰다. 피 냄새가 지독했다.

“이게, 무슨-”

“쥬시마츠, 토도마츠!”

문을 열기 전부터 묘하게 침착한 자세로 대기하다, 오소마츠의 목소리에 앞서서 문을 연 쥬시마츠가 재빨리 오소마츠의 옆으로 달려왔다. 제일 뒤에 수건 몇 장을 들고 조용히 서있던 토도마츠도 오소마츠의 부름에 형들의 사이를 비집고 방으로 들어왔다.

잠옷이 피에 얼룩져 엉망이 되었지만 아랑곳 하지 않은 쥬시마츠는 카라마츠의 등 쪽에 자리 잡고 자리에 털썩 앉았다. 다리를 쭉 펴고 상체를 꼿꼿하게 세워 앉은 쥬시마츠는 조심스럽게 오소마츠의 품에서 카라마츠를 떼어냈다. 조심스러운 행동에도 숙여져 있던 카라마츠의 고개가 맥없이 뒤로 젖혀진다. 감겨진 눈에서 툭, 피 섞인 알코올에 휩쓸려 떨어지는 눈물 한 방울을 가슴에 새기며 쥬시마츠는 가슴팍에 카라마츠의 상체를 단단히 받쳤다.

토도마츠는 들고 온 수건으로 카라마츠의 얼굴을 닦았다. 닦아도, 닦아도 묻어나는 피에 입술을 꾹 깨물고 묵묵히 손을 움직였다. 소독약 한통을 통째로 부은 탓인지 닦고 닦아도 머리에서 계속 선홍빛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조심스럽게 젖은 머리카락을 들추니 이질적인 검은 실이 흉하게 살을 모으고 있었다. 그 틈새를 비집고 몽글몽글 올라오는 피는 바닥이 이렇게 피바다가 된 것을 생각하면 예상 밖으로 그 양은 적었다. 오히려 그렇기에 토도마츠는 덜컥 겁이 났다. 이 창백한 얼굴의 이유는 몸 안의 피가 다 쏟아져서 이젠 텅 비어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톳티, 괜찮아.”

그렇게 말하며 쥬시마츠는 카라마츠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눈을 감고 조용히 귀를 기울이는 그 모습을 본 토도마츠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괜찮아. 응, 쿵, 쿵, 하고 카라마츠 형아의 심장 제대로 뛰고 있어. 괜찮아. 그러니까…괜찮아.”

그것은 쥬시마츠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응.”

토도마츠가 콧물을 훌쩍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멈췄던 손을 움직여 상처 주변의 물기를 재차 닦아냈다.

“…하지만 피가 안 멈춰. 병원 가야하는 거 아니야, 오소마츠 형?”

토도마츠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오소마츠가 적당한 크기로 접은 거즈를 상처 위에 대며 대답했다.

“병원, 가야지.”

우선 붕대로 감아놓고, 움직이자. 그렇게 말한 오소마츠는 붕대를 봉투에서 꺼내며 아직도 문 밖에 서있는 둘을 불렀다.

“쵸로마츠, 이치마츠.”

오소마츠의 호명에 퍼뜩 정신을 차린 둘은 오소마츠를 봤다. 시선이 마주치고, 짧은 순간 눈으로 오간 대화에 둘은 각자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움직였다.

쵸로마츠는 욕실을 향해 걸어갔다. 바닥을 닦을 걸레와 피가 묻은 다른 형제들이 닦을 물 적신 수건이 필요했다. 엉망이 된 방바닥을 떠올리니 걸레 한, 두 장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양동이를 어디에 뒀더라. 쵸로마츠의 걸음이 느려졌다. 양동이를 떠올리려는 데 미동 없이 눈을 감고 있는 카라마츠의 얼굴이 계속 떠오른다.

밀랍 인형처럼 핏기 없는 얼굴은 마치 시체 같았-.

저도 모르게 떠올린 비유에 쵸로마츠가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벽에 머리를 박았다. 콰앙, 욕실의 공기가 요란하게 떨렸다. 이마가 아팠다. 아파서 다른 쓸데없는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다. 양동이, 양동이는 분명히 중정 개집 근처에 있지. 쵸로마츠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훔치며 비척비척 부엌으로 걸음을 향했다.

이치마츠는 옷가지와 지갑을 챙기기 위해 2층으로 올라왔다. 이치마츠는 잠옷을 벗어던지고 재빨리 파카와 트레이닝 바지로 갈아입은 후, 벽장을 뒤졌다.

오소마츠 형은 병원에 같이 가겠지. 정신을 잃은 카라마츠를 옮기려면 힘 좋은 쥬시마츠의 도움은 꼭 필요하니까 쥬시마츠도 갈 것이다. 토도마츠도 간다고 하겠지만 쵸로마츠 형과 집 정리를 부탁하자. 그리고 나는 같이 병원에….

빨간색, 노란색 파카와 둘의 바지들을 꺼내던 이치마츠의 눈에 파란색 파카가 눈에 들어온다.

내가, 따라갈 자격이 있을까. 내가 따라간다고 카라마츠가 기뻐할까. 오히려 끔찍해하지 않을까. 아마, 아니 이런 가정이 아니라 이번에야말로 진짜 카라마츠는 이 쓰레기를 증오하게 돼버린 것 같은데.

어제의 카라마츠를 떠올린 이치마츠의 눈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문 틈 사이로 눈이 마주쳤음에도 시선을 돌려버리던 카라마츠, 자신이 불러도 대답 없던 카라마츠, 자신을 없는 것으로 취급하는 카라마츠. 어째서, 라고 물어볼 자격 같은 건 자신에게 없었다. 오히려 그런 취급을 이제라도 하는 것이 지극히 정상이고 보통일 것이다. 하지만 자신은 어쩜 이렇게 제멋대로일까.

싫어, 카라마츠. 날 무시하지 마.

투둑, 떨어진 눈물이 자신도 모르게 쥐어든 파란 옷에 검은 얼룩을 남기는 것을 본 이치마츠는 재빨리 고개를 틀었다. 자신 때문에 파란색이 얼룩지는 것을 원한 건 아니었다.

…진짜로?

창 너머 아침의 청량한 파란 하늘이 이치마츠의 눈을 아프게 찌르며 물어왔다. 눈이 아파왔지만 그렇다고 시선을 돌리진 않았다. 성격이나 생각의 차이로 나이를 먹을수록 카라마츠를 볼 때마다 짜증이 자주 났다. 저 녀석, 왜 저렇게 사나. 생각이 들 때도 있었고, 다 이해한다는 척 쉽게 뱉어지는 말을 듣고 문득 자괴감이 들 때도 있었다. 그래서 생각하기도 전에 손부터 나가는 일이 비일비재했지만…. 그렇다고 이런 결과를 원한 적은 없었다. 진심으로 카라마츠가 상처받는 걸 바란 적은 없었다.

상처를 줄만큼 줬으면서, 이 뒤늦은 후회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모순적인지는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이치마츠는 벽장에서 가방을 꺼내 지갑과 카라마츠의 옷을 넣고 그것을 등에 메고 방을 나섰다.

 

 

고등학교 때 오소마츠를 필두로 사고치고 다니면서 필연적으로 익혔던 붕대 감는 기술은 녹슬지 않았는지, 카라마츠의 머리에 둘러진 붕대는 제법 그럴듯하게 보였다. 쥬시마츠의 등에 업힌 카라마츠가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하며 급히 골목 밖으로 나온 형제들은 택시를 잡아탔다.

 

어디로 가야하냐고 묻는 택시기사의 말에 쥬시마츠와 이치마츠가 순간 마땅히 떠오르는 병원이 없어 대답 못하는 차, 앞좌석에 앉은 오소마츠가 안전벨트를 매며 생소한 이름의 병원을 말했다.

“카리인시 병원, 부탁합니다.”

그 주문에 택시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쥬시마츠와 함께 카라마츠의 몸을 단단히 잡고 있던 이치마츠가 의아한 얼굴로 오소마츠를 봤다.

“형, 그 병원 멀지 않아?”

“그렇지만 카라마츠가 진료 받았던 곳이 그곳이니까.”

오소마츠가 부스럭거리며 파카 주머니에서 무언가 꺼내 뒷좌석의 이치마츠에게 내밀었다. 투명한 비닐 봉투엔 영수증과 뜯어진 조제약봉지들이 들어있었다. 마치 증거품을 보이는 경찰 같은 모습에 이치마츠가 얼떨떨하게 받아들어 그것들을 살피니 오소마츠가 말한 병원 이름이 적혀있었다.

“어디서 찾았어?”

“뭐, 그런 건 중요하지 않잖아. 이치마츠.”

오소마츠가 평소처럼 웃으며 비닐 봉투를 돌려받았다. 다시 그것을 파카 주머니에 접어 넣는 것을 보며 이치마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굳이 묻지 않아도 어디서 저걸 발견했는지는 조금만 생각해보니 알 것 같았다. 적갈색으로 물든 종이로 보건데 그 피바다 어딘가에서 발견했을 테지.

그런데 그걸 굳이 저렇게 챙겨왔어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그 점은 생각해 봐도 모르겠으나, 이치마츠는 굳이 그것을 오소마츠에게 묻지는 않았다. 의뭉스러운 구석이 많은 장남은 분명히 말해주지 않을 테니까.

오소마츠는 웃으면서 농담의 껍질을 뒤집어 쓴 살벌한 말로, 쥬시마츠는 백미러를 통해 시선으로, 이치마츠는 창문을 보며 혼잣말하는 것처럼 중얼거리며 택시기사를 위협한 덕분에 생각보다 빠른 시간 내에 병원 앞에 도착했다. 카라마츠는 그 때까지도 정신을 차리지 않았다. 새로 간 붕대에도 또다시 핏물이 어리고 있어 차에서 가장 먼저 내린 이치마츠가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부리나케 응급실로 뛰어 들어갔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응급실은 소란스러웠다. 근처에서 교통사고라도 크게 있었는지 여기저기 들리는 신음소리, 사람이 들어와도 신경 쓰지 않고 손에 들린 차트만 체크하는 의사들로 응급실은 복잡하고 시끄러웠다. 이런 곳과는 인연이 없는 이치마츠라 들어오긴 했는데 정신도 없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정신없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때였다.

“마츠노 씨?”

데스크에서 동료들과 이야기 중이던 간호사 중 누군가 이치마츠의 얼굴을 보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아는 체 해왔다.

“어디가 안 좋아진 건가요? 뭔가 문제라도…어? 그런데 어째서 붕대를 전부 풀고 계신건가요?! 마츠노 씨?!”

밤샘이라도 한 것인지 퍽 고단해 보이는 얼굴의 그녀는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다 뒤늦게 이상한 점을 발견하고 화들짝 놀라 빠른 걸음으로 이치마츠에게 다가왔다. 이치마츠가 뭐라고 말할 틈도 주지 않고 그의 몸을 이곳저곳 살피던 그녀는 뒤이어 안으로 들어오는 오소마츠와 쥬시마츠, 그리고 그 등에 업힌 카라마츠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에, 어?”

혼란스러운 얼굴로 이치마츠와 다른 형제들을 번갈아 보던 간호사는 뒤늦게 쥬시마츠의 등에 업힌 카라마츠를 발견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던 얼굴은 카라마츠를 확인하는 순간 이내 프로로 다부지게 변했다. 그녀는 데스크로 가 미리 준비되어있던 빈 차트를 들고, 그들을 빈 침대로 안내했다.

카라마츠의 이곳저곳을 살피며 바쁘게 손을 움직이는 그녀가 무슨 일인지, 언제부터 의식이 없는 건지 물어왔다. 오소마츠는 아침부터의 상황을 차분하게 설명하며 주의 깊게 그녀의 행동을 지켜봤다.

“피를 흘린 게 한 시간 이상?! 그런데 왜 이제야-!”

혈압계를 치우며 간호사가 찬 얼굴로 형제들을 질책했다. 유구무언이라 오소마츠와 이치마츠는 변명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그녀는 생각보다 위험한 상황이라고 판단했는지, 차트에 오소마츠들이 알 수 없는 글씨들을 흘려 적고는 무전기에 대고 “긴급 환자입니다. 현재 의식이 없으며, 출혈이-” 빠르게 보고했다. 그리고 자리를 벗어나려는 그녀의 팔을 쥬시마츠가 급히 잡았다.

“저기, 누나.”

“네?”

“형, 우리 형아 위험한 겁니까?”

절박하게 물어오는 그 얼굴에 간호사는 애써 웃으며 자신의 손목을 잡은 쥬시마츠의 손등을 토닥여줬다. 무언가 말을 해주려는 듯, 그녀가 곧은 시선으로 쥬시마츠를 봤다. 하지만 그 때 무전기를 통해 지시가 내려온 듯, 그녀는 귀에 꽂고 있는 이어폰을 손으로 감쌌다. 무슨 말이 오가는지 명확히 들리지 않았지만, “…네, 일전의 수술부위입니다. …알겠습니다.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하고 대답하는 그녀의 표정에선 의식적으로 만들었던 웃음조차 사라져있었다.

그때까지도 자신의 팔을 잡고 있는 쥬시마츠의 손을 조심스럽게 풀며 그녀는 “괜찮을 거예요.” 뒤늦게 말해줬다. 그리고는 오소마츠와 이치마츠에게는 “형제분들, 자리에 계세요. 곧 담당 선생님께서 오실 겁니다.”라고 말하곤 급한 걸음으로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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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에게 의료 지식이나 병원 업무, 구조 등에 관한 지식은 전무합니다. 그냥 글쓴이의 상상 속 내용일 뿐이니 그러려니 하고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 오늘도 오타, 비문이 분명히 있습니다.....

 

이 더운 날,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오늘도 감사인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