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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츠 사변

[오소마츠상] 카라마츠 사변 20 (완)

카라마츠가 출연하는 연극이 전 시간, 전 좌석 매진이라는 엄청난 기록을 세워나가고 있었다. 유명 제작사에서 드라마로 제작 하고 싶다, 영화화를 하고 싶다, 공연 기간을 좀 더 연장해 달라, 다른 지역에서도 공연을 해 달라 같은 요청도 물밀듯이 들어오고 있었다. 때문에 극단에 소속된 모두는 정신없이 바쁜 일정으로 매일매일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것은 카라마츠도 마찬가지여서 몸이 완전히 나은 후엔 무대에서 엑스트라로 연기하는 것 외에도 본격적으로 모두를 도와 극단 내의 자질구레한 다른 일까지 열심히 하며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보내고 있었다. 아침이나 저녁 때 부모님께 안부전화 드리는 것도 가끔은 어려울 정도로 바쁘게 지내던 카라마츠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게 지내고 있었다. 이제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연극’이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연극이 막을 내리기 일주일 전이 되었다. 연극이 시작되면서부터 극단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집에 들어오지 않던 카라마츠는 오늘은 아침 일찍 눈을 뜨자마자 부모님께 연락을 드렸다. 틈나는 대로 전화 통화는 했지만, 연극 첫날 얼굴을 본 후론 카라마츠도, 부모님도 각자 일을 하다 보니 한 번도 만나지 못했기에 전화를 받고 반갑게 인사를 하는 마츠요에게 얼굴을 보고 싶다는 말로 카라마츠는 서두를 띄웠다.

-우리도 네가 보고 싶단다.

마츠요는 상냥한 목소리로 말해왔다. 차가운 전화기 너머로 느껴지는 어머니의 온정에 카라마츠는 한결 편해진 목소리로 용건을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요, 어머니, 혹시 오늘 저녁에 시간 되나요? 아버지도. 오늘 저녁에 시간이 비게 되어서 두 분께서 괜찮으시다면 오랜만에 같이 밥을 먹고 싶어요.”

이젠 존댓말이 완전히 입에 붙은 카라마츠가 두 사람의 일정을 물었다.

-잠시만 기다려보렴.

마츠요는 옆에서 두 사람의 통화를 듣고 있던 마츠조에게 짧게 물었다. ‘오늘 저녁 당신 일정 없지요?’, ‘없는데, 왜? 카라마츠가 보재?’, ‘네. 같이 저녁 먹자고 하네요.’, ‘괜찮아, 괜찮아. 어제 급한 일은 마침 다 처리했잖아.’ 카라마츠는 눈을 감고 전 수화기 너머로 부모님의 대화를 들었다. 내용과는 상관없이 둘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해져 카라마츠의 입가엔 작은 미소가 걸렸다.

-몇 시에 어디서 볼까? 우리가 극장으로 갈까?

“그래주시겠어요? 시간은 7시 반쯤 어떠세요? 저는 오후 공연이 7시쯤 끝나니까 7시 30분이면 좋을 것 같아요.”

-그래, 그 시간이면 괜찮단다.

마츠요는 흔쾌히 대답했다.

카라마츠는 마츠조와도 아침 인사를 나누길 원했지만 마츠요가 말했다.

-아빠는 일하러 나갈 준비 하러 갔다.

“에? 벌써요?”

슬쩍 휴대 전화를 살펴보면 밝게 켜진 화면의 시계는 6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평소 8시 정도에 일하러 나가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한 시간이나 이른 시간이었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닐까 걱정이 담긴 카라마츠의 목소리에 마츠요가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저이도 매일같이 카라마츠, 카라마츠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일을 다 못 마쳐서 약속을 취소하게 되면 큰일이잖니. 그러니, 카라마츠. 여긴 걱정 말고 이따 보자꾸나.

라고. 전화 너머로 ‘마츠요, 밥 먹고 얼른 나가야지!하고 그녀를 부르는 마츠조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츠요의 웃음소리가 조금 더 커졌다. 카라마츠는 안심한 얼굴로 “나중에 봐요.”하고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카라마츠도, 부모님도 전화를 끊을 때까지 ‘형제들’의 참석에 대해서는 말을 꺼내지도, 묻지도 않았다.

 

 

이른 아침부터 일을 시작한 덕분에 별 다른 사고 없이 시간보다 일찍 일을 마친 마츠조와 마츠요는 가게를 일찍 정리하고 약속 시간보다 빨리 공연장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입구를 지키는 스태프에게 아직 카라마츠가 무대 위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카라마츠의 부모님이라는 말에 첫날 두 사람을 본 기억이 있던 스태프 중 한 명이 둘을 무대 뒤로 안내했다.

무대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바쁘게 돌아가는 뒤편에 두 사람은 눈을 둥그렇게 떴다. 두리번두리번 무대 뒤를 구경하는 두 사람에게 무대가 비교적 잘 보이는 자리로 안내하던 스태프가 슬쩍 말을 걸었다. 사실 극단이 처음 세워질 때도 카라마츠가 도움을 줬었고, 지금도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고 두 사람이 모르는 카라마츠에 대해 그는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둘이 카라마츠의 부모라는 걸 들은 사람들은 꼭 한마디씩 보태왔다.

-저런 아들이 있어서 든든하시겠어요.

-마츠노 군은 정말 대단합니다.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자식 칭찬은 언제 들어도 기쁜 일이라 두 사람은 웃음을 숨기지 못하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무대 근처로 이동했다.

“두 분은 여기 앉아서 보시면 돼요.”

“고마워요.”

“뭘요.”

“티켓 값은 어떻게….”

“아닙니다. 정식 자리도 아니고, 단장님이나 다른 단원들도 두 분에 대한 거라면 별 이야기 없을 거예요. 오히려 이런 자리로 안내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지나가던 스태프들도 맞다고 말을 거드는 통에 마츠요는 꺼내들었던 지갑을 도로 품에 넣어야했다. 즐겁게 관람해달라고 말하곤 일이 많다며 빠른 걸음으로 왔던 길을 되짚어 가는 스태프의 뒤로 한 번 더 고맙다고 인사를 한 두 사람은 이제 무대 위로 시선을 돌렸다.

마침 카라마츠가 말하는 장면이었다.

“그럴 줄 알았어.”

짧은 대사였지만, 다시 한 번 봐도 여전히 무대 위에서 자신의 색깔로 빛나는 카라마츠를 부모님은 기특하게 봤다.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처음 공연 때와는 다르게 힘들어하는 기색 없이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아들의 모습에 몸이 완치했음을 두 사람은 인지하게 되었다.

둘은 자신의 역할을 마치고 무대 뒤로 달려 들어오는 카라마츠가 눈을 크게 뜨는 것을 보며 환하게 웃으며 맞이했다. 놀란 얼굴에 쑥스러움이 가득한 미소가 어리며 둘에게 달려오는 아들의 얼굴엔 행복한 기운이 가득했다. 마츠조와 마츠요는 의자에서 일어나 “벌써 도착했어요?”하고 놀란 목소리로 말하는 카라마츠를 말없이 안아줬다. 이제 두 사람의 마음엔 아들에 대한 근심보단 안도와 자랑스러움이 훨씬 커졌다. 놀란듯하다 둘을 마주 감아오는 카라마츠의 팔은 ‘어른’의 팔이었다.

 

 

카라마츠는 식사를 하는 내내 흐뭇하게 웃으며 그를 보는 마츠조와 마츠요를 보며 쑥스럽다는 듯 볼을 긁었다. 후식으로 나온 찻잔을 손에 쥐고 부모에게 칭찬을 듣던 카라마츠는 문득 찻잔을 내려다봤다. 드물게도 가는 잎이 서있었다. 기분 좋은 느낌이 들었다. 형태 없는 누군가에게 격려를 받은 기분이 들어 카라마츠는 천천히 오늘 두 사람과의 만남을 청한 용건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머니, 아버지.”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던 두 사람이 카라마츠를 쳐다봤다. 카라마츠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봤다.

“지금 하고 있는 극은 다음 주면 막을 내려요.”

“어머, 그러니?”

“그리고 지금 극단에서 차기작을 준비 중인데요.”

카라마츠는 차근차근 설명을 시작했다. 한 달 후, 다음 작품 준비에 본격적으로 들어가는데, 그 작품엔 자신이 제법 비중 있는 조연으로 출연을 한다는 것과 다만 그 작품은 현재 극단이 자리하고 있는 건물 계약 기간이 곧 끝나면서 이사를 가게 되면서 다른 지역에서 막이 올라갈 예정이라는 것까지.

마츠조와 마츠요는 차분하게 상황을 이야기하는 카라마츠의 얼굴을 보면서 직감했다. 아들이 오늘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자신들을 부른 건지.

“본격적으로 연기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 정식으로 독립할까 합니다.”

약간의 긴장이 어려 있지만 흔들림은 없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여 마음을 다잡고 한 말임을 두 사람은 알 수 있었다. 반대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다른 지역이라니 원할 때마다 볼 수는 없기에 걱정은 조금 되겠지만, 무대에서 그토록 빛나는 아들을 봤으면서 안 된다고 말할 부모는 없었다.

가만히 카라마츠를 보던 두 사람은 슬쩍 고개를 돌려 서로의 눈을 마주봤다. 오랜 세월 함께 한 부부였기에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은 알 수 있었다. 마츠요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마츠조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라.”

마츠조가 호탕하게 말했다.

“에?”

너무나 쉽게 떨어지는 허락에 카라마츠의 얼굴이 순간 멍하게 변했다. 미소 띤 얼굴로 눈을 감고 있던 마츠요가 얼빠진 아들의 목소리에 손을 들어 입가를 가렸다. 그녀의 입에서 “쿡.”하고 웃음이 흘러나오며 어깨가 잘게 떨렸다.

“정말?”

“아. 정말이다.”

마츠조는 고개를 끄덕였고, 웃음을 누르며 마츠요가 말을 덧붙였다.

“어떤 결정이던 네가 충분히 고민하고, 생각하고 말했다는 걸 잘 알고 있단다. 우리는 네 부모잖니.”

카라마츠의 눈이 조금씩 흔들렸다.

“어머니, 아버지.”

“카라마츠.”

마츠조가 테이블을 가로 질어 카라마츠의 손을 잡았다. 거칠고 두툼한 아버지의 손이 아들의 손을 격려하듯 토닥였다.

“우리는 널 응원한단다.”

마츠요도 조용히 카라마츠의 다른 손을 붙잡아줬다. 세월이 느껴지는 주름진 작은 손이 든든하게 그의 손을 감싸왔다. 카라마츠는 한참 고개를 들지 못했다. 참고, 참아 눈물을 흘리진 않았지만 고개를 들었을 때 그의 눈가는 조금 붉게 물들어 있었다.

구체적인 계획을 마츠조가 물어왔다. 카라마츠는 이번 연극이 막을 내리는 대로, 집에서 짐을 챙겨 나올 생각이라고 말했다. 살 곳은 구했냐고 묻는 마츠오에게는 극단 쪽에서 이사갈 지역에 카라마츠와 같은 단원들을 위해 작은 빌라를 얻었음을 알려줬다.

“극단 사람들 중 너만 그쪽으로 바로 떠나는 거냐?”

“반으로 나뉘어서 반은 이쪽 정리를 하기로 했고, 반은 그쪽에 먼저 가서 극단을 단장하기로 했어요. 다음 극까지 기간도 빠듯해서 연습도 해야 해서 적어도 그 극에 출연할 주조연들은 우선적으로 먼저 이동하기로 했어요. 이쪽에 남아 뒷정리를 할 사람들은 대부분 도구나 기계를 담당하는 사람들이고요.”

“그렇구나.”

셋은 앞으로의 일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 했다. 찻잔 속의 잎이 셋의 밝은 목소리에 맞춰 흔들흔들 움직였다.

 

 

오늘도 혼자 연극을 보러왔던 쥬시마츠는 연극을 보고 나가다 바쁘게 움직이던 스태프와 가볍게 어깨를 부딪쳤다. 낯익은 얼굴은 쥬시마츠가 아르바이트를 할 때 제법 친하게 지냈던 사람이었다.

“아, 역시 오늘도 왔네, 쥬시마츠 군.”

“응.”

“다른 형제는?”

이치마츠와 올 때 두어 번 마주쳤었기에 일행을 물어왔다.

“으으응. 오늘은 나만.”

쥬시마츠는 세게 고개를 저었다. 요즘 이치마츠는 쥬시마츠가 연극을 보러 나갈 시간이 되면 슬그머니 화장실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암묵적인 동행 거부에 쥬시마츠도 별다른 말없이 홀로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빈 복도를 향해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집을 나섰다.

“그렇구나.”

무슨 일이 있는 건지. 형제들이 사이가 많이 안 좋은가? 얼핏 듣기론 먼저 봤던 그 사람 외에도 형제들이 참 많은 것 같은데, 카라마츠가 쥬시마츠를 제외한 다른 형제들하고는 뭔가 사연이 많은 것 같다고 단원들끼리 이야기를 나눴던 것을 떠올리며 스태프는 그것에 대해선 길게 묻진 않았다. 다만, 문득 떠올린 사실을 쥬시마츠에게 말해줬다.

“아, 오늘 부모님이랑 카라마츠 군이랑 같이 식사하는 거지?”

“에?”

쥬시마츠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카라마츠 군이 저녁 먹자고 초대했다고 하시더라고. 쥬시마츠 군도 같이 가는 거지?”

“아.”

쥬시마츠는 어정쩡하게 스태프를 쳐다봤다. 그 눈의 흔들림을 알아채지 못한 스태프가 무심히 혼잡한 장내를 둘러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아마 오늘 말하려는 것 같지.”

어떤 예감이 들어 쥬시마츠의 가슴이 아프게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뭘?”

쥬시마츠는 가슴을 꾹 누르며 물었다.

“뭐긴. 연극 막이 내리는 대로 극단이 이사 가는 건에 대해서랑 카라마츠 다음 연극에선 제법 큰 역할을 맡게 되는 거? 하시다나 카라마츠가 말해줬지?”

“…….”

쥬시마츠는 아무 대답도 못하고 멍하니 그를 쳐다봤다. 대답이 들려오지 않아 뒤늦게 쥬시마츠의 표정을 본 그가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다.

“아, 어, 저기. 그게, 역할에 대해서는 아직 못 들었을까? 오늘 확정된 사안이니까.”

스태프는 난처한 얼굴로 볼을 긁었다. 카라마츠가 알리지도 않은 걸 제멋대로 말해버렸다는 난처함에 그는 어색하게 웃었다. 오늘 식사 중에 중대발표라고 신나서 이야기할 사안을 자신이 망쳐버렸다는 생각이 들면서 자신의 입을 때려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평소 선배들이 가벼운 입 좀 조심하라고 주의를 줬는데 오늘 또 이렇게 사고를 쳐버렸다.

하지만 놀랄 수는 있지만 저렇게 굳을 일인가…싶었다. 분명 좋은 소식이니까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하얗게 질려 굳은 눈으로 자신을 보는 쥬시마츠는 어딘지 섬뜩해서 스태프는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이유 모를 한기와 약간의 의아함을 느끼는데, 마침 저쪽에서 자신을 부르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이, 켄! 이리로 와봐!”

평소 무서워하는 선배의 목소리였지만,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는 반색하며 몸을 돌리며 쥬시마츠에게 말했다.

“흠, 흠. 하여튼 쥬시마츠 군! 가족끼리 식사 잘 하고, 카라마츠랑 부모님은 저쪽 G 대기실로 가보면 있을 거야. 그럼 또 봐!”

그는 급히 자리를 떠났다.

쥬시마츠는 멍하니 인파 사이로 사라지는 스태프의 뒷모습을 봤다. 머릿속이 하얗게 물들었다. 쥬시마츠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바스락거리며 티켓들을 꺼내들었다. 여러 장의 티켓 중 이제 남은 날짜는 고작 6일.

그렇구나. 6일 남았구나. 이렇게라도 형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쥬시마츠는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을 줬다. 싫다. 라는 마음이 불쑥 치솟아 끄트머리가 약간이라도 구겨질세라 애지중지 들고 다녔던 티켓이 손아귀에서 순식간에 와작 구겨졌다. 쥬시마츠는 그 감촉에 놀라 재빨리 손을 펼쳤다. 구깃구깃 구겨진 티켓들이 눈에 들어왔다. 정성껏, 힘을 줘 티켓들을 펴보려 했지만 구겨진 흔적은 지워지지 않고 계속 남아있었다. 오히려 손으로 티켓을 문지를수록 종이는 좀 더 구겨지고, 헤져, 원래의 모습과는 멀어지게 변해갔다.

아아.

쥬시마츠는 탄식 같은 울음소리를 흘렸다. 자신은 정말이지 나쁜 동생이다. 이기적인 나쁜 동생. 미안해, 형아. 하마터면 약속을 잊어버릴 뻔했어.

쥬시마츠는 카라마츠에게 사과를 하며 뾰족하게 튀어나왔던 마음을 갈아냈다. 구겨진 티켓 위로 눈물을 한 방울, 두 방울 흘리며 고정된 결과를 감당할 마음의 준비를 시작했다.

정말로 이번에는 꼭 도와줄게.

 

 

오소마츠는 콧노래를 부르며 연구소에서 나왔다. 그의 손에는 작은 약병이 들려있었다. 손가락 세 마디 크기의 작은 병엔 캡슐형의 작은 알약들이 오십여 개가 들어있었다.

오소마츠는 자신의 손바닥 위에 있는 봤다. 라벨에는 약 이름이 조그맣게 적혀있었다. 「기억을 지우는 알약」.

정말 시기적절하게 약이 완성되었다. 모두 데카판과 하타보 덕분이었다.

카라마츠가 수혈로 발작을 일으킨 날, 오소마츠는 이치마츠를 통해 가족들을 병실로 보내곤 혼자 발 빠르게 데카판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에게 호기심을 가장하여 그런 약이 있는지를 물어봤었다. 아쉽게도 그런 위험한 약은 없다는 말에 “만들 수 없을까?”하고 물어봤다. 데카판은 의아해하면서도 순순히 자신이 마친 연구 몇 가지를 응용하면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해왔다. 악용되면 위험하기에 만들지 않았던 것뿐, 재료만 있다면 바로 만들 수 있다는 말에 오소마츠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어디에 쓸 거냐고 물어오는 말엔 명확히 말하지는 않았다. 다만 지울 수 없는 기억에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다고, 그렇게 말했다.

거짓은 아니었다. 한 명. 카라마츠의 그 기억만 지울 수 있다면 모든 것은 원래대로 돌아가서 고통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

일부를 감추고 뱉어졌지만, 분명 그러한 진심이 깃든 말에 사람 좋은 박사는 오소마츠를 조수로 두고 약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개발에 필요한 것 중에는 하타보에게 판매한 특허 물품도 필요해서 하타보에게도 손을 빌려야했다. 역시나 친구에게 마음 약한 하타보도 오소마츠의 부탁에 두 말 없이 특허 물품 외에도 물적 자원을 아끼지 않고 도움을 주었다. 그 덕분에 예상보다도 빠른 오늘 약이 완성되어 오소마츠의 손에 들어왔다.

한 알 당 대략 한 달의 기억이 지워진다.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니 한 번에 6개 이상은 사용하지 말라는 데카판의 당부가 있었지만 그런 건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버렸다. 그만큼 필요하지도 않았다.

오소마츠는 날짜를 헤아려봤다. 그 일, 카라마츠가 납치당한 그 일이 있던 초겨울부터 옷이 가벼워진 새싹이 움트는 초봄을 지나 거리 곳곳에 봄 향기가 물씬 나는 지금까지. 시간은 착실하게 흘러 이제 반팔을 입어도 그리 어색하지 않은 그런 날씨까지 시간은 흘러버렸다. 약 5개월의 시간. 아슬아슬하게 오버되지 않는 그 숫자.

오소마츠는 진심으로 오늘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섯은 하나. 네가 나고, 내가 너인 우리는 하나. 틀어져버린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오소마츠는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작은 병을 파카 안에 집어넣었다. 걸을 때마다 잘그락, 잘그락 알약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정말 듣기 좋았다.

“다녀왔습니다!”

오소마츠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현관문을 열고 기분 좋게 외치며 안으로 들어섰다. 신발을 벗기 위해 몸을 숙인 그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파란색’ 운동화였다. 지난 몇 달, 볼 수 없었던 그 색깔의 신발. 오소마츠는 문을 닫다말고 허리를 숙인 채,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신발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어서 와, 오소마츠 형.”

2층에서 내려오던 쵸로마츠가 현관에 우두커니 서있는 오소마츠를 발견하고 인사를 해왔다. 그 얼굴은 어딘지 밝았다. 늘 멀쩡한 척했지만 틈만 나면 오소마츠 옆에 붙어 불안한 얼굴로 구원을 바라며 그를 보던 쵸로마츠가 아니었다. 원래의 쵸로마츠였다.

쵸로마츠를 빤히 보고 있으니 현관에까지 소란스러움이 전해지던 거실에서 삐죽 튀어나오는 얼굴이 둘이 있었다. 토도마츠와 쥬시마츠였다.

“어서와, 오소마츠 형.”

“어서옵쇼!”

토도마츠도, 쥬시마츠도 평소와는 달랐다. 아니, 평소와 같았다. 그러니까 한 다섯 달 전쯤의 평소와 같았다. 지극히 안정된 얼굴을 한 동생들의 모습에 오소마츠는 얼떨떨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자 그쪽에서도 이쪽을 이상한 얼굴로 바라본다.

“안 들어오고 뭐해?”

“먼지 들어와. 얼른 문 닫아.”

“어, 어….”

종잡을 수 없는 집의 분위기를 읽기 위해 바빠 눈을 굴리며 오소마츠는 우선 문을 닫았다. 그리고 턱에 걸터앉아 느릿느릿 신발을 벗는데 자꾸 파란 운동화가 눈에 걸렸다.

오소마츠는 운동화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신을 벗었다. 그리고 등 뒤에 서있는 쵸로마츠에게 슬쩍 물었다.

“쵸로마츠. 지금 집에 카라마츠 와있어?”

“어. 엄마, 아빠랑 왔어.”

쵸로마츠가 밝은 어조로 대답했다.

“…그래?”

“연극도 이제 끝났고, 다시 집에서 생활한다나봐.”

“정말?”

오소마츠가 의외의 소식에 고개를 돌려 쵸로마츠를 쳐다봤다. 고개를 끄덕이는 쵸로마츠의 얼굴은 많이 밝았다. 하지만 오소마츠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 카라마츠가, 자신들을 거부하던 카라마츠가 집에서 생활한다고 했다고? 아직도 피 웅덩이 안에서 자신들을 거부하던 그 얼굴이 선한데, 자신의 피를 거부하며 발작하던 모습이 선명한데.

오소마츠는 절대로 믿을 수 없어서 쵸로마츠에게 다시 물어보려고 했다.

“아, 오소마츠 형님. 왔는가?”

그 때, 오래토록 들을 수 없던 목소리가 오소마츠를 불러왔다. 쵸로마츠의 어깨너머를 닦고 나오는 모양인 듯, 머리에 수건을 뒤집어쓰고 있는 카라마츠가 반가워하는 얼굴로 오소마츠를 쳐다보고 있었다. 진심으로 반가워하며 웃는 얼굴은 오소마츠가 되찾으려고 했던 동생의 얼굴이어서 오소마츠는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내가 벌써 약을 썼던가? 파카 주머니 안으로 손을 넣어 만지면 단단하게 밀봉된 약병이 손끝에 만져졌다.

“얼른 들어와서 씻어라. 기다려도 오지 않아서 배달 메뉴는 우리끼리 정했다.”

“배달?”

“카라마츠 형이 보너스를 받았대.”

“연극이 인기가 많아서 뭔가 받았다나봐.”

“그래서 초밥 시켰어! 그것도 특대로!”

마치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분위기였다. 쾌활함과 평범한.

오소마츠는 동생들의 들뜬 것 같은 목소리에 얼떨떨해하면서 쵸로마츠의 손에 붙들려 거실로 들어왔다. 늘 그렇듯, 거실 구석에 앉아 고양이를 안고 있던 이치마츠가 오소마츠에게 마지막으로 인사했다.

“…어서와. 오소마츠 형.”

모든 것이 오소마츠가 그리워하던 그 광경과 같았다.

 

 

유명한 초밥집에서 배달 온 초밥은 상상을 초월하는 그 가격만큼이나 정말로 맛있었다. 모두 정신없이 먹었다. 카라마츠는 아빠와 엄마, 그리고 동생들도 챙겨가며 천천히 음식을 먹었다. 아, 이젠 잘 먹는 구나. 아주 조금이라도 용량을 초과해서 먹으면 음식을 토해내던 카라마츠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던 오소마츠는 힐끗힐끗 카라마츠를 관찰하며 초밥을 먹었다.

그 시선을 예민하게 눈치 챈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쳐다봤다.

“왜 그러나, 형님.”

“…응? 아니, 아. 카라마츠. 나 간장 좀.”

오소마츠는 카라마츠 옆의 간장병을 가리켰다. 카라마츠는 선뜻 그것을 집어 오소마츠에게 전달했다. 손끝이 스쳤다. 하지만 카라마츠는 별 반응은 없었다. 오소마츠의 손에 제대로 건네주고 자리에 앉아 산만하게 초밥을 먹는 쥬시마츠의 입을 닦아줄 뿐, 어떤 거부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지극히도 평범했다. 오소마츠가 그토록 찾으려고 했던 평소의 카라마츠였다.

하지만 마음에 작은 가시가 박혀있는 것처럼 뭔가가 계속 신경을 거슬렸다. 그래서 오소마츠는 그를 계속 관찰했다. 일부로 그가 집으려는 초밥을 가로채듯 집기도 하고, 슬쩍 옆에 앉아 기대기도 하고, 카라마츠 몰래 그 몫의 간장에 와사비를 왕창 넣기도 했다. 하지만 카라마츠는 카라마츠였다. 와사비에선 미간을 찌푸리며 “적당히 해라, 오소마츠 형님!”하며 꿀밤을 먹여오는 데, 자신에겐 특히나 가차 없는 것이 너무나도 카라마츠였다.

왜? 왜 갑자기? 왜 갑자기 원래대로 돌아왔어?

오소마츠는 쓰린 머리를 양손으로 감싸고 문지르면서 카라마츠를 빤히 쳐다봤다. 이상하잖아, 카라마츠. 뭐라고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오소마츠는 지금 이 분위기가 너무나도 이상했다.

하지만 뭐가 이상한지는 밤이 깊어 모두가 잠이 들 때까지 알아내지 못했다. 오소마츠는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리고 새벽이 왔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의 뒤척임이라기엔 이불 속에서 뒤척이는 것과는 다른 소리였다. 옷을 입는 소리였다.

오소마츠는 감고만 있던 눈을 떴다. 드르륵 탁, 하고 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나 급히 몸을 일으키니 자리 하나가 비어있었다. 카라마츠의 자리였다.

오소마츠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떤 예감이 들어 그는 벽장에 다가가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어스름한 새벽빛에 어둑한 벽장 안이 흐릿하지만 분명히 보였고, 오소마츠는 망설임 없이 카라마츠의 서랍을 열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없었다. 카라마츠의 물건들이. 몇몇의 옷가지와 잡동사니들은 남아있었지만 그건 이젠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이었다. 쓰레기와 무가치한 것만 담긴 카라마츠의 서랍을 쳐다보던 오소마츠는 이번엔 자신의 서랍을 열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약병을 꺼내들고 방을 나섰다.

오소마츠는 오래되어 삐걱거리는 계단에서 소리가 나지 않게 발끝으로 조심조심, 느릿느릿 1층으로 내려와 욕실로 향했다. 욕실에 가기 전 거실을 살피니 안에 그가 찾고 있던 사람은 없었다.

자시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겨 욕실 앞에 도착했다. 안에서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오소마츠는 가만히 그 소리를 듣다 다시 소리를 죽이며 걸어 부엌에 들어갔다.

부엌에 들어선 그는 찬장에서 머그컵을 꺼내들었다. 자신의 빨간색 컵에 물을 담고, 꿀과 이것저것을 섞어 만든 진액을 넣었다. 마츠요 특제 숙취 해소제로 숙취 제거에 효과가 탁월해 과음을 한 다음 날 차처럼 물에 종종 타 마시는 진액이었다.

진액이 섞이며 갈색으로 탁하게 변한 물을 본 오소마츠는 컵에 약을 넣었다 얼른 물에 녹으라고 캡슐을 제거하고 내용물만을 집어넣었다. 한 알, 두 알, 세 알, 네 알. 막 다섯 번째의 캡슐을 제거하려는 데 욕실 문이 여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오소마츠는 급히 마지막 약은 캡슐째로 컵에 넣고 부엌 벽에 몸을 붙였다.

다행이 카라마츠는 부엌으로 들어오지 않고 거실로 들어갔다. 부엌에 오소마츠가 있는 것은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았다. 거실 안에서 달그락달그락, 부스럭부스럭. 작은 소음이 들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복도로 나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발소리는 계단으로 향하다, 계단을 지나쳐 점점 더 멀어졌다.

현관으로 향하는 발소리를 듣던 오소마츠는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손에 들린 머그컵을 봤다. 그리고 결심을 굳히고 부엌을 나섰다. 그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현관에 앉아 신발을 신는 검은 티셔츠를 입은 카라마츠의 굽은 등이었고, 그 다음으로 눈에 보인 것은 그 옆엔 놓인 커다란 짐 가방 두 개였다. 머그컵의 손잡이를 든 오소마츠의 손에 핏대가 섰다. 파문이 이는 머그컵을 힐끗 살핀 오소마츠가 심호흡을 한 후 카라마츠를 불렀다.

“어디 가니, 카라마츠.”

 

 

뒤에서 들려오는 오소마츠의 목소리에 카라마츠는 몸을 굳혔다. 조용히 나가고 싶었는데.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참고 카라마츠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카라마츠’를 연기했다.

“오소마츠 형님, 이른 시간이라 자고 있는 줄 알았는데.”

“이런 날도 있는 거지. 하도 마셨더니 속이 안 좋아서 깨버렸달까.”

“그런가.”

냉랭함이 없는 평범한 분위기의 대화. 얼마만의 둘만의 대화인지, 감정적이 되려는 걸 겨우 억누르며 오소마츠가 물었다.

“그런데 어디가? 연극 끝나서 한동안 쉬는 거 아니었어?”

“…급히 일이 있다고 호출이 와서.”

평소와는 확연히 다르게 커다란 가방을 들고 있으면서 천연덕스럽게 말해온다. 오소마츠가 눈을 가늘게 뜨고 압박하듯 내려 보지만 카라마츠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눈싸움을 하듯, 날카로운 공기가 두 사람 사이에 몰아쳤다.

먼저 시선을 돌린 것은 오소마츠였다.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들고 있던 컵을 천연덕스럽게 내밀었다.

“이거.”

“…뭔가?”

“오소마츠 특제 숙취해소 음료!”

나만 마시려고 했는데, 너도 일어났으니 마셔.

카라마츠는 미간을 찌푸렸다. 딱히 숙취도 없고, 갈증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라서 솔직히 거절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하지만 지금 그는 ‘카라마츠’의 가면을 쓰고 있었고, 한편으론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생각도 들어서 카라마츠는 결국 손에 들고 있던 가방을 현관 바닥에 내려놓고 떨떠름한 표정으로 잔을 받아들었다.

“…고맙다, 오소마츠 형님.”

갈색의 혼합 음료를 보던 카라마츠는 천천히 잔을 들어 그것을 제 입으로 가져갔다. 막, 한 모금. 그것을 입에 넣으려던 그 때였다.

계단에서부터 전속력으로 달려온 누군가가 카라마츠에게 달려든다.

“으왓!”

"형아!"

입까지 가져갔던 컵이 쥬시마츠와 부딪힌 충격으로 바닥으로 떨어지고, 대비하지 못하고 있던 카라마츠는 뒤로 나자빠졌다. 쨍그랑, 머그컵이 깨지며 현관 바닥이 조각들과 물기로 엉망이 됐다.

“쥬시마츠?”

카라마츠를 꼭 껴안은 쥬시마츠가 천천히 몸을 떼며 웃었다. 평소 습관처럼 짓는 웃음이 아닌 슬픔이 가득 담긴 미소였다.

“…잘 가, 형.”

쥬시마츠의 영문 모를 행동에 얼떨떨한 표정을 짓는데, 머리 위에서 노호성이 터져 나왔다.

“쥬시마츠, 너-!”

“가, 형.”

답지 않게 차분히 귓가에 울리는 쥬시마츠의 목소리와 그와는 대조되는 화로 가득찬 오소마츠의 목소리. 그 차이에서 뭔가를 깨달은 카라마츠는 부릅뜬 눈으로 오소마츠를 올려봤다. 좀 전과는 다르게 오소마츠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그 표정은 카라마츠가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계획했던 것이 실패했을 때 나오는 특유의 표정이었다. 오소마츠의 얼굴엔 당혹감과 배신감이 떠올랐다 지워지길 반복하고 있었다.

카라마츠는 바닥에 쏟아진 잔을 내려 봤다. 깨져버린 파편과 진흙탕 같은 색의 물엔 미처 녹지 못한 알약이 하나 있었다.

카라마츠는 상황 파악을 마치고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집어 들고 몸을 돌렸다. 오소마츠가 달려들어 그를 잡으려 했다. 하지만 쥬시마츠가 둘 사이에 끼어들며 오소마츠를 전력으로 막는 바람에 카라마츠를 향해 뻗었던 손은 뒤돌아선 카라마츠의 등을 스치는 것에 그쳤다.

등 뒤를 스치는 오싹함에 문을 열다말고 뒤를 돌아본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막고 있는 쥬시마츠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쥬시마츠!”

“얼른 가, 카라마츠 형아!”

오소마츠를 막고 있는 동생의 등이 힘겹게 흔들렸다. 형의 악다구니를 받아주며 동생이 그에게 말했다.

“약속했지? 이번엔, 진짜, 형아 편이니까.”

카라마츠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단단하게 굳었던 마음이 욱신, 쑤셔왔다.

“그러니까 나, 아직 형아 동생 맞지?”

“쥬시마츠, 이거 놔!”

오소마츠의 악다구니에도 쥬시마츠의 물기 섞인 중얼거림은 선명하게 카라마츠의 귀에 들려왔다. 저 안쪽에서 오소마츠의 고함에 하나, 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쥬시마츠가 자신을 보는 카라마츠에게 한 번 더 외쳤다.

“늦기 전에 얼른 가!”

카라마츠는 이를 악물고 문을 활짝 열었다. 그리고 밖으로 한 발짝 내딛는 순간 목소리들이 들렸다.

“가지마.”

“카라마츠.”

“가!”

진득하게 들러붙는 웅성거림 속에 단 하나의 목소리만이 명확하게 그의 등을 밀었다. 카라마츠는 눈을 질끈 감고 새벽 거리를 달렸다.

 

Ending. 1/6이 아닌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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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드디어 끝이 났습니다. 카라마츠 사변!

(자축의 뿌뿌뿌!

2월~3월쯤, 숨바꼭질 재록본이 마무리 되면 사변도 재록본을 낼 예정입니다. 현재 계획으로는 재록본에 본편처럼 길게는 아니고 짤막하게 만약 카라마츠나 형제들이나 부모님이 선택을 다르게 했다면 어떤 결과가 있었을까, 라는 느낌으로 다른 엔딩을 2~3개 넣어보려하고 있습니다.

게임으로 치면 분기별 선택에 따른 다른 엔딩, 이라는 느낌이겠네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2~3월이 바쁜 달이고, 이직도 생각하고 있어서 그 계획은 제대로 이뤄질지는 모르겠습니다. 기간이 미뤄질지도 모르고, 외전 1개 정도 겨우 추가될 지도 모르겠지만...하여튼 지금 계획은 그렇습니다!

숨바꼭질도 그렇지만 재록본에 수록되는 그 에피소드들은 재록본에만 수록되고 웹에는 공개하지 않을 예정입니다.ㅅ. 부족한 제 글을 구매해주시는 분들에 대한 나름의 감사를 담아 쓰는 글들이니까요.

하여튼 그동안 부족하고 느릿하게 진행되었던 이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마음이 정말 홀가분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