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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츠 사변

[오소마츠상] 카라마츠 사변 19

카라마츠가 먼저 집에 들어왔다. 드르륵, 열리는 문소리에 거실에 모여 있던 형제들의 어깨가 크게 튀었다.

“다녀왔슴, 머슬!”

뒤이어 들어온 쥬시마츠는 힘차게 인사를 했다. 카라마츠는 아무 말 없이 복도에 걸터앉아 신발을 벗으려했다. 그러다 문득, 부모님의 신발이 눈에 보였다. 그것을 빤히 쳐다보던 카라마츠는 천천히 부엌으로 향했다. 식탁에 앉아 신문을 보는 아빠와 달그락거리며 저녁 설거지를 하는 엄마가 보였다.

“다녀왔습니다.”

카라마츠가 조용히 인사를 하니, 마츠조와 마츠요는 하던 것들을 멈추고 부드럽게 웃으며 그를 돌아봤다.

“어서 오렴, 카라마츠.”

“왔냐, 카라마츠. 저녁은 먹었고?”

반가이 맞아주는 모습에 카라마츠는 부엌 안으로 완전히 몸을 들이고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편의점에서 호빵?”

부실한 식단에 마츠조가 눈을 둥글게 떴다.

“그걸로 저녁이 되나?”

“카라마츠, 밥 차려줄까?”

마츠요도 설거지거리를 놓고 몸을 돌려 밥솥으로 급히 손을 뻗었다. 카라마츠는 급히 그녀를 말렸다.

“배는 크게 안 고픈데. 괜찮아, 엄마. 배고프면 알아서 먹을게.”

“그럴래? 아, 사과 깎아줄까?”

아들이 사양을 하지만 뭐라도 주고 싶은 것이 엄마의 마음이라, 마츠요는 식탁에 놓인 바구니에서 사과를 꺼내들며 물었다. 마츠조와 눈을 마주친 카라마츠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아빠를 보고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좋아. 그럼 한 개만.”

당부하듯 검지를 펴며 흔드는 아들을 향해 웃으며 마츠요는 사과를 닦기 위해 다시 싱크대로 걸어갔다.

“그래, 알겠으니 얼른 갈아입고 씻고 오렴.”

“응.”

카라마츠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부엌을 빠져나갔다. 부엌 옆, 복도에 서서 그런 형의 뒷모습을 쳐다보는 쥬시마츠를 향해 마츠요가 물었다.

“쥬시마츠도 먹고 왔니?”

그 손은 카라마츠 몫의 사과를 닦고 있었다. 물기를 머금어 더욱 붉게 보이는 사과를 멍하니 보던 쥬시마츠가 힘차게 대답했다.

“-응. 나도 호빵!”

마츠요가 보고 있지 않음에도 쥬시마츠는 크게 머리까지 끄덕이며 온몸으로 긍정했다. 그 붕붕 소리에 사과를 닦던 마츠요의 입가에, 다시 신문을 보던 마츠조의 입가에도 미소가 희미하게 어렸다 사라졌다.

“그렇구나. 저녁 차려줄까?”

“으응! 괜찮아!”

쥬시마츠가 부모님과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며 카라마츠는 복도를 걸었다. 그리고 형제들이 모여 있는 거실로는 시선 한 번 주지 않고 2층 방으로 올라갔다. 샤워 후 갈아입을 옷을 챙겨들고 내려오다 보니 계단 옆에 토도마츠가 서있었다. 카라마츠는 힐끗 동생을 쳐다보곤 최대한 빙둘러 그 앞을 스쳐 지났다. 막 욕실 문고리에 손을 올리는 차였다.

“저기, 카라마츠 형.”

부르는 소리가 들려 욕실 문을 열다말고 뒤를 돌아봤다. 토도마츠가 그를 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화들짝 놀라며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몇 번 입술을 달싹이던 그가 힘들게 입을 열었다.

“저기 우리 조금 있다 목욕탕 갈 건데.”

“아, 목욕용품 꺼내야하나? 그럼 잠시 후 들어가도록 하지.”

“…아, 아니. 다 꺼내 왔는데….”

“? 그럼 난 씻어야하니 들어가 보겠다.”

“그게, 아니, 형 것도 꺼내 놨어.”

동생의 말에 멈칫했다. 카라마츠의 눈이 토도마츠를 향한다. 까만 눈이 마주치는 순간 몇 초도 못 버티고 아래로 시선을 돌린 토도마츠는 초조하게 입술을 짓씹었다. 말하자. 다 나았으면 이제 같이 목욕탕 가자. 형 걷는 거 불편하면 내가 부축해줄게. 형 엄마가 사과 깎아놓은 거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릴게. 그러니 같이 가자. 이제 같이 가줘. 그렇게 말하자, 말해. 토도마츠.

“형, 이제 같이 목-”

용기를 내서 목소리를 내는 순간 카라마츠는 걷기 시작했다. 카라마츠의 움직임에 다시 움찔하며 말을 멈춘 토도마츠 곁을 스쳐 거실로 향한 그는 파란색의 목욕 바구니를 들어올렸다. 저를 향해 쏟아지는 시선들을 무시하고 카라마츠는 천천히 복도로 나왔다. 바구니를 들고 욕실로 향하는 그를 멍하니 쳐다봤다. 드르륵,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반쯤 닫던 카라마츠가 멈칫하더니 조용히 말했다.

“잘 다녀와라, 토도마츠.”

그리고 문이 닫혔다.

토도마츠는 쵸로마츠가 다가와 목욕 바구니를 건네줄 때까지 계속 욕실 앞에 서있었다. 욕실에선 이미 물 흐르는 소리가 한참이었다.

 

 

대충 몸을 닦은 카라마츠는 일찌감치 밖으로 나왔다. 형제들은 자리에 없었고, 부모님은 아직 부엌에 있었다. 카라마츠를 기다리고 있는 듯, 부엌에 들어서는 그를 보며 두 사람은 어서오라고 다시 인사를 해줬다. 카라마츠는 멋쩍에 웃으며 둘 앞에 앉았다. 카라마츠가 자리에 앉자 마츠요는 사과를 깎기 시작했다. 카라마츠는 길게 아래로 끊어지지 않고 떨어지는 사과 껍질을 쳐다보다 말했다.

“엄마, 아빠. 할 말이 있어.”

“어디, 몸이 안 좋은 건가?”

그의 몸을 아래위로 살피며 걱정부터 하는 마츠조에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내 몸은 이제 다 나았어. 아직 다리가 이렇긴 하지만 확실히 회복되고 있다니까.”

“그래. 정말 다행이구나. 카라마츠, 엄마나 아빠가 병원에 함께 못 가서 미안하구나.”

 "으응. 하시다가 차로 도와주고, ...쥬시마츠도 있으니까."

 "언제 하시다한테 고맙다고 인사를 해야겠구나. 저녁에 초대할까?"

 "아, 그러면 좋지."

 "언제라도 괜찮으니 시간될 때 꼭 물어보렴."

마츠요가 사과가 담긴 접시를 카라마츠에게 내밀며 말했다. 짧은 대화였지만 안도와 기쁨이 담겨있는 게 확실하게 느껴져 카라마츠의 가슴이 간질거렸다. 훈훈한 모자의 모습에 마츠조도 희미하게 웃으며 펼쳐놨던 신문을 정리하며 물었다.

“그럼 할 말이 뭐냐, 카라마츠.”

“아.”

마츠조의 질문에 카라마츠는 할 말을 떠올리곤 눈을 빛내며 두 사람을 쳐다봤다. 환하게 빛나는 아들의 얼굴은 정말로 오랜만에 보는 것이라 두 사람은 조금 놀라버렸다. 그리고 둘은 카라마츠가 꺼낸 말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정도로 놀라버렸다.

“오늘 갑작스럽게 나온 이야기인데, 지금 극단에서 준비하는 연극에 출연할 것 같아.”

“! 그게 정말이니?”

의자가 덜컹거렸다.

“큰 배역은 아니지만, 무대 감각을 되찾을 겸 엑스트라로 대여섯 번 무대에 오를 거야.”

그 말에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카라마츠를 멍하니 보던 둘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그리고 곧 환하게 웃으며 카라마츠의 손을 꼭 잡아줬다. 마츠요의 눈에서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기쁘다고 말하는 엄마와 말없이 손을 힘주어 잡는 아빠. 마음이 든든해진 카라마츠는 진짜로 하고 싶던 말을 꺼냈다.

“그래서 말인데, 바쁠 테지만, 비록 작은 역할이지만, 두 사람…, 아니 두 분께서 보러 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어색한 존댓말을 하며 쑥스럽게 웃는 아들의 얼굴은 그가 성장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것을 대견스럽게 바라보던 둘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꼭 갈게.”

“당연히 보러가야지! 가게는 하루 쉬거나, 맡겨놓으면 돼! 몇 년 째, 쉬지 않고 일했으니 하루 정도는 쉬는 것도 좋겠지!”

마츠요가 흥분으로 외치는 마츠조를 진정시키며 카라마츠를 쳐다봤다.

“카라마츠, 날짜는 언제니?”

“앞으로 한 달 후?”

“아직 멀었구나.”

둘은 다시 의자에 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 달 정도의 기간이 있다면 일을 쉬도록 스케줄을 맞추긴 어렵지 않다. 아니, 일이 있어도 반드시 가야겠다고 두 사람은 다짐했다.

“그렇지도 않아요. 홍보하고, 앞으론 다른 사람하고 호흡도 맞춰봐야 하고, 무대에서 동선도 몸으로 익혀야하고, 소품들도 만들어야하고.”

“바쁘겠구나.”

하지만 바쁜 게 좋지! 마츠조는 기쁜 기색을 감추지 않고 아들의 손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그것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마츠요는 주절주절 이야기를 시작하는 마츠조의 말을 자르고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그런데 카라마츠. 다른 애들한테는….”

카라마츠는 애매하게 웃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네가 말하지 않아서 지금까지 조용히 있었다만…너, 다쳤던 거, 그 애들 때문이지?”

“…아니에요. 엄마.”

조금 머뭇거렸지만 카라마츠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단단히 표정을 굳힌 마츠조와 마츠요는 지금까지 차마 묻지 못하고 미뤄뒀던 것을 물을 좋은 기회라 생각했는지 물러서지 않았다.

“카라마츠. 우린 네 부모다. 솔직하게 말해도 괜찮아.”

“그 때 이후로 애들과 잘 어울리지 않고 있잖니. 그 애들이 잘못한 거, 맞지?”

카라마츠는 침묵했다. 처음 시작은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와서는 더는 잘잘못의 문제는 아니었다. 단지, 자신은 이제 지쳤을 뿐이다. 형제들을 믿고 사랑하는 것을. 그리고 포기했을 뿐이다. 형제들에게 구걸하듯 매달려 사랑받는 것을. 그리고 놀랍게도 모든 것을 놓아버리니 다른 많은 것들이 그 빈자리를 채웠을 뿐이다. 모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은 의외로 작은 것이었다. 그것을 깨달았을 뿐이다.

이 복잡한 마음을 표현할 방법이 없어 카라마츠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것을 긍정으로 받아들이고, 한숨을 폭 내쉬었다.

“알겠다. 그 정도로 고생했으니…. 이해한단다.”

“…용서는 너의 자유니까.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괜찮아. 카라마츠.”

카라마츠는 머뭇거리다 덧붙였다.

“…딱히, 화난 건 아니에요. 그냥…조금, 늦게 깨달았을 뿐이에요.”

“카라마츠….”

“괜찮아요. 이제야 전 마음이 편해요. 두 분께서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그것은 거짓 없는 진심이었다.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미소를 보고 두 사람은 쓰게 웃었다. 그리고 한편으론 아, 그렇구나. 하고 그 뜻을 알게 되었다. 올바른 부모라면 억지로라도 자식들을 화해를 시켜야할까? 하지만 그러면 이 아이는,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겠지? 아프고, 힘들어하던 그 때로.

고민은 길지 않았다.

“어쨌든 꼭 보러 가마.”

“네!”

밝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난 카라마츠가 말했다.

“두 분, 안녕히 주무세요!”

“너도 잘 자렴.”

발소리가 들리고, 문이 여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이젠 완전히 카라마츠의 독방이 돼버린 1층의 손님방에서 나는 소리였다. 당연하다는 듯 그곳으로 향한 둘째 아들의 행동에 두 사람은 동시에 한숨을 쉬었다.

 

출출하다는 쥬시마츠의 말에 들린 편의점에서 형제들은 제각각 주전부리를 사들고 밖으로 나왔다. 호빵을 세 개나 사들고 나온 쥬시마츠가 제자리에서 게 눈 감추듯 허겁지겁 먹어치우는 걸 보고 이치마츠는 조용히 우유를 내밀었다. 쥬시마츠는 고맙다고 말하며 우유도 단숨에 마셔버렸다.

“쥬시마츠, 호빵 먹고 들어왔다고 안했어?”

“응-, 그런데 닦고 나니 배가 고프네.”

“…그래?”

저녁, 먹지 않았구나. 라고 모두는 생각했지만 그것을 입 밖에 내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조용히 자신들이 산 과자들을 쥬시마츠에게 하나, 둘 나눠줬다. 기쁜 듯 함박웃음을 짓는 쥬시마츠에게 토도마츠가 슬쩍 물었다.

“쥬시마츠 형.”

“응?”

성급하게 과자 하나를 까며 쥬시마츠가 고개를 돌렸다.

“오늘은 어땠어?”

“뭐가?”

“응-, 극단에서?”

과자를 한 움큼 집어 입에 넣고 몇 번 씹지 않고 삼킨 쥬시마츠가 오늘 있던 일을 짧게 설명했다.

“오늘 짐이 많았어! 계속 옮기고, 옮기고!”

매일매일 무슨 짐이 그렇게 많은지. 많은 물건들이 극단에 들어오고, 들어온 만큼 밖으로 나간다. 내일은 가구들도 옮긴다는 이야기가 떠올라서 쥬시마츠는 외쳤다.

“그리고 내일도 또 옮겨야해!”

“응, 고생했네…. 저기, 그럼….”

토도마츠는 머뭇거렸다. 쥬시마츠의 일과도 궁금하지 않던 건 아니지만. 정확히는 카라마츠와 같이 일을 하는 쥬시마츠가 궁금했던 거라, 토도마츠는 원하는 것을 듣기 위해 어떻게 말을 돌려야할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그래서 잠시 대화가 끊겼다.

과자를 먹으며 쥬시마츠는 표정은 변함이 없었지만 내심 고민하고 있었다. 동생이 뭘 묻고 싶어 하는 지는 사실 알고 있었다. 토도마츠뿐 아니라 다른 형제들도 뭘 궁금해 하는 지 쥬시마츠는 알고 있었다. 우유를 건네주곤 조금 떨어져 이치마츠도, 자기들끼리 투닥이며 앞서 걷던 두 사람도, 토도마츠가 옆에 붙으며 말을 붙이기 시작함과 동시에 조금씩 그에게 붙어왔으니까.

하지만 그걸 말할까, 말까. 카라마츠 형이 원지 않는 건 하고 싶지 않은데…. 슬쩍 옆을 보니 토도마츠의 안색이 심하게 어두운 것이 보였다. 나름 시끌시끌하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은 것을 느끼며 쥬시마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카라마츠 형, 캐스팅 됐어.”

이건 배신이 아니다. 형의 소원은 반드시 이뤄줄 것이다. 그 때가 오면 이번에야말로 형에게 꼭 도움을 줄 거다. 다만 그것과는 별개로 이들에게도 작은 ‘기회’를 주고 싶은 것뿐이었다. 현실을 받아들일 기회를. 모두 카라마츠 형만큼이나 소중한 형제들이니까.

결심을 굳힌 쥬시마츠는 모두의 얼굴을 둘러봤다. 제각각의 표정을 살피며 쥬시마츠는 단어를 고르며 천천히 신중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연극이 시작되었다. 인기 있는 극단이라는 말은 허언이 아니었는지, 제법 규모가 큰 극장 안은 연극을 보러온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마츠조와 마츠요가 홀 안을 두리번거리고, 쭈뼛거리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 정도일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이제 제법 얼굴이 익은 하시다나 쥬시마츠가 가끔 말하는 자랑은 어린 아이들의 허세가 약간 가미된 것이 분명하다고 단정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멍하니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두 사람은 눈이 마주치고, 이내 둘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에 피식하고 웃었다.

내 아들이 이런 곳에서 상영을 할 정도로 규모 있는 극단에 들어갔다는 거지?

아직은 엑스트라지만, 아니, 벌써 무대에 서는 거니까. 카라마츠는 분명히 앞으로 잘 될 거야.

“카라마츠는 걱정 없네, 마츠요.”

“응, 그러네요.”

둘은 어깨에 힘을 주고, 카라마츠가 준 티켓을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연극이 시작되었다. 극의 내용은 도시에서 시골로 내려온 활달한 의사와 시골토박이 총각의 사랑 이야기였다. 흔한 사랑 소재지만 그런 건 느껴지지 않게 탄탄한 내용의 유쾌한 희극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두 사람이 즐거웠던 것은 카라마츠가 무대 위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연극을 하고 있는 사실이었다.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기도 하고, 음험한 표정을 짓기도 하고, 능청맞게 노인 흉내를 내기도하는 그들의 아들이 두 사람의 눈에 새롭게 보였다.

비록 주연도, 눈에 띄는 조연도 아닌 이름도 없는 엑스트라지만 부모인 두 사람의 눈엔 카라마츠만이 또렷하게 빛나고 있었다. 때문에 마츠요도, 마츠조도 연극의 막이 내릴 쯤 웃고 있지만 눈물을 잔뜩 흘리고 있었다.

 

 

연극이 시작되고 나선, 하시다의 간절한 권유에도 쥬시마츠는 아르바이트를 그만뒀다. 그리고 그 동안 모아 놓은 아르바이트비로 상영일 전체의 티켓을 미리 구매했다. 그 동안 성실하게 일해준 것이 고마워 그냥와도 괜찮다고 극단 사람들이 말했지만 쥬시마츠는 부득불 표를 구매했다. 한 달분의 5개의 좌석을. 그것은 이런 저런 할인을 받아도 그동안의 아르바이트비용으로도 충당이 되지 않아, 저금도 찾고 비상금 주머니도 완전히 털어야했지만 쥬시마츠는 그래도 원하는 대로 티켓을 구매했다.

쥬시마츠는 홀의 가장 구석 자리에 앉아 카라마츠의 연극을 보고, 또 봤다. 매일 일하면서 보긴 했지만, 정식으로 무대 위를 누비는 카라마츠를 보는 느낌은 매일매일이 새로웠다. 카라마츠가 무대에서 움직일 때는 마치 그 주변에만 별가루가 뿌려진 듯, 카라마츠는 확실히 빛나고 있었고, 그 빛남은 무대의 전체로 번져서 무대의 막이 내려갈 쯤엔 주변에서 ‘그 목소리 좋던 사람은 누구지?’, ‘그 엑스트라?’, ‘팸플릿에도 안보이던데.’, ‘대사가 너무 적어서 아쉬워.’, ‘나 사실 그 사람 보려고 벌써 세 번째야.’하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속삭임도 종종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소곤거리며 앞을 지나가는 관객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마츠노 카라마츠! 내 형이야! 소중하고, 멋진 나의 형이야!

이렇게 자랑스럽게 외치고 싶은 것을 가까스로 억누르며 쥬시마츠는 옆에 앉은 사람을 향해 물었다.

“잘 봤어?”

대답은 없었다. 그래도 쥬시마츠는 다시 물었다.

“어땠어? 이치마츠 형.”

여전히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눈물이 가득 고인 이치마츠의 얼굴은 무대 위의 카라마츠를 제대로 보고 있었음을 말하고 있었기에 쥬시마츠는 다시 묻지는 않고, 이치마츠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동생의 시선을 느끼지도 못하는 듯, 이치마츠는 붉은 막이 내려앉은 무대 위를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눈물로 흐릿한 그의 눈은 무대 위에서 생기 넘치던 카라마츠를 다시 떠올리고 있었다.

-저 여자인가?

주인공을 보며 다른 단역과 수군수군 떠드는 카라마츠. 그의 역할은 폐쇄적인 시골마을에 찾아와 대뜸 병원을 개업한 주인공을 배척하는 의심 많은 장년이었다. 썩 좋은 역할은 아니다. 그럼에도 카라마츠의 연기는 제 역할에 충실해 주어진 대사가 입에서 나온 그 짧은 순간, 무대는 카라마츠의 독무대나 마찬가지였다.

완전히 그 엑스트라로 화한 카라마츠의 연기는 이치마츠의 눈을 사로잡았다. 두 눈이 정신없이 카라마츠만을 쫓고, 극이 종반으로 달려갈수록 이치마츠의 안에서는 서러움이 켜켜이 쌓였다.

출연 빈도는 제법 잦았지만 대사는 고작 2줄. 짙은 무대 화장으로 가려졌지만 20년이 넘게 함께한 여섯 쌍둥이. 카라마츠가 가만히 서있는 것도 힘들 정도로 지친 것을 단숨에 알 수 있었다. 근데도 연극이 끝나갈수록 지친 몸과는 반대로 카라마츠의 눈은 생기가 흘러 넘쳤고, 손짓에는 변함없이 힘이 있었다.

뭐가 그렇게 즐겁니. 뭐가 그렇게 신이 났어. 거기가 그렇게 좋은 거야?

이치마츠는 극이 끝나고 다른 출연자들과 커튼콜로 무대에 선 카라마츠가 환하게 웃던 것을 떠올리며 입술을 짓씹었다.

네가, 네가 그렇게 웃고 있으면, 나는 포기할 수밖에 없잖아.

출연자들과 손을 잡고 단체로 허리 숙여 인사하는 카라마츠가 일렁인다. 눈에 뿌연 막이 어리고, 콧날이 시큰해져 이치마츠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다. 얼굴 전체를 가려도, 눈물이 넘치지 못하게 눈을 꾹 눌러도 신나게 웃고 있던 그 얼굴은 망막에 인처럼 새겨져 지워지지 않아 결국 눈물이 넘쳐버렸다.

쥬시마츠가 눈물로 얼룩진 이치마츠의 볼을 소매로 닦아줬다, 평소라면 그 친절을 거부하고 얼굴을 돌려버렸을 이치마츠였지만, 이번만큼은 동생의 손길을 순순히 받았다. 하지만 닦아도, 닦아도 눈물은 계속 흘러 쥬시마츠의 소매 끝을 적셨다. 그래도 쥬시마츠는 계속 닦아냈고, 이치마츠는 계속 눈물을 흘려보냈다.

극장을 나올 때는 잔뜩 부어올라 눈뜨기도 힘들게 돼서 쥬시마츠의 손을 꼭 잡고 느릿느릿 걸어야했지만 힘든 구석도, 아픈 구석도 없어진 이치마츠의 얼굴은 어딘지 개운함이 느껴졌다. 쥬시마츠는 아직도 훌쩍이고 있는 형의 손을 꼭 잡아줬다. 그저 잡혀있을 뿐이던 손이 천천히 동생의 손을 맞잡았다.

 

 

다음날은 토도마츠도 합류했다. 당연하다는 듯, 연극 시간에 맞춰 집을 나서는 두 사람 사이를 파고든 막내가 땅바닥을 보며 물었다.

“나도, 봐도 될까?”

두 사람은 막내의 손을 꼭 잡아줬다.

두 사람의 사이에 앉은 토도마츠는 연신 불안한 기색이었다. 자꾸 엉덩이를 들썩 거려 이치마츠는 동생의 손을 꼭 잡아줬다. 하지만 토도마츠가 느끼고 있는 정체모를 불안감은 무대 위에 카라마츠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더욱 강해졌다.

토도마츠는 카라마츠의 첫 대사에 움찔 몸을 떨었다. 형들이 손을 잡아주고 있다는 것도 잊었는지 연신 초조한 얼굴로 다리를 위 아래로 떨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카라마츠의 두 번째 대사 “그럴 줄 알았어.”를 듣고 숨을 멈췄다.

차가운 얼굴로 주인공을 향해 날선 대사를 내뱉는 카라마츠. 주인공을 향해 내뱉어진 말은 토도마츠의 가슴에 날카롭게 박혔다. 마치, 카라마츠가 자신에게 말하는 것 같은 착각이 일어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

토도마츠는 자신에게 밀쳐져 계단 아래에서 일어나며 자신을 올려보던 카라마츠의 눈빛을 떠올린다. 어떤 기대도, 신뢰도 없는 차가운 눈이 그에게 말하고 있었다. 역시, 그럴 줄 알았다. 토도마츠, 네가 날 싫어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어.

아니야. 아니야, 형! 나는 형을 좋아해!

하지만 자신의 마음은 닿지 않는다. 말도, 행동도 닿지 않고 모두 어긋나버려.

형의 생각은 이렇게나 선명하게 알 수 있는데 어째서 자신의 마음은 그에게 닿지 않는 걸까. 그 사실이 고통스럽고, 아파서 속이 울렁거렸다.

토도마츠는 입을 틀어막았다. 이후로도 연극은 계속 되었다. 카라마츠의 대사는 더는 없었지만, 무대는 여전히 유쾌하게 흘러갔지만 토도마츠는 억누를 수 없는 토기에 결국 “미안.”하고 누구를 향한 것인지 불분명한 사과 한 마디를 남기고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쥬시마츠는 토도마츠가 자신의 손을 뿌리치고 입을 가린 시점에서 이미 손을 놓고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의 앞을 지나 밖으로 빠르게 빠져나가는 토도마츠를 붙잡지 않았다. 잠깐 눈을 감았다 떴을 뿐 쥬시마츠는 계속 자리를 지켰다. 아직 카라마츠의 무대는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치마츠는 망설이다 입술을 깨물고 동생의 뒤를 쫓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등 뒤에서 무대 위 배우들이 열연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 사이에 껴있을 카라마츠를 떠올리니 가슴이 욱신거렸지만 그래도 이치마츠는 동생을 쫓아 홀을 빠져나갔다.

홀을 빠져나와 주변을 두리번거리니 건물 밖, 유리문 너머 어렴풋 분홍색이 아른거려 이치마츠는 그쪽으로 황급히 걸음을 옮겼다. 회전문을 밀어 밖으로 나오니 차가운 계단 바닥에 앉아 어깨를 들썩이는 토도마츠가 눈에 들어왔다.

“토도마츠.”

이치마츠는 그 옆에 앉으며 동생을 불렀다.

“…이치마츠 형.”

토도마츠는 울고 있었다. 눈물, 콧물을 쏟아내며, 주위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길 잃은 아이처럼 서글피 울고 있었다.

“싫어.”

토도마츠는 싫었다. 무대 위의 카라마츠는 너무나도 낯설어서 싫었고, 보고 있을수록 선명해지는 거리감이 싫었고, 더는 자신이, 형제들이 카라마츠에게 우선순위가 아니게 되었다는 걸 깨달은 것이 싫었고, 카라마츠에게 사과할 수도 없이 이대로 놓아주듯 끝내야한다는 것이 싫었고, 앞으로 카라마츠가 자신들의 곁에 없는 것이 일상이 될 미래가 소름끼치게 싫었다.

싫다. 싫어.

싫다는 한마디뿐이었지만, 담겨있는 모든 것을 알아차린 이치마츠가 침중한 얼굴로 그를 불렀다.

“토도마츠.”

그래도 받아들여야한다는 목소리에 토도마츠는 도리질 치며 웃었다.

“난, 버틸 수 없어.”

망가져버린 애처로운 미소에 이치마츠는 동생을 꼭 끌어안아줬다. 이치마츠의 품 안에서 오열하는 토도마츠의 입에선 계속 ‘미안’이라는 단어가 흘러나왔다. 이치마츠의 입안에서는 ‘괜찮아.’라는 가벼운 거짓말이 맴돌았지만, 그것을 입 밖에 내진 않았다. 그는 그저 이를 악물고 가만히 동생의 등을 토닥여줬다.

 

 

그로부터 며칠 후, 이번에는 쵸로마츠가 쥬시마츠와 함께했다. 쥬시마츠는 오늘도 이치마츠에게 권했으나, 토도마츠가 그 옷자락을 잡고 놓지 않아 오늘도 혼자 관람을 가려 했다. 그런데 쵸로마츠가 드물게도 말을 걸어왔다.

“오늘도 연극 보러 가는 거야, 쥬시마츠?”

“응. 카라마츠 형아, 연극.”

“음. 그거 재미있어? 제목이….”

제목이 기억이 나지 않는 듯, 미간을 찌푸리는 형에게 쥬시마츠가 친절하게 알려줬다.

“『들꽃 세레나데』!”

“…뭐야, 그 제목. 어쩐지 구려. 그리고 로맨스?”

미간의 골이 더욱 깊어졌다. 로맨스물은 취향이 아닌데. 하고 중얼거리는 그에게 쥬시마츠가 급히 덧붙였다.

“하지만 재미있어! 사람들도 연극 진짜 잘하고, 열심히 준비했는걸! 매일 사람들이 많이 보러와! 엄마, 아빠도 재미있다고 했었어.”

“그래….”

고심하는 얼굴로 턱을 문지르던 쵸로마츠가 짧게 한숨을 쉬더니 현관 턱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그럼 같이 가.”

그는 그렇게 말하곤 운동화를 신기 시작했다.

“응?”

쥬시마츠가 묘한 표정으로 그를 빤히 쳐다봤다. 보러 가는 것은 좋은데 어쩐지 쵸로마츠의 ‘같이 가.’자는 말은 쥬시마츠의 신경을 톡 건드린다. 이치마츠와 토도마츠의 가겠다는 말과는 느낌이 전혀 달랐다. 쵸로마츠의 말에서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함보다는 의무감이 가득 느껴졌다. 어째서? 라는 의문이 들어 쵸로마츠를 쳐다보니 그 시선을 느꼈는지 쵸로마츠가 끈을 고쳐 묶으며 덤덤하게 되물어왔다.

“왜?”

“…저기, 괜찮아, 형아?”

쥬시마츠가 조심스럽게 물으니 오히려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든다.

“괜찮아, 라니? 뭐가?”

쥬시마츠는 입을 다물었다. 쵸로마츠는 고개를 갸웃하곤 다시 신발을 매만졌다.

“형제가 연극하는데, 가족으로서 보러가는 게 보통 아니야?”

음색도, 표정도 너무나 담담했고, 그 내용도 타당했다.

“…응.”

그렇기에 오히려 이질적이기에 쥬시마츠는 뜸들이듯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신발을 다 신고 자리에서 일어나 앞장서며 문을 연 쵸로마츠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쥬시마츠를 재촉하듯 쳐다봤다.

“가자, 쥬시마츠. 난 장소 모르니까 앞장서.”

쥬시마츠를 독촉하는 쵸로마츠의 얼굴은 지극히 평온했다.

 

 

표는 어디서 사야하냐고 묻는 쵸로마츠에게 쥬시마츠는 주머니에서 표를 꺼내 내밀었다.

“어째서 표를 사놓은 거야?”

“그냥…다들 같이 보면 좋겠다, 싶어서.”

“내가 안 보러 왔으면 어쩌려고.”

돈 아까운 짓은 하지 마. 라고 엄한 얼굴로 설교를 하는 쵸로마츠에게 쥬시마츠는 대강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전체 상영일 좌석을 사놓았다는 말은 괜히 덧붙이진 않았다.

쥬시마츠는 좌석으로 쵸로마츠를 잡아끌었다. 후미진 자리에 앉은 쵸로마츠는 한숨을 쉬며 작게 불만을 토로했다.

“쥬시마츠, 여기 자리가 좋지 않잖아.”

“응.”

자리는 어쩔 수 없었다. 전망이 아주 좋은 자리는 그만큼 비싸서, 매일 5인분의 티켓을 사야했던 쥬시마츠가 선택할 자리는 이런 구석진 곳이 최선이었다. 그런 사정을 모르는 쵸로마츠가 “자리가 안 좋아서 주변 비어 있잖아.” 라고 투덜거리는 목소리를 쥬시마츠는 가만히 듣기만 했다. 지역 뉴스에 짧게 소개가 나올 정도로 연극은 현재 대 호평을 받고 있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나쁜 자리라도 프리미엄을 붙여서라도 표를 구매하려는 사람들도 암암리에 있을 정도로 매일매일 인기였다. 그렇기에 쥬시마츠가 티켓을 구매한 탓에 비어버린 자리만 빼고, 모든 좌석엔 사람들이 빼곡하게 앉아 있다는 것을 쵸로마츠는 느끼지 못한 얼굴이었다.

쵸로마츠는 짧게 혀를 차고 쥬시마츠가 건넨 팸플릿을 살피며 슬쩍 물었다.

“듣기는 했지만…, 카라마츠 진짜로 연극 쪽으로 가겠다고 하는 거야?”

“응.”

“냐쨩이나 토토코짱이나 그런 대단한 사람들도 아이돌을 하는 게 쉽지만은 않은데…카라마츠. 괜찮을까?”

걱정이 가득 담긴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것엔 어딘지 현실감이 부족해서 쥬시마츠는 입을 뗄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닌 듯, 쵸로마츠는 연신 중얼거렸다.

“저기, 카라마츠 말이야, 이제야 사춘기가 온 것 같아. 애들도 아니고 이런 비현실적인 것 언제쯤 포기하려나….”

쵸로마츠의 입에서 끝없이 터져 나오는 아이러니에 대답을 찾을 수 없어서 쥬시마츠는 눈만 굴리고 있었다. 한참을 떠드는데 대답 없는 동생이 이상한지 쵸로마츠가 그에게 시선을 돌리는 차, 다행스럽게도 홀의 전원이 꺼지며 무대의 조명이 환하게 켜졌다. 그럼에도 입을 움직이는 쵸로마츠를 정당하게 막을 구실이 생긴 쥬시마츠는 재빨리 말했다.

“쉿. 쵸로마츠 형아. 이제 시작한다.”

“아, 응.”

다행이도 쵸로마츠는 입을 다물었다. 극을 볼 때는 조용히. 그것은 상식이었다.

밝은 조명 아래의 무대. 카라마츠는 엑스트라지만, 분명히 조명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아니, 그가 빛나는 것은 비단 조명 덕이 아니었다. 어두컴컴한 장면에서도 그는 프로들 사이에서 그들과 똑같이 빛을 내고 있었다. 그런 카라마츠는 극이 시작하기 전, 쵸로마츠가 했던 걱정을 비웃듯 완벽한 하나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것을 보는 쵸로마츠의 머릿속은 스스로의 모순이 서로를 찔러 엉망으로 헝클어지기 시작했다.

축하해 줘야해. 보통은 그렇잖아. 잘 봤다고, 웃으면서. 하지만 그건 얼굴을 봐야 가능한 일이지. 카라마츠는 우리를 만나주지 않을 거야. 그렇잖아. 그렇게 심한 짓을 해버렸고, 아직 사과도 하지 못했고. 우리를, 싫어하고 있잖아?

하고 떠올리기 싫었던 것을 떠올린 쵸로마츠는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자꾸 넘실거리는 생각을 아래로 내리누르며 필사적으로 카라마츠의 무대를 살폈다.

조금, 과장되지 않았어? 엑스트라가 저렇게 튀면 어떡해. 주변에 민폐 아니야? 그럴 줄 알았어. 제 버릇 남 못준다고, 카라마츠. 저기서도 튀고 싶어서 안달이 났구나. 그렇게 서툴러서 연극하며 살 수 있을까? 저런 행동은 밉보일 뿐이라고. 이쪽 바닥은 관계자들하고의 친분이 정말 중요한데.

자신이 그를 주시하기에 그의 행동만이 눈에 들어온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쵸로마츠는 계속, 계속 흠을 찾아냈다. 그것은 연극이 끝날 때까지 계속 되었다.

쵸로마츠는 카라마츠를 살피지만 카라마츠의 눈엔 쵸로마츠는 대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쵸로마츠는 그 사실을 커튼콜에 응한 연기자들이 무대 위에 설 때, 카라마츠도 그들 옆에 서서 좌중을 훑어볼 때가 돼서야 알아차렸다. 이런 구석진 곳에 있는 자신들을 그는 결국 알아차리지 못했다. 기이한 불쾌함과 초조함에 쵸로마츠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무릎에 놓인 주먹이 꽉 쥐어지고 하얗게 질렸으나 쵸로마츠는 침착함을 유지하기 위해 애썼다.

아직, 그가 믿는 구석은 있었다.

…오소마츠 형이 어떻게든 해줄 거야. 나하고 약속했으니까.

그렇게 되뇌며 쵸로마츠는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평범하게 웃기 위해 노력하며 최대한 덤덤한 어조로 쥬시마츠에게 말했다.

“연극은 제법 재미있네. 그래도 난 역시 고전 쪽이 더 좋아. 세익스피어 같은 거 있잖아.”

쵸로마츠는 기지개를 펴고 어두운 생각을 떨쳐내며 말했다.

“그런데 카라마츠 녀석, 생각보다도 몇 번 안 나오네? 역시, 아직 좋은 역할을 맡기엔 부족한 거겠지.”

“…….”

쥬시마츠는 쵸로마츠의 옆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응, 그래도 우리라도 이렇게 봤으니 됐지. 자, 이제 가자. 쥬시마츠.”

쵸로마츠의 웃는 얼굴은 연극을 보기 전보다 어딘지 현실감이 떨어졌다.

 

 

그 뒤로도 계속, 쥬시마츠는 연극을 보러 갔다. 이후 두 번, 이치마츠가 더 동행하기도 했지만 그것이 끝이었다. 쥬시마츠는 계속 혼자였다. 비어있는 옆 좌석이 온전히 다 채워지는 날은 결국 오지 않은 채, 연극은 막을 내렸다.

 

그리고 오소마츠는 끝까지 연극을 보지 않았다.