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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츠 사변

[오소마츠상] 카라마츠 사변 14

일주일의 입원 기간이 지나고 어느 덧, 카라마츠의 퇴원일이 됐다. 퇴원 수속은 금방금방 진행되었다. 청구 금액을 수납하고, 담당 간호사에게 수납 확인증을 제출하고, 다음 내원 날짜를 잡는 것으로 모든 수속은 끝이 났다.

그럼 2주 후에 꼭 내원해주세요. 진료 예약 시간은 오후 230분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쵸로마츠는 인사를 마친 후,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뜨는 간호사의 뒷모습을 보다 영수증을 가방에 넣으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일주일이 금방 지나간 기분이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지난 일주일이 쵸로마츠의 머릿속을 빠르게 스친다. 아마도 별 다른 일 없는 같은 나날의 반복이어서 떠올릴 게 없는 탓이겠지. 일어나서 부모님과 통화하고 아침을 먹고 진료, 혹은 상담을 받는 카라마츠를 따라가고 그 후에 점심을 먹고, 쉬고, 다른 형제와 교대하고. 모르긴 해도 쵸로마츠뿐 아니라 다른 형제들도 비슷하게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첫날을 제외하고.

 

입원 첫날, 쵸로마츠는 어떤 얼굴로 카라마츠를 보고, 어떤 말로 이야기를 시도해야 할지 내심 두려워하고, 고민하며 편의점에서 돌아온 쵸로마츠는 곤히 잠들어있는 형의 얼굴을 보고 맥이 탁 풀려버렸었다.

자리에 없는 오소마츠의 몫으로 사온 과자와 잠이 든 카라마츠 몫으로 이치마츠가 고른 음식은 냉장고에 넣고, 봉지에 남은 것들을 동생들에게 나눠줬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쥬시마츠만은 거부하며 계속 카라마츠 옆을 지켰다. 토도마츠가 끈질기게 권하고, 이치마츠가 슬쩍 입에 음식을 대도 철벽으로 거부하던 쥬시마츠가 음식을 먹은 것은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카라마츠가 눈을 뜬 저녁 시간 때였다.

타이밍 좋게 기상 시간에 맞춰 다시 병원을 찾아온 부모님이 싸온 음식을 전 가족이 모여 맛있게 먹었다. 쵸로마츠가 낮에 처음 병실에 들어서면서 느꼈던 어색함과 위화감은 하나도 없는 평범한 모습. 제대로 그의 이름을 불러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걸어온다. 어쩌면 전날, 자신들이 지독한 악몽을 꾼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카라마츠는 쵸로마츠가 익히 알고 있는 평소의 모습과 비슷했다. 특유의 아픈 말은 줄어들었지만 제대로 대답하고, 웃어주는 카라마츠는 여전히 상냥해 보였다. 그 덕분에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저녁 식사 시간을 보냈다.

식사가 끝난 후, 다음 날도 일을 해야 하는 부모님은 시간을 확인하고는 돌아갈 준비를 시작했다. 쵸로마츠는 가지 않겠다는 동생들을 잘 곳이 없다는 이유로 겨우 그 편에 돌려보낼 수 있었다.

내일도 올게.”

내일은 나랑 교대하자, 쵸로마츠 형.”

그래. , 내일 올 때 내 옷 좀 챙겨와 줘.”

알았어.”

카라마츠를 부탁한다, 쵸로마츠.”

부모님의 당부를 끝으로 엘리베이터 문은 닫혔다. 웃고 있던 쵸로마츠의 얼굴이 급속도로 굳어졌다. 사실, 돌아가는 인파에 나도 섞이고 싶었지만. 이라는 본심을 억누르는 것은 오소마츠가 없는 지금 자신이 이라는 것과 동생들의 본보기, 형제로서 응당 해야 할 일, 사죄, 라는 관념이었다. 쵸로마츠는 닫힌 엘리베이터 문 앞에 서서 1층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숫자를 보고 나서야 터덜터덜 병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다시 돌아온 병실. 방금까지의 시끌벅적함은 흔적도 없고, 적막만이 가득한 병실은 새삼스럽게 쵸로마츠의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들었다. 그런 쵸로마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 지, 카라마츠는 침대에 기대 누워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잠들었나.

쵸로마츠는 한층 더 조심스럽게, 조용히 그 옆으로 다가가 방금까지 쥬시마츠가 계속 지키고 앉아있던 의자에 앉았다. 의자는 아직도 쥬시마츠의 온기로 미지근했다. 동생의 흔적에 설핏 미소 짓는 쵸로마츠의 귀에 카라마츠의 흐릿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도 돌아가.”

달가운 내용은 아니었다. 지금까지가 꿈이었다는 듯, 좀 전까지와는 다른, 묘한 온도차가 느껴지는 목소리에 쵸로마츠는 한 박자 늦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카라마츠.”

어차피 곧 잘 시간이고.”

그렇게 말하는 카라마츠의 어투는 그냥, 평범했다. 편의점에서 직원이 지불해야할 금액을 알려주듯 단조롭고, 억양 없는 사실만을 말하는 목소리처럼 원망도, 미움도 없고, 그렇다고 애정이나, 배려가 담긴 것도 아닌 기계적이고 담담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웃기게도, 쵸로마츠는 그렇기에 상처를 받았다. 상처를 받았지만 받지 않은 척, 쵸로마츠는 무던함을 연기했다.

다들 이미 갔어. 그리고 잘 때 지켜봐야하는 건 중요해. , 오늘 수술했잖아.”

피부가 조금 찢어진 것뿐이었다. 쵸로마츠, 밤은 길다. 아직 네가 잘 시간은 멀어서 혼자 있으면 심심할 텐.”

네가 있는데 왜 내가 혼자야. 하지만 그 물음에 어떤 대답이 그 입에서 나올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무서워져 쵸로마츠는 에둘러 다른 소릴 했다.

나는 재미 보려고 여기에 있는 거 아니야. 네가 걱정돼서.”

카라마츠의 눈이 천천히 떠졌다. 병실 입구 쪽에만 켜놓은 형광등빛 탓에 어둡게 그늘졌던 얼굴에서 그의 눈만이 반짝인다. 하천 바닥에 가라앉아 달빛에 반짝이는 유리조각처럼 찰나에 날카롭게 빛나다 흐릿해져 뭉그러지는 그의 눈을 본 쵸로마츠가 흠칫 몸을 떨었다. 낮에 느꼈던 그 이상한 기분이 또 다시 들기 시작해 쵸로마츠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고 제 무릎으로 시선을 돌렸다. 쵸로마츠의 귀에 카라마츠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린다.

언제라도 상관없으니 생각이 바뀌면 돌아가라. 헛고생하지 말고.”

그의 말은 쵸로마츠의 가슴을 신랄하게 찔러왔다. 헛고생이라니. 무슨 뜻이야, 카라마츠. 마치 그를 두고 돌아가는 것이 기정사실인 양 뱉어진 말에 머리가 하얗게 변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 앞에서 떠나는 무리에 섞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자신이 떠오른 쵸로마츠는 아니라고, 단언 할 수 없었다. 그저 입 안의 볼 살을 잘근 깨물어 정신을 다잡고 최대한 평정을 가장하며 천천히 말을 골랐다.

나는 신경 않아도 괜찮아. 그냥 없다고 생각하고 넌 그냥 쉬어, 카라마츠.”

결국 고르고 골라 입 밖에 나온 것은 판에 박힌 것 같은 흔한 문장이었고, 그에 대한 대답은 없었다. 채점을 기다리는 학생처럼 답을 기다리던 쵸로마츠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보니 카라마츠의 눈은 다시 감겨있었다. 고르게 오르내리는 가슴팍은 더할 나위 없이 평온하게 잠든 사람 같았지만, 쵸로마츠는 병실이 어두운 탓에 그가 잠든 건지 아닌지 명확히 판단할 수 없었다. 가까이 다가가면 알 수 있겠지만 지금 병상에 누워 있는 자신의 형제가 너무, 낯설었다. 생소한 거리감에 쵸로마츠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쵸로마츠는 한 방울이 더 차오르는 순간 넘칠 것 같은 물 항아리와 같은 불안한 마음으로 눈 감고 있는 카라마츠를 지켜보다 어제부터 누적된 피로로 저도 모르게 까무룩 잠이 들었다. 의자에 앉아 팔짱을 낀 자세로 용케 쓰러지지 않은 채, 어떤 꿈도 꾸지 않고 깊게 잠들었던 그는 누군가 제 어깨를 툭툭 두드리는 느낌에 화들짝 잠에서 깨어났다.

누구-!”

잔뜩 놀라 새된 목소리가 나오려는 것을 잠을 깨운 이가 급히 손을 들어 입을 틀어막는다. 익숙한 온기와 향, 쉬잇, 하고 그를 진정시키는 목소리는 쵸로마츠가 아까 계속 찾았던 오소마츠의 것이었다. 입구의 불도 꺼져 창밖의 달빛만이 유일하게 병실을 밝히는 어둠 속에서 붉은 후드티를 입은 장남이 눈을 크게 뜬 삼남을 향해 웃어준다.

불쌍하게 왜 이러고 있어. 잠은 편하게 자라구, 쵸로마츠.”

제 입을 막은 손을 거칠게 치우며 반가움과 불안했던 마음을 담아 쵸로마츠가 외쳤다.

도대체 어디를 다녀온 거야!”

, . 쵸로마츠, 오늘 너무 열렬한데? 그것도 좋지만 그래도 카라마츠 자고 있으니까 조금 진정하라구.”

.”

그 지적에 쵸로마츠는 뒤늦게 제 입을 막았으나 늦은 감이 있었다. 침대에서 음, 하고 낮은 신음이 들리더니 카라마츠가 부스스 상체를 일으켰다.

거기, 누구.”

깨워서 미안, 카라마츠.”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카라마츠가 고개를 돌렸다. 그는 잠에 취한 눈을 느릿하게 깜박이며 웅얼거렸다.

아마도 쵸로마츠랑.”

목소리가 점점 흐려진다. 곧바로 이름을 말하지 않는 차남에 쵸로마츠는 어리둥절했다. 어두워서 잘 안 보이는 건가? 쵸로마츠가 오소마츠를 쳐다봤다. 제법 밝은 달빛 덕에 어둠 속에서도 선명히 보이는 붉은 색이 쵸로마츠의 눈에 보였다.

 어라.

깼어, 카라마츠?”

오소마츠군.”

어떤 생각이 이어지려던 차, 오소마츠의 발랄한 목소리가 사고를 막아섰다. 조금 전보다 또렷해진 카라마츠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인가, 오소마츠.”

글쎄, 왜라고 생각해, 카라마츠?”

오소마츠는 그렇게 물으며 냉장고를 향해 걸어갔다.

먼저 물어본 것은 나 아닌가. 쵸로마츠를 데리러 왔나보군.”

덜컹하고 냉장고 문이 열리며 그 안에 들어 있는 음료들이 덜그럭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오소마츠는 부모님이 가득 채워 넣고 간 먹거리를 뒤적이며 말했다.

! 틀렸습니다! 여기서 자려고 왔지!”

오소마츠는 많은 음식 중 쵸로마츠가 사놨던 오소마츠 몫의 감자칩과 빵, 그리고 음료수를 용케 골라 집고 미련 없이 냉장고 문을 닫았다.

너도 그렇고, 쵸로마츠도 그렇고 쓸데없는 일을.”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병원에서 자보겠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간병인 용 간이침대를 발로 툭툭 밀어 꺼낸 오소마츠는 그 위에 품에 들고 있던 음식들을 내려놓곤 그 옆에 털썩 앉는다. 그 와중에 벗어던진 운동화가 침대 밑으로 들어가는 걸 보며 쵸로마츠가 결국 언성을 높였다.

어이, 장남!”

시끄럽네. , . 너희들은 그만 자라고? 벌써 새벽 1시라고?”

과자 봉지를 뜯으며 뻔뻔스럽게 말하는 그 모습에 불안으로 흔들리던 쵸로마츠의 마음이 짜증으로 가득 찼다.

네 놈 때문에 깬 거잖냐!”

그냥 둘 다 집에 돌아가라.”

카라마츠가 한숨 섞인 목소리로 권유했으나, 마이페이스의 장남은 뻔뻔함을 잃지 않았다.

에에, 싫은 걸. 이 시간이면 택시 타야하는데 할증요금도 붙고, 무엇보다 나 택시비도 없고!”

용돈, 며칠 전에 받지 않았나?”

헤헤. 오늘 꿈을 쫓다 전부 잃었지.”

“-이 썩을 인간이 설마 지금 빠칭코하다 온 건 아니겠지?!”

쵸로마츠, 나를 어떻게 보고! -는 사실 정답!”

믿을 수 없는 말에 쵸로마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 인간이 뭔가 해결해주지 않을까 내심 기다리던 자신이 부끄럽고 짜증이 났다. 빠칭코? 빠칭코?!

죽어!”

부탁이니 둘 다 제발 돌아가다오.”

밤중의 소란은 도를 넘은 시끌벅적함에 야근하던 간호사가 쫓아와서야 정리가 되었고, 그렇게 첫날이 지나갔다. 오소마츠가 끼어듦으로 완벽히 평상시와 같아진 분위기에 쵸로마츠는 적잖이 안심했었다.

 

그리고 그 이후의 병원 생활은 지극히 평범했다. 카라마츠는 입원 기간 동안 병원에서 지시하는 대로 열심히 치료를 받았고, 의사가 부르면 부르는 대로 얌전히 가서 상담도 착실히 받았다. 상담을 받으러 갈 때는 형제들 중 누군가 하나는 꼭 따라갔었다. 어제 쵸로마츠가 함께 갔을 때, 상태는 여전한 것 같다는 소견을 들었지만 그래도 몸 상태는 그렇다 쳐도 다른 부분은 평소와 같으니 그거면 괜찮은 것 아닌가.

딴청을 부리며 주변을 살피던 오소마츠는 간호사가 건네준 주의사항을 거듭해서 읽고 있는 동생의 어깨를 툭 쳤다.

쵸로마츠, 종이 뚫어지겠다.”

시끄러워. 오소마츠 형도 읽어둬. 나만 읽어서 될 일이 아니잖아.”

쵸로마츠는 받은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닳아버린 감이 있는 주의사항이 적힌 종이를 내밀었다.

에에, 귀찮은데.”

오소마츠는 종이를 받는 대신 깍지 낀 손을 목덜미에 대고 상체를 젖혀 천장을 봤다. 보통이라면 쵸로마츠의 태클이 들어올 법한 상황인데, 등 뒤에서는 작은 한숨과 종이가 바스락거리는 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대화가 끊기고, 침묵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나서도 이어졌다. 오소마츠는 말없이 위로 올라가는 숫자를 보다 3에서 4로 숫자가 바뀔 쯤 계속 손안의 종이만 읽는 삼남에게 말했다.

쵸로마츠, 그런 거 읽어봤자 의미 없어.”

오소마츠 형?”

그제야 종이에서 얼굴을 뗀 쵸로마츠가 오소마츠를 쳐다봤다. 하지만 문 앞에 서서 디스플레이 패널에 4에서 5로 오르는 숫자를 보기만할 뿐 오소마츠는 대답이 없었다. 장남의 신경 쓰이는 발언을 곱씹으며 쵸로마츠는 그에게 물었다.

무슨 뜻이야, 그게.”

괜찮은 상황이라며 낙관하고 있던 생각이 오소마츠의 말 하나로 빠른 속도로 균열이 생긴다.

…….”

오소마츠!”

, 소리가 나고 엘리베이터 문이 천천히 열렸다. 쵸로마츠는 엘리베이터를 나가려는 듯, 발을 떼는 오소마츠의 팔을 거칠게 잡아 그의 몸을 돌렸다.

제대로 알아듣게 설명을-”

눈과 눈이 마주쳤다. 기적의 여섯 쌍둥이. 네가 나고, 내가 너고. 모두가 하나. 그 중에서도 특히나 오소마츠와 파트너로 유년을 보낸 쵸로마츠는 지금도 내심 자신하고 있었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오소마츠를 잘 아는 건 자신이라고. 하지만, 진짜?

오소마츠의 눈을 보는 순간, 하나 남아있던 그 자신감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픽 줄어든다. 늘 감정이 명확해 보기만 해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 짐작할 수 있던 오소마츠의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아무리 살펴봐도 오소마츠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쵸로마츠는 하나도 알 수 없었다.

 그 사실을 깨닫고 급속도로 굳어지는 동생의 얼굴을 보던 오소마츠가 자신의 팔을 붙잡고 있는 쵸로마츠를 세게 잡아당긴다. 그 끌림대로 엘리베이터 밖으로 따라 나온 쵸로마츠는 멍하니 오소마츠의 뒤통수만 바라봤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둘을 스쳐 사람들이 올라탄다. 사람들을 삼킨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고, 그 때까지도 쵸로마츠의 손을 잡고 있던 오소마츠가 돌연 손을 놓는다. 떨어지는 온기에 어쩐지 가슴이 철렁해서, 퍼뜩 정신을 차린 쵸로마츠가 형을 붙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고 그 이름을 낮게 읊조린다.

오소마츠.”

속삭임과 같은 작은 목소리를 용케 놓치지 않고 들은 오소마츠가 작게 웃으며 쵸로마츠의 머리에 손을 얹고는 힘주어 머리를 헝큰다. 평소라면 짜증을 냈을 행동이지만, 쵸로마츠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 자리에 굳은 채 의 얼굴만 쳐다봤다. 처음 보는 종류의 웃음은 위험한 느낌이 물씬 풍겼다. 피 웅덩이에 쓰러져있던 카라마츠를 볼 때만큼이나.

넌 걱정할 것 없어, 쵸로마츠.”

너무나도 장남다운 그 얼굴에 기이하게도 안도보단 불안이 차오른다. 그럼에도 장남에 대한 신뢰는 여전해서 쵸로마츠의 마음 속 기이한 형태로 균형을 맞추기 시작했다.

형아가 알아서 할게. 아무 것도 변하는 건 없을 거야.”

머리카락을 헝클던 손이 내려와 쵸로마츠의 눈을 가린다. 어둠으로 가려진 모든 것들 속에 단 하나 선명한 것은 형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에 이끌려 불안하게 날뛰는 마음을 외면한 쵸로마츠가 고개를 작게 끄덕인다. 천천히 떨어지는 손, 평소와 다름없이 웃고 있는 오소마츠의 얼굴이 눈에 박힌다.

가자, 뭐하는 거야, 저 녀석들. 여기까지 녀석들 목소리가 다 들리잖아.”

.”

형의 손을 잡으며 손에서 떠난 주의사항이 적힌 종이가 바닥에 떨어져 오소마츠의 손을 잡은 쵸로마츠의 발에 밟힌다. 엉망으로 구겨진 종이는 쓰레기가 되어 버려졌으나, 쵸로마츠는 종이가 손아귀에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렸다.

 

 

두 사람이 수납을 하러 간 사이, 아침 식사가 나오기도 전 퇴원 준비를 모두 마친 카라마츠와 동생들은 한참을 실랑이 중이었다.

여기 앉으라고!”

토도마츠가 병실 입구에 놓인 휠체어를 탁탁 두드리며 말했다. 하지만 카라마츠는 침대에 걸터앉은 채 보기도 싫다는 듯 고개를 팩 돌리며 거부했다.

싫다.”

혹시 팔에 깁스를 해서 휠체어 조종이 여의치 않아서 거절하는 걸까? 카라마츠에게 다가오며 토도마츠가 웃으며 말했다.

형은 그냥 앉아만 있어. 내가 뒤에서 밀어줄게!”

싫다.”

그래도 카라마츠는 고개를 저으며 거부를 한다. 가만히 상황을 보던 이치마츠가 설득에 동참했다.

쿠소, 카라마츠 형. 아직 걷는 것보다 이걸로 이동하는 게 회복에 더 좋다고 했어.”

그래도 싫다.”

미운 일곱 살이라는 게 이런 게 아닐까. 논리도 합리도 소용없다. 무조건적인 거부에 토도마츠의 얼굴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와 환자에게 이러면 안 된다는 이성의 전쟁으로 도깨비 얼굴과 보통의 얼굴로 쉴 새 없이 오락가락이었다. 이치마츠는 토도마츠처럼 화가 난 것은 아니었지만 카라마츠의 고집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여서 터지기 직전인 토도마츠를 등 뒤로 보내고 앞으로 나섰다.

왜 고집을 부리는 거야, 카라마츠 형. 목발 짚는 것보다 이게 더 편하잖아.”

그냥 싫다.”

카라마츠.”

내 걸음이 느려서라면 그냥 나 혼자 천천히 돌아가겠다.”

그런 문제가 아니라.”

으으으으-!”

이치마츠의 차분한 설득도 소용이 없는 것을 보며 답답한지 토도마츠는 성난 토끼처럼 바닥에 발을 탕탕 구르며 터져 나오려는 고함을 속으로 삼켰다. , 으으읍 거리며 속으로 짜증을 삭이는 토도마츠를 보며 난처한 표정을 짓던 이치마츠는 아까부터 옆에서 방관 중인 다른 동생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쥬시마츠, 너도 카라마츠 좀 설득해봐.”

.”

안절부절못하며 상황을 지켜보던 쥬시마츠가 이치마츠의 호명에 움찔 몸을 떨곤 이치마츠를 한 번 보고, 토도마츠를 한 번 보고, 그리곤 카라마츠를 한 번 본다. 그리고는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리며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그냥카라마츠 형아가 하고 싶은 대로.”

하아? 쥬시마츠 형, 진심이야?”

씩씩거리던 토도마츠가 펄쩍 뛰며 쥬시마츠에게 물었다. 쥬시마츠는 막내의 목소리에 놀란 표정을 짓고, 이어지는 어이없다는 시선에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시선을 어디에 둘 줄 몰라 한다.

또다.

이치마츠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요 며칠, 쥬시마츠가 이상하다. 활기가 넘치다가도 카라마츠와 연관이 된 화제만 나오면 움츠러들고, 말을 얼버무리기 일쑤다. 거기에 지금과 같이 카라마츠가 이해할 수 없는 고집을 부려도 카라마츠의 말을 옹호하고 본다.

쥬시마츠.”

갈 곳 모르던 눈이 이치마츠를 향한다.

네가 카라마츠 형을 걱정하는 건 알지만, 그건 모두가 같아. 지금은 카라마츠 몸 상태를 생각하면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는 것이 형을 위한 일이잖아.”

하지만.”

말끝을 흐리며 쥬시마츠가 조심스럽게 이치마츠의 뒤를 본다. 그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니 카라마츠가 표정 없이 그들을 보고 있다 이치마츠와 눈이 마주치니 그 얼굴에 빙긋 미소를 띠운다. 그 비어있는 웃음을 보니 마음이 복잡해져 이치마츠는 결국 크게 한숨을 쉬었다.

안색이 어두워진 이치마츠에게서 시선을 돌린 카라마츠가 걸터 앉아있던 침대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걸 본 쥬시마츠가 토도마츠의 항의를 뒤로하고 쪼르르 옆으로 달려와 섰다. 쥬시마츠는 절룩이는 카라마츠를 보고 어쩔 줄 몰라 하며 손을 들었다 내렸다를 반복하다 결국 바닥에 뉘여 있던 목발을 카라마츠에게 건네주곤 한 발 뒤로 물러나 그 뒤를 따라 걸었다. 그 일련의 모습을 보는 이치마츠의 미간엔 주름이 깊어졌다. 이치마츠는 쥬시마츠의 옆으로 걸어가 동생의 손을 잡았다. 땀으로 미끈거리는 손바닥이 느껴졌다.

안전 운전 부탁하지.”

카라마츠는 휠체어에 앉으며 말했다. 그 마음이 변할까봐 토도마츠는 재빨리 휠체어 손잡이를 잡았다.

걱정 마! 무사고 안전 운전의 달인 토도마츠를 믿으라고!”

장롱면허지만.”

장롱면허가- 맞기는 하지만! 그래도 휠체어쯤은 제대로 밀 수 있다고.”

정말, 진즉에 앉으면 서로 좋았잖아.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린 거야, 카라마츠 형. 투덜거리는 토도마츠의 목소리에 카라마츠가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대답한다.

그러게.”

라고.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쥬시마츠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제 손을 꾹 잡아오는 동생의 손을 빤히 내려 보던 이치마츠는 같이 힘주어 그 손을 잡아줬다.

멀리서 오소마츠의 목소리가 들린다.

집에 가자!”

병원에서 큰 소리 치지 마, 바보 장남.”

, 하고 머리를 맞은 오소마츠가 비틀거리는 것을 보며 토도마츠가 풋, 웃음을 터뜨린다.

뭐하는 거야, 저 형들은.”

쥬시마츠와 맞잡은 손을 놓지 않고 휠체어 옆에 서며 이치마츠가 중얼거린다.

그냥 바보들.”

그렇네. 얼른 가자. 나 여기 더 있기 부끄러워졌어.”

주변의 시선을 의식한 토도마츠는 카라마츠 손에 들려있던 목발을 잡아 빼 이치마츠에게 넘겨줬다. 그리고는 바로 휠체어 손잡이를 잡고 팔에 힘을 줬다. 휠체어는 작게 덜컹거리더니 이내 부드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 팔걸이에 올라가있던 카라마츠의 오른손에 핏줄이 도드라질 정도로 힘이 들어갔다 빠르게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을 이치마츠와 쥬시마츠는 놓치지 않았다. 그것을 본 쥬시마츠의 비어있는 손이 움찔했으나 긴 소매 속에 감춰져 그것을 알아차린 사람은 손을 잡고 있는 이치마츠를 제외하곤 아무도 없었다. 이치마츠는 덜컥 떨리는 쥬시마츠의 손을 꼭 잡아줬다. 카라마츠의 손도 잡아주고 싶었지만 한손으론 쥬시마츠를, 다른 손으론 목발을 들고 있는 탓에 그저 휠체어를 밀고 있는 토도마츠에게 주의를 주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토도마츠, 조금 천천히. 너무 빨라.”

, 그래? 미안, 카라마츠 형.”

상관없다.”

평이한 형의 어조에 안심하며 토도마츠가 웃으며 말했다.

불편하면 꼭 말해. 천천히 가도록 노력할 테니까.”

카라마츠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때맞춰 열리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타고, 오소마츠와 쵸로마츠도 부랴부랴 올라탔다. 오소마츠는 휠체어 옆으로 바짝 달라붙으며 칭얼거렸다.

카라마츠, 쵸로마츠가 나 때린다.”

오소마츠, 너는 맞아도 싸다.”

너무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도 보고 있다면 피식, 저도 모르게 웃음을 흘릴 정도의 유쾌한 흐름은 그들에겐 일상이었다.

하지만이게 옳은 상황인가?

쥬시마츠와 함께 형제들의 뒤를 따라 걸으며 이치마츠는 생각했다. 마치 지금 자신은 무대 위에 올라와 있는 배우 같다고. 따지고 보면 아무 것도 해결된 것은 없는 것 같은데, 과연 이것은 옳은 것인가. 그냥 이렇게 흘러가면 그걸로 끝인 건가. 계속 타이밍을 놓쳐서 아직도 사과를 못했는데. 그리고 그 날 내가 느낀 카라마츠의.

혼란스러워하는 이치마츠를 멀리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 얼른 와!”

낯익은 봉고차-이야미의 차 앞에서 손을 흔드는 쵸로마츠가 보였다. 그 뒤론 차에 타 앉아있는 카라마츠와 휠체어를 접어 차 뒤의 빈 공간에 싣는 토도마츠와 벌써 운전석에 앉아 있는 오소마츠가 보였다.

, .”

이치마츠는 고개를 끄덕이며 쥬시마츠의 손을 잡아끌었다. 이치마츠의 보폭에 맞춰 걸음을 옮기는 쥬시마츠는 여전히 조용했다. 이 또한 신경 쓰였지만 토도마츠까지 합세한 재촉에 나중에 왜 이러는 지 꼭 물어보자.’하고 생각을 밀어뒀다.

두 사람 왜 이렇게 늦어!”

차에 올라타니 가장 먼저 들리는 목소리는 토도마츠의 투정이었다. 그에 미안하다고 반사적으로 대답하며 이치마츠는 비어있는 뒷좌석으로 들어갔다. 토도마츠가 카라마츠의 옆에 앉은 탓에 쥬시마츠도 자연스럽게 이치마츠의 옆에 앉았다.

, 이야미한테 전화 왔다. 쵸로마츠 받아줘.”

왜 내가! , . 여보세요, 이야미? , . 이제 막 출발하는 데. , 한 시간. . 끊어.”

쵸로마츠가 전화를 끊기가 무섭게 오소마츠가 외쳤다.

, 출발!”

, 오소마츠 형, 잠깐. 나 아직 안전벨트-”

쵸로마츠의 허둥거림에도 아랑곳없이 차를 출발 시킨 오소마츠는 아슬아슬하게 안전벨트를 맨 쵸로마츠에게 욕을 한바가지 들어야했다.

안전 운전! 쵸로마츠 형도 기분은 알겠지만 오소마츠 형 우선은 운전 중이니까 이따 집에 가서 해.”

토도마츠의 목소리.

자면 안 되는 데.”

쥬시마츠의 목소리.

졸리면 조금 자. 쥬시마츠.”

이치마츠의 목소리.

두고 봐, 오소마츠 형.”

쵸로마츠의 목소리.

, 나 그 정도로 잘못한 거야?”

오소마츠의 목소리.

모두의 목소리를 들으며 카라마츠는 창밖을 봤다. 회색빛 풍경 속에 일주일간 머물렀던 병원이 빠르게 멀어지고 곧 보이지 않게 된다. 병원이 멀어지는 만큼 집이 가까워진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병원에 머무는 동안은 미약했던 두통이 슬금슬금 다시 고개를 쳐드는 것을 느끼며 카라마츠는 오른손을 꽉 주먹 쥐었다.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뇌를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 같던 거슬림이 조금 누그러진다.

앞으로 두 달.

카라마츠는 마음으로 정한 디데이를 생각하며 눈을 감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곱씹었다.

조용해진 차 안, 오소마츠는 운전에 집중하며 간간이 백미러로 눈을 감고 있는 카라마츠를 힐끗 살폈고, 쵸로마츠는 부모님과 통화를 시작했다. 토도마츠는 카라마츠가 잠이 들었다고 생각해 그 위로 담요를 덮어주곤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쥬시마츠는 까무룩 이치마츠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잠이 들었고, 이치마츠는 동생의 손을 토닥여주며 창에 비친 카라마츠의 얼굴을 살폈다.

각자의 생각을 품고 차는 달려 이윽고, 모두는 집에 도착했다.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야미가 카라마츠의 꼴을 보곤 혀를 차더니, 그래도 그만하니 다행이잖쓰!하고 나름의 퇴원 축하 말을 건네 왔다. 잠시 들어왔다 가라는 권유를 바쁘다며 사양하고 바로 차를 몰고 가는 이야미를 배웅한 후, 모두는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서며 너나할 것 없이 외쳤다.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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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 비문 분명히 있습니다. 발견하시면 알려주세요~!

* 오늘도 부족한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 인사드립니다.

 

어쩐지 느낌이 어정쩡한 완결 같습니다만, 완결 아닙니다. 아니에요.

느낌상 1부 정도라고 해야할까요. 대략적으로 이후 시놉 써놓은 것을 보니 아직 원하는 그림까진 먼 것 같다는 쎄한 느낌적 느낌...(머리 싸매고 드러 눕는다) 8월 1차 완결 말하던 사람 나오라고 하고 싶네요.

 시놉을 수차례 검토하고 탄탄하게 잡아놓고 일을 저질렀어야했어. 라고 이제와서 조금 후회를 하고 있습니다. 엉망진창의 튀어오르는 글을 봐주시는 모든 분들의 인내와 상냥함에 치어스...☆

사고의 속도와 타이핑 속도가 3배가 되는 초능력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아, 덤으로 핸드폰이 옆에 있어서 신경쓰지 않는 집중력도.........(트위터...그것은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내 인생의 두번째 구원자...-첫번째는 오소송 애들)

수요일~목요일쯤 숨꼭 5일, 주말엔 사변. 이렇게 쓰는게 이번 목표! ...늘 세우던 목표와 다를 것이 없어 보이지만, 그냥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